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몇 번으로 본 서비스 제공자보다 더 큰 수익 챙겨…사기 행각도
홍성화 제주대 교수 "소비자의 정당한 이용 기회 뺏는 행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거리두기가 일상화하면서 '핫플레이스 원격 줄 서기'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줌in제주] 핫플레이스 예약권 팔아먹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고객이 줄 서기 서비스 앱에 접속해 원하는 매장을 선택한 뒤 인원수 등을 등록하면, 매장에서는 카카오 알림 톡 등을 통해 예약 순번을 알려주고 순서대로 고객을 호출한다.

하지만 새로운 현상이 생기면서 덩달아 고민거리도 생겨났다.

클릭 몇 번으로 재빠르게 예약권을 확보했다가 되파는 방식으로, 노고를 들여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기는 '봉이 김선달' 같은 얌체족들이 생겨난 것이다.

◇ 1만원짜리 돈가스 먹는데 4만원 드는 이유
'연돈 2인 구합니다.

임산부인데 너무 먹고 싶어요'. '연돈 삽니다.

신혼여행 왔어요'
30일 한 온라인 중고물품 거래 플랫폼에서 확인된 거래 글 중 하나다.

연돈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인기를 끈 수제 돈가스 식당으로 2019년 12월 서울에서 제주 서귀포시로 가게를 옮겼다.

높은 인기 탓에 하루 100개 한정인 돈가스가 순식간에 팔려나가면서 새벽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심지어 텐트까지 쳐 쪽잠을 자는 손님까지 등장하자 지난해 1월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예약 시스템이 도입됐다.

연돈 측은 스마트폰 GPS(위성항법장치)를 통해 제주도에 있는 사람만 방문 전날부터 예약할 수 있도록 했으나 매번 30초도 안 돼 예약이 마감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렵게 되자 결국 예약권 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연돈 돈가스 1인 가격은 9천∼1만원인데 예약권 가격은 1인 2∼3만원 수준이다.

게시글에서 10만원에 거래 완료된 경우도 볼 수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지만 이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줌in제주] 핫플레이스 예약권 팔아먹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이러한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연돈 측에서 스마트폰 앱 화면을 캡처해 가져온 손님은 받지 않는 등 다양한 자구책을 강구했지만, 판매자가 아예 구매자에게 자신의 앱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예약권 논란이 뜨거운 장소로는 '한라산'도 빼놓을 수 없다.

한라산 백록담 하루 탐방 인원은 성판악 코스 1천 명, 관음사 코스 500명으로 제한됐으나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유명 연예인이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며 한라산 정상 백록담까지 등반하는 모습이 방영된 뒤 탐방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결국 몰려드는 탐방객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탐방 예약 QR코드가 온라인에서 1∼5만원에 거래됐다.

탐방 예약 QR코드는 실제 예약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화면 캡처 등의 방식으로 별다른 제재 없이 이용할 수 있다.

◇ 창조경제냐, 시장 교란이냐
이러한 현상에 일부 네티즌들은 '창조경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광시장을 교란하는 행태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높다.

예약 확인 화면이 사실상 '구매권'이나 '입장권' 역할을 하고, 이를 웃돈을 받고 사고파는 행위는 암표 매매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돈만 챙기고 사라지는 사기 행위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줌in제주] 핫플레이스 예약권 팔아먹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그러나 안타깝게 현재로서는 이러한 행태를 근절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

일단 온라인 암표 매매를 처벌할 마땅한 규정이 없다.

실제 경범죄의 암표 매매에 해당해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연돈이나 한라산국립공원 매표소 앞에서 예약권을 판매하다 적발됐을 때만 적용을 고려할 수 있다.

업무방해죄는 어떨까.

형법 314조에 따르면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을 사용해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을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직접 매장을 찾아가 훼방을 놓지 않더라도 매크로(자동입력반복)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업무방해 행위도 엄연히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단순 대리 예약만으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예약 시스템을 악용해 다른 사람의 예약을 막거나, 실제 이익을 감소시킨 것이 아닌 한 형사 처벌은 어렵다는 것이다.

대리 예약자가 수수료로 연돈이나 제주도보다 돈을 더 벌었다 해도 이를 통해 연돈이나 제주도가 손해를 입었다고 규정할 수도 없어 민사 소송을 해도 승산은 적다.

홍성화 제주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성행하는 이 같은 예약권 매매 행태가 불법은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예약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취지는 훼손된다"며 "예약 시스템 이용에 능숙한 대리 예약 업자만 이득을 보고, 정말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정당한 이용 기회는 빼앗는 셈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또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궁극적으로는 예약 시스템을 도입한 취지가 무너지면서 모든 이용자에게 불이익을 가져오게 된다"며 "올바른 관광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도를 지키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줌in제주] 핫플레이스 예약권 팔아먹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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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