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천 결정…韓 "중단 엄중촉구"(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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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천명 징용 현장…제2의 군함도
기시다 "올해 신청하는 것이 등재 실현에 지름길" 일본 정부가 28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일제 징용 노동자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일 관계에 새로운 악재가 추가됐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이날 저녁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천과 관련해 "올해 신청해서 조기에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등재 실현에 지름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등록 실현을 위해 관계 부처가 참가하는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설치해 역사적 경위를 포함한 다양한 논의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반발과 관련해 "한국의 의견은 알고 있다"며 "냉정하고 정중한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도 광산의 등재에 반대하는 한국 등을 고려해 유네스코 무대에서 외교전을 준비하는 동시에 한국과의 대화도 모색하겠다는 뜻이다.
기시다 내각의 검토 과정은 한국 정부의 반발과 심사 탈락 가능성 등을 고려한 추천 보류 기조에서 막판에 강행으로 바뀐 모양새다.
일본이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반대 국가가 있으면 심사를 중단하고 대화를 하도록 한 유네스코 심사 제도 도입을 끌어냈고, 그 후속조치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신청 전 당사국 간 대화를 촉구하는 지침이 지난해 채택된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에 추천을 유보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오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비롯한 집권 자민당 강경 보수파가 추천 강행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전 총리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년으로 미루면 등록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한국 등이) '역사 전쟁'을 걸어온 이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기시다 총리를 압박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조회장도 연이은 기자회견 등에서 "일본 명예와 관련된 문제"라고 공세를 폈다.
결국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수장으로 복귀한 아베의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다.
한국의 반발에 굴복해 추천을 보류하면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자민당 내 우려의 목소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가 지난해 11월 치러진 중의원 총선에서 원내 제3당으로 약진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추천 시한인 다음 달 1일 각의(우리의 국무회의 격)를 열고 승인 절차를 거쳐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보내게 된다.
앞으로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회의회(ICOMOS·이코모스)가 현지 조사를 포함한 약 1년 반 동안의 심사를 거쳐 내년 6~7월에 사도 광산의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 정부는 이날 "이러한 시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측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시 한국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키로 결정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외교부는 일본이 하시마(일명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에서의 조선인 강제노역을 설명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지난해 7월 세계유산위원회가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 일도 상기했다.
조선인 강제노역의 또 다른 현장인 일본 근대산업시설은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며, 당시 일본은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함께 알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2015년 세계유산 등재 시 스스로 약속한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고 밝혔다.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에도 한일 양국이 '역사 전쟁'을 벌였지만, 외교 교섭을 통해 타협했다.
일본이 당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이번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추천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반발을 키웠다.
사도 광산은 에도(江戶) 시대(1603년~1867년)부터 금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년)에는 기계화 시설이 도입돼 근대 광산으로 탈바꿈했고, 태평양전쟁(1941~1945년) 기간에는 철과 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활용됐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조선인이 사도 광산에 대거 동원됐다.
사도 광산에 동원된 조선인을 연구한 히로세 데이조(廣瀨貞三) 일본 후쿠오카(福岡)대 명예교수는 작년 10월 23일 공개한 자료에서 "적어도 2천명 정도의 조선인이 동원됐다"고 추정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사도 광산은 에도 시대(1603년~1867년)에 일본 고유의 전통적인 수공업을 활용해 대규모로 장기에 걸쳐 (금 생산 등을) 이어간 희귀한 산업 유산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추천 기간을 에도 시대로 한정했음을 밝혔다.
/연합뉴스
기시다 "올해 신청하는 것이 등재 실현에 지름길" 일본 정부가 28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일제 징용 노동자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일 관계에 새로운 악재가 추가됐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이날 저녁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천과 관련해 "올해 신청해서 조기에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등재 실현에 지름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등록 실현을 위해 관계 부처가 참가하는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설치해 역사적 경위를 포함한 다양한 논의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반발과 관련해 "한국의 의견은 알고 있다"며 "냉정하고 정중한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도 광산의 등재에 반대하는 한국 등을 고려해 유네스코 무대에서 외교전을 준비하는 동시에 한국과의 대화도 모색하겠다는 뜻이다.
기시다 내각의 검토 과정은 한국 정부의 반발과 심사 탈락 가능성 등을 고려한 추천 보류 기조에서 막판에 강행으로 바뀐 모양새다.
일본이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반대 국가가 있으면 심사를 중단하고 대화를 하도록 한 유네스코 심사 제도 도입을 끌어냈고, 그 후속조치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신청 전 당사국 간 대화를 촉구하는 지침이 지난해 채택된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에 추천을 유보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오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비롯한 집권 자민당 강경 보수파가 추천 강행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전 총리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년으로 미루면 등록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한국 등이) '역사 전쟁'을 걸어온 이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기시다 총리를 압박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조회장도 연이은 기자회견 등에서 "일본 명예와 관련된 문제"라고 공세를 폈다.
결국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수장으로 복귀한 아베의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다.
한국의 반발에 굴복해 추천을 보류하면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자민당 내 우려의 목소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가 지난해 11월 치러진 중의원 총선에서 원내 제3당으로 약진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추천 시한인 다음 달 1일 각의(우리의 국무회의 격)를 열고 승인 절차를 거쳐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보내게 된다.
앞으로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회의회(ICOMOS·이코모스)가 현지 조사를 포함한 약 1년 반 동안의 심사를 거쳐 내년 6~7월에 사도 광산의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 정부는 이날 "이러한 시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측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시 한국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키로 결정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외교부는 일본이 하시마(일명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에서의 조선인 강제노역을 설명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지난해 7월 세계유산위원회가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 일도 상기했다.
조선인 강제노역의 또 다른 현장인 일본 근대산업시설은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며, 당시 일본은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함께 알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2015년 세계유산 등재 시 스스로 약속한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고 밝혔다.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에도 한일 양국이 '역사 전쟁'을 벌였지만, 외교 교섭을 통해 타협했다.
일본이 당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이번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추천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반발을 키웠다.
사도 광산은 에도(江戶) 시대(1603년~1867년)부터 금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년)에는 기계화 시설이 도입돼 근대 광산으로 탈바꿈했고, 태평양전쟁(1941~1945년) 기간에는 철과 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활용됐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조선인이 사도 광산에 대거 동원됐다.
사도 광산에 동원된 조선인을 연구한 히로세 데이조(廣瀨貞三) 일본 후쿠오카(福岡)대 명예교수는 작년 10월 23일 공개한 자료에서 "적어도 2천명 정도의 조선인이 동원됐다"고 추정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사도 광산은 에도 시대(1603년~1867년)에 일본 고유의 전통적인 수공업을 활용해 대규모로 장기에 걸쳐 (금 생산 등을) 이어간 희귀한 산업 유산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추천 기간을 에도 시대로 한정했음을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