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욕이 탐욕으로 바뀔 때, 과학은 세상을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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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사이언스 픽션'
대학생들에게 죄수와 교도관 역할을 맡겨 사회적 조건과 제도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1971년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심리학 실험이다.
연구진은 교도관을 맡은 이들이 죄수 역할의 사람들을 놀라울 만큼 빠르게, 심지어 너무 가학적으로 괴롭혀 실험을 일찍 끝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발생한 미군 경비대원 사건의 재판에 출석해 학대와 고문은 단지 그들의 상황과 역할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짐바르도가 간수들에게 화장실 금지 등 죄수들을 어떻게 학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심리학자 스튜어트 리치는 이 실험을 두고 "연극을 하듯 만들어진 연구 결과는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인 역할을 맡게 됐을 때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 사례와는 당연히 차이가 날 것"이라며 "과학적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리치의 '사이언스 픽션'(더난출판)은 허위이거나 과장된 논문이 쏟아지는 과학계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검증 시스템을 어떻게 보완할지 제안하는 책이다.
저자는 과학을 일종의 사회적 구조물로 본다.
동료들이 검증한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고, 발표된 논문이 인용된 횟수를 통해 과학적 지식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과학자들은 논문 발표 횟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고, 명성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 탓에 연구자들은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고, 때때로 연구윤리를 저버리기도 한다.
하나의 실험에서 얻은 연구 결과를 여러 개로 쪼갠 다음 여러 건의 논문으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염색체 23쌍을 분석한 뒤 23건의 논문을 쓴 유전학자들이 대표적이다.
획기적인 연구 결과로 학계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명성도 얻으려는 연구자의 욕망이 상호신뢰에 기반한 과학계 시스템과 만날 때 가짜 과학자가 탄생한다.
저자는 이미 세계적으로 저명한 생물학자였고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졌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대담하게 논문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 시스템 붕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황우석 스캔들은 논문 검토와 편집을 맡는 과학계 인사들도 흥미롭고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데이터와 분석에 사용된 통계 프로그램 등 연구의 전 과정에 모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 사이언스'가 연구윤리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데이터의 완전한 공개 자체가 연구자들로 하여금 조작을 일차적으로 막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 사이언스는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과 추가 연구를 도울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들고 '유레카'를 외치길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적 연구는 한번에 결론적 진실로 도약하는 대신, 지루하고 따분하게 잠정적 이론으로 발전해나간다.
저자는 "눈에 띄는 연구 결과에만 관심을 두려는 우리의 본능을 다스리고, 당장은 덜 흥분되더라도 좀 더 견고한 결과를 중요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본래의 '지루한 과학'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김종명 옮김. 496쪽. 1만7천원.
/연합뉴스
연구진은 교도관을 맡은 이들이 죄수 역할의 사람들을 놀라울 만큼 빠르게, 심지어 너무 가학적으로 괴롭혀 실험을 일찍 끝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발생한 미군 경비대원 사건의 재판에 출석해 학대와 고문은 단지 그들의 상황과 역할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짐바르도가 간수들에게 화장실 금지 등 죄수들을 어떻게 학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심리학자 스튜어트 리치는 이 실험을 두고 "연극을 하듯 만들어진 연구 결과는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인 역할을 맡게 됐을 때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 사례와는 당연히 차이가 날 것"이라며 "과학적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리치의 '사이언스 픽션'(더난출판)은 허위이거나 과장된 논문이 쏟아지는 과학계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검증 시스템을 어떻게 보완할지 제안하는 책이다.
저자는 과학을 일종의 사회적 구조물로 본다.
동료들이 검증한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고, 발표된 논문이 인용된 횟수를 통해 과학적 지식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과학자들은 논문 발표 횟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고, 명성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 탓에 연구자들은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고, 때때로 연구윤리를 저버리기도 한다.
하나의 실험에서 얻은 연구 결과를 여러 개로 쪼갠 다음 여러 건의 논문으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염색체 23쌍을 분석한 뒤 23건의 논문을 쓴 유전학자들이 대표적이다.
획기적인 연구 결과로 학계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명성도 얻으려는 연구자의 욕망이 상호신뢰에 기반한 과학계 시스템과 만날 때 가짜 과학자가 탄생한다.
저자는 이미 세계적으로 저명한 생물학자였고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졌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대담하게 논문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 시스템 붕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황우석 스캔들은 논문 검토와 편집을 맡는 과학계 인사들도 흥미롭고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데이터와 분석에 사용된 통계 프로그램 등 연구의 전 과정에 모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 사이언스'가 연구윤리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데이터의 완전한 공개 자체가 연구자들로 하여금 조작을 일차적으로 막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 사이언스는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과 추가 연구를 도울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들고 '유레카'를 외치길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적 연구는 한번에 결론적 진실로 도약하는 대신, 지루하고 따분하게 잠정적 이론으로 발전해나간다.
저자는 "눈에 띄는 연구 결과에만 관심을 두려는 우리의 본능을 다스리고, 당장은 덜 흥분되더라도 좀 더 견고한 결과를 중요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본래의 '지루한 과학'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김종명 옮김. 496쪽. 1만7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