충무공 난중일기는 16세기 기후 알려주는 날씨기록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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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속 날씨 기록 분석 첫 논문…"깜짝 놀랄 만큼 상세"
날씨 안 적힌 날 전체 2.6%에 불과…'유성우' 포착 기록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기록한 난중일기가 16세기 남해안 기후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난중일기 날씨 기록을 분석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순신 장군이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7년간 친필로 작성한 난중일기는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2일 한국기상학회 학술지 '대기' 최신호에 실린 논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기록된 기상자료의 분석'을 보면 장군의 일기가 남은 1천593일 가운데 날씨가 기록되지 않은 날은 42일로 전체의 2.6%에 불과했다.
논문을 쓴 서명석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연구자로서 깜짝 놀랄 만큼 이순신 장군이 날씨를 잘 기록해두셨다"라면서 "기록이 상세해 16세기 남해안 기후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날씨가 기록된 1천551일 가운데 비나 눈 등 강수가 기록된 날은 382일로 비율로는 24.62%다.
이 비율을 가지고 당시 연간 강수일을 추산하면 약 90일(365일의 24.62%)로 현재 남해안 연간 강수일(95~100일)과 유사했다.
난중일기 날씨는 이순신 장군이 혼자 관측해 기록했는데도 '정확도'가 상당히 높음을 보여준다.
난중일기 날씨 기록으로 당시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을 추정해보니 각각 6월 14~21일과 7월 6~17일이었다.
여기서 장마 시작일은 '6~7월 중 비가 사흘 이상 연속으로 내린 날 중 첫날'이고 종료일은 '시작일 이후 3~5일가량 비가 안 내린 시점이 나타났을 때 그 직전 마지막으로 비가 온 날'을 말한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추정한 장마 시종일은 현재 시종일과 비슷했다.
이에 장마일도 18~33일로 마찬가지로 현재와 유사했다.
기상현상과 관련해 난중일기의 정확도를 보여주는 다른 사례는 1595년 5월 5일(음력 3월 26일) 일기의 '밤 10시경 동쪽이 어둡다가 즉시 밝아지니 무슨 상서로운 징조인지 모르겠다'라는 기록이다.
논문은 "1595년 5월 5일 오후 10시 19분께 전갈자리와 천칭자리에서 유성우가 강하게 발생했다"라면서 "이순신 장군이 본 것은 비처럼 쏟아지는 유성우였을 확률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이순신 장군은 날씨를 정성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여름 매우 더운 날엔 '쇠를 녹일 더위'라고 쓰고 매서운 추위가 닥친 겨울날에는 '살을 에는 듯이 추움'이라고 적었다.
'추위가 배나 혹독해짐'이라고 기온의 변화를 설명해두기도 했다.
이런 표현을 토대로 1592~1598년 7년간 남해안 이상저온과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난 날은 각각 6일과 21일이고 폭염과 한파가 온 날은 16일과 9일로 추정된다고 논문은 밝혔다.
서명석 교수는 "난중일기엔 하늘상태, 체감온도, 안개, 일식, 월식, 유성우 등 다양한 기상현상 기록이 있어 16세기 남해안 기후 특성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라면서 "극한상황 속에 날씨를 상세히 기록한 점은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날씨의 중요성을 확실히 인지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날씨 안 적힌 날 전체 2.6%에 불과…'유성우' 포착 기록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기록한 난중일기가 16세기 남해안 기후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난중일기 날씨 기록을 분석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순신 장군이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7년간 친필로 작성한 난중일기는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2일 한국기상학회 학술지 '대기' 최신호에 실린 논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기록된 기상자료의 분석'을 보면 장군의 일기가 남은 1천593일 가운데 날씨가 기록되지 않은 날은 42일로 전체의 2.6%에 불과했다.
논문을 쓴 서명석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연구자로서 깜짝 놀랄 만큼 이순신 장군이 날씨를 잘 기록해두셨다"라면서 "기록이 상세해 16세기 남해안 기후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날씨가 기록된 1천551일 가운데 비나 눈 등 강수가 기록된 날은 382일로 비율로는 24.62%다.
이 비율을 가지고 당시 연간 강수일을 추산하면 약 90일(365일의 24.62%)로 현재 남해안 연간 강수일(95~100일)과 유사했다.
난중일기 날씨는 이순신 장군이 혼자 관측해 기록했는데도 '정확도'가 상당히 높음을 보여준다.
난중일기 날씨 기록으로 당시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을 추정해보니 각각 6월 14~21일과 7월 6~17일이었다.
여기서 장마 시작일은 '6~7월 중 비가 사흘 이상 연속으로 내린 날 중 첫날'이고 종료일은 '시작일 이후 3~5일가량 비가 안 내린 시점이 나타났을 때 그 직전 마지막으로 비가 온 날'을 말한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추정한 장마 시종일은 현재 시종일과 비슷했다.
이에 장마일도 18~33일로 마찬가지로 현재와 유사했다.
기상현상과 관련해 난중일기의 정확도를 보여주는 다른 사례는 1595년 5월 5일(음력 3월 26일) 일기의 '밤 10시경 동쪽이 어둡다가 즉시 밝아지니 무슨 상서로운 징조인지 모르겠다'라는 기록이다.
논문은 "1595년 5월 5일 오후 10시 19분께 전갈자리와 천칭자리에서 유성우가 강하게 발생했다"라면서 "이순신 장군이 본 것은 비처럼 쏟아지는 유성우였을 확률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이순신 장군은 날씨를 정성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여름 매우 더운 날엔 '쇠를 녹일 더위'라고 쓰고 매서운 추위가 닥친 겨울날에는 '살을 에는 듯이 추움'이라고 적었다.
'추위가 배나 혹독해짐'이라고 기온의 변화를 설명해두기도 했다.
이런 표현을 토대로 1592~1598년 7년간 남해안 이상저온과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난 날은 각각 6일과 21일이고 폭염과 한파가 온 날은 16일과 9일로 추정된다고 논문은 밝혔다.
서명석 교수는 "난중일기엔 하늘상태, 체감온도, 안개, 일식, 월식, 유성우 등 다양한 기상현상 기록이 있어 16세기 남해안 기후 특성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라면서 "극한상황 속에 날씨를 상세히 기록한 점은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날씨의 중요성을 확실히 인지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