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순위 9위 현산, 불신의 아이콘되나…총체적 안전불감증 비난 확산

"대형 건설사 맞나" 등 비판 글 잇따라…학동 사고 이어 법적책임 가중
화정 포함 광주 4개 현장 입주 차질…입주민 "옆동도 불안하다" 격앙
전문가 "재시공도 각오해야"…회사 측 "정밀안전진단 실시후 결정"

지난해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작업 붕괴 사고에 이어 7개월 만에 또다시 광주의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대형 붕괴사고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시공능력평가 9위인 유명 대형 건설사가 '있을 수 없는' 후진적 사고를 연이어 냈다는 점에서 이 회사의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광주시가 붕괴 사고가 발생한 서구 화정동 광주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을 포함해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일대 모든 건축·건설현장에 대한 공사중지 명령을 내린 가운데 온라인 공간에선 전국에 걸쳐 60여 곳에 달하는 현대산업개발의 전체 공사 현장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산업개발이 안전상의 문제로 공사 중단 사태까지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내부에서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이 근본적인 원인 조사와 안전대책 강화를 주문한 데 이어 광주지역의 여야 정치권이 "이번 붕괴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라며 건설사 책임 문제를 공론화하고 나선 상태다.

◇ 현산 광주 4개 아파트 현장 공사 중단…입주 지연 불가피
광주시는 12일 광주시내 현대산업개발 공사 현장 전체에 대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현대산업개발에 따르면 현재 시공 중인 광주시내 현장은 지난해 6월 철거 중 붕괴 사고가 발생한 학동4 재개발 사업구역과 이번 서구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 건설 현장, 동구 광주계림 아이파크SK뷰 아파트, 광주 운암3단지 등 총 4곳이다.

이 중 학동4구역은 지난해 사고로 이미 공사가 중단된 상태이며, 화정 아이파크 847가구는 올해 11월 30일이 입주 예정이었다.

계림 아이파크SK뷰 아파트는 현대산업개발과 SK에코플랜트가 공동 시공하는 단지로, 공사가 많이 진행돼 올해 7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전체 1천715가구 가운데 현대산업개발 시공분은 929가구로, 광주시의 이번 조치로 당분간 공사가 중단된다.

다만 SK에코플랜트가 짓는 786가구는 공사중지 명령 대상이 아니어서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 운암3단지는 현대산업개발과 GS건설, 한화건설 3사가 수주한 재건축 사업지로 총 3천214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다.

현재 기존 주택의 철거만 완료된 상태다.

이번에 광주시가 전면 공사 중단 명령을 내리면서 현산 사업장의 공사 지연에 따른 입주 차질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단 공사 중단명령 이후의 후속 조치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일제 안전점검을 벌일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입주 예정자들은 입주 지연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년 이상 입주가 지연될 경우 피해 보상도 만만찮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건설의 생명인 안전과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현산이 받을 타격이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3일 대표이사에 취임한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사장은 이날 사고 현장을 찾아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HDC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공식 사과하면서 "사고수습과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입주 예정자 "부수고 새로 지어달라"…현산 "정밀진단 후 결정"
이번 사고로 외벽이 붕괴된 화정 아이파크 입주 예정자들은 한마디로 '멘붕'에 빠진 상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무서워서 입주할 수 있겠느냐", "아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 "옆 동도 불안한데 재시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광주뿐만 아니라 이참에 현대산업개발의 전체 현장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안전진단을 진행해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며 현대산업개발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광주 사고 현장 신축 아파트의 재시공 등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일단 사고 수습과 안전 보강이 급선무로, 현장 재시공 방법 등은 추후 정밀구조안전진단 등을 거쳐 결정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역시 일단 정밀구조안전진단을 거친 뒤 완전 철거 후 다시 지을 것인지, 구조보강을 거쳐 이번에 무너진 층만 재시공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설유경 서일대 건축과 교수는 "일단 정밀 조사가 끝나봐야 뭐가 얼마나 문제고 어디까지 살릴 수 있을지, 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원인분석을 분명히 하지 않고 안일하게 대응했다가는 또 다른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 교수는 "경제적인 측면만 고려하면 안전에서 멀어진다"며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면 당연히 건물 전체를 재시공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설회사 구조설계 출신인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최원철 교수는 "주상복합아파트와 같은 고층 건물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들어가는 '코어' 부분의 상태가 중요한데 외벽이 무너졌다고 해도 코어가 멀쩡하면 전면 철거를 하지 않아도 구조 보강은 가능하다"며 "일단 정밀안전진단을 해봐야 전면 철거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입주민의 불안감을 달래고 안심시켜주는 것이 급선무"라며 "입주민 지원 대책도 반드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창사 이래 최대 위기 맞은 현산…학동 이어 법적 책임 가중
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설립된 한국도시개발이 모태로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끈 현대그룹의 계열사였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건설로 1군 건설사로 우뚝 섰으며 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통한 아파트 건설과 도시개발사업 등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다.

1999년 3월 정주영 명예회장이 장자인 정몽구 회장에게 자동차의 경영권을 승계하기로 결정하자 정주영 회장의 셋째 동생인 '포니정'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과 그의 장남인 정몽규 현 HDC 회장이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대가에서 떨어져 나왔다.

정몽규 현 HDC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을 이끌면서 2019년 못다 한 '모빌리티' 기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의 여파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자 인수를 포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참사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대형 사고가 겹치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몰리게 됐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학동 참사 이후 현장을 직접 찾아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고, 이후 안전사고 방지 대책까지 마련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일각에서는 "회사 전반에 걸쳐 안전관리 시스템의 문제가 커 보인다"며 "건설사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망각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도급순위 9위의 큰 회사가 큰 사고를 내고 불과 7개월 만에 똑같은 사고를 재발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경영진을 포함한 회사 내부의 기강 자체가 해이해져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아직 화정아이파크 사고 현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이미 학동 참사로 현장 책임자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번 일로 또 다른 법적 책임도 불가피해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달 27일 시행될 예정이라 경영진까지 구속될 수 있는 법적 처벌은 피해갈 것으로 보이지만 총체적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판과 책임은 면하기 어렵게 됐다.

네티즌들은 "두 번 연속 이런 사고를 내다니 회사를 신뢰하기 어렵다", "주택사업에서 손 떼라"라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를 분양받지 않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쌓아온 이미지가 잇단 사고로 무너져 내림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쌓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며 "앞으로 상당 기간 신뢰회복이라는 현산의 큰 숙제는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