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답·현학, 상투·신중의 한은…2022 금리관전법 [여기는 논설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올해 금리 운용, 좀 더 쉽게 구체적·선제적으로 알려줘야
이주열 총재 메시지, 구식 법원 판결문 스타일 벗어날 때
이주열 총재 메시지, 구식 법원 판결문 스타일 벗어날 때
기대보다 우려가 크지만 새해는 새해다. 지난해 말부터 쏟아진 한 해 전망과 예측이 올해에도 넘친다. 기업은 물론 가계·개인도 늘 새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실천방안을 강구한다. 다만 물러나는 정부는 적어도 올해 연 초에는 관찰 대상에서 ‘아웃’이다.
중앙은행, 한국은행은 어떨까. 어제 이주열 한은 총재의 공개 언급을 보면서 중앙은행은 올해 금리와 금융시장을 어떻게 리드할지 주목하게 된다. 말하나마다 한은 총재는 뉴스메이커 대열에 들어선다. 급으로 따지자면, 중량급이다. 어제 범금융 신년인사회라는 공개 행사에서 그가 한 말씀 했다. 한은과 금융시장 담당 기자들 전언과 해석을 보면, 요지는 기준금리 인상이 올해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말이 쉽지가 않다. 어렵다면 어렵고, 에두른다면 빙빙 에두르는 것이다. 현학적이고 신중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상투적이고 심지어 고답적이다. 한은은 이런 고질적 화법을 즐기는 것일까. 하긴 미국의 Fed를 비롯해 외국의 중앙은행을 보면 한은만 그런 것도 아니긴 하지만….
"신용위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완화 조치의 정상화" "금융시스템의 약한 고리" 등등 어제 한 이 총재의 이런 말이 그렇다. 자주 듣지만 여전히 탈출구부터 파놓는 듯한 애매한 말이 조금은 식상하기도 하다. 구랍 31일 내놓은 2022년 신년사에서도 "경제 상황의 개선에 맞춰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절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도무지 무슨 메시지인가.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경제가 좋아진다면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인가. 완화 정도는 무엇이며, 적절히 조절해가는 건 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분명 한국말인데 통역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자가 있고, 언론이 버틸 수 있다면 ‘댕큐!’다. 요지인즉, 금리를 적절히 혹은 '적당히' 올릴 방침인데, 경제가 좋아지는 지켜봐 가면서 하겠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쉽고 편하게 말하지 않는가.
'외국도 다 그렇게 한다고?' '금융시장이 워낙 예민해서 둘러 말 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 아닐까. ‘좀 있어 보이기’는 왕년에 법원이 잘했다. 판결문이 다 그러했다. 수십 쪽 판결문이 단 한 문장으로 돼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인 경우가 허다했다. 세인의 관심거리인 주요 판결이 나면 우르르 몰려간 기자들이 공보판사의 설명 듣고서야 기사 쓰던 때가 있었다. 법리 동원이나 이것저것 언급하는 현란한 논리에 명색 법조 기자도 고개를 흔들 지경이었다. 썰렁하게 말 하면, ‘그래서 사시 합격 후 법조인이 되면 최대의 국가공인 자격증 누리는 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법조의 '사시 지대론'에 비교한다면 한은은 많이 섭섭해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분히 현학적이고 고답적이며, 그래서 책임공방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것인가 싶은 한은을 보면, 그런 구식 법조 이미지와 겹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은이 금리 상승기가 온다고 예고했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신을 갖고 말해주면 좋겠다. 허리띠를 매야 변화기에 안전하다는 예고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것 조금 더 잘 보라고 전문가이고, 그래서 중앙은행 아닌가. 통화당국의 법적권한은 왜 줬겠나. ‘지대권’ 기대듯 하는 두루뭉술 암호 같은 예고언급 전망연설이 합리적 권위를 갖기 위해서라도 그런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한은이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독립된 법에 의거하는 중요한 국가기관이라는 사실을 한은맨도, 외부에서도 잊어선 안 된다.
이왕 금리정책의 방향이 정해졌다면 가급적 선제적으로, 구체적으로 잘 예고해주는 게 모든 경제주체들 돕는 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사설 제목으로 쓴다면, ‘통화당국 한은, 새해 금리운용 계획 좀 더 자세히 사전 예고해야’ 이런 제목을 달 수 있으려나. 그런 맥락에서 당장의 관심사는 오는 14일 열릴 예정인 금융통화위원회다. 이날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물론 기자들과 성급한 시장 일각이지만, 대두됐다. 증권가에선 이달 인상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세 차례 올려 현재 연 1.0%인 기준금리가 연말엔 연 1.75%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낸다. 물론 증권가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참고 정도로 하는 게 좋다. 다 믿을 만한 전망이 못 된다.
‘(이재명 후보가 내세우는) 기본소득제보다 취약계층 지원이 더 바람직하다’ ‘기본소득제가 자본주의 위협한다’는 한은 팀장의 올바른 기고 제언은 최근에 나온 한은의 어떤 연구 조사 보고서 보다 주목할 만 했다. 정치적 격변기, 올 한 해에 중앙은행의 이런 소신과 용기도 함께 기대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중앙은행, 한국은행은 어떨까. 어제 이주열 한은 총재의 공개 언급을 보면서 중앙은행은 올해 금리와 금융시장을 어떻게 리드할지 주목하게 된다. 말하나마다 한은 총재는 뉴스메이커 대열에 들어선다. 급으로 따지자면, 중량급이다. 어제 범금융 신년인사회라는 공개 행사에서 그가 한 말씀 했다. 한은과 금융시장 담당 기자들 전언과 해석을 보면, 요지는 기준금리 인상이 올해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말이 쉽지가 않다. 어렵다면 어렵고, 에두른다면 빙빙 에두르는 것이다. 현학적이고 신중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상투적이고 심지어 고답적이다. 한은은 이런 고질적 화법을 즐기는 것일까. 하긴 미국의 Fed를 비롯해 외국의 중앙은행을 보면 한은만 그런 것도 아니긴 하지만….
"신용위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완화 조치의 정상화" "금융시스템의 약한 고리" 등등 어제 한 이 총재의 이런 말이 그렇다. 자주 듣지만 여전히 탈출구부터 파놓는 듯한 애매한 말이 조금은 식상하기도 하다. 구랍 31일 내놓은 2022년 신년사에서도 "경제 상황의 개선에 맞춰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절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도무지 무슨 메시지인가.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경제가 좋아진다면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인가. 완화 정도는 무엇이며, 적절히 조절해가는 건 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분명 한국말인데 통역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자가 있고, 언론이 버틸 수 있다면 ‘댕큐!’다. 요지인즉, 금리를 적절히 혹은 '적당히' 올릴 방침인데, 경제가 좋아지는 지켜봐 가면서 하겠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쉽고 편하게 말하지 않는가.
'외국도 다 그렇게 한다고?' '금융시장이 워낙 예민해서 둘러 말 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 아닐까. ‘좀 있어 보이기’는 왕년에 법원이 잘했다. 판결문이 다 그러했다. 수십 쪽 판결문이 단 한 문장으로 돼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인 경우가 허다했다. 세인의 관심거리인 주요 판결이 나면 우르르 몰려간 기자들이 공보판사의 설명 듣고서야 기사 쓰던 때가 있었다. 법리 동원이나 이것저것 언급하는 현란한 논리에 명색 법조 기자도 고개를 흔들 지경이었다. 썰렁하게 말 하면, ‘그래서 사시 합격 후 법조인이 되면 최대의 국가공인 자격증 누리는 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법조의 '사시 지대론'에 비교한다면 한은은 많이 섭섭해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분히 현학적이고 고답적이며, 그래서 책임공방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것인가 싶은 한은을 보면, 그런 구식 법조 이미지와 겹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은, 행정부 아닌 독립 국가기관, 면피·알르바이 찾기라면 곤란
한은이 사는 법은 올해도 그렇다 치자. 실제로 중요한 관심사는 그래서 금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돈줄은 어느 정도로 죌 것인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가면, 금리는 분명 올릴 텐데 계속해서 미국보다 앞서 갈 것인지, 몇 월쯤에, 몇 번에 걸쳐, 어느 수준으로 올릴 것인가다. 아니, 꼭 그렇게 단정할 수만도 없다. ‘경제상황의 개선에 맞춰’라고 하지 않았나. 경제상황의 개선이 없으면 동결도 가능하고 오히려 금리를 내린 들 알르바이는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빙빙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상황 봐서 하겠다면, 정해진 건 없다는 얘기 아닌가.한은이 금리 상승기가 온다고 예고했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신을 갖고 말해주면 좋겠다. 허리띠를 매야 변화기에 안전하다는 예고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것 조금 더 잘 보라고 전문가이고, 그래서 중앙은행 아닌가. 통화당국의 법적권한은 왜 줬겠나. ‘지대권’ 기대듯 하는 두루뭉술 암호 같은 예고언급 전망연설이 합리적 권위를 갖기 위해서라도 그런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한은이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독립된 법에 의거하는 중요한 국가기관이라는 사실을 한은맨도, 외부에서도 잊어선 안 된다.
이왕 금리정책의 방향이 정해졌다면 가급적 선제적으로, 구체적으로 잘 예고해주는 게 모든 경제주체들 돕는 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사설 제목으로 쓴다면, ‘통화당국 한은, 새해 금리운용 계획 좀 더 자세히 사전 예고해야’ 이런 제목을 달 수 있으려나. 그런 맥락에서 당장의 관심사는 오는 14일 열릴 예정인 금융통화위원회다. 이날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물론 기자들과 성급한 시장 일각이지만, 대두됐다. 증권가에선 이달 인상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세 차례 올려 현재 연 1.0%인 기준금리가 연말엔 연 1.75%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낸다. 물론 증권가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참고 정도로 하는 게 좋다. 다 믿을 만한 전망이 못 된다.
'한은이 사는 법' 독립성·중립성·전문성·일관성
어떻든 관행처럼 된 표현이나 더없이 신중한 말보다 더 중요한 본질, 본업이 있다. 올해에도 한은이 국가기관 중앙은행으로 본연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과 정확성, 일관성 같은 것을 잊지 않고 잘 지키는 것이다. 올해 두 차례 대형 선거가 있어 더욱 강조하고 싶다. 평소에서 퇴행적인 한국의 정치권은 선거철이면 이성을 잃는다. 중앙은행에 대한 온갖 간섭과 압박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간섭이나 외압부터 이겨내야 한다. 한은이 사는 법은 정치권 눈치보기나 은근 슬쩍 절충 야합이 아니다. 이런 것만 잘 지킨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고답적이고 고고하면서, 상당히 뭐가 있는 식자그룹인 것처럼 좀 잰들 무슨 대수이겠나.‘(이재명 후보가 내세우는) 기본소득제보다 취약계층 지원이 더 바람직하다’ ‘기본소득제가 자본주의 위협한다’는 한은 팀장의 올바른 기고 제언은 최근에 나온 한은의 어떤 연구 조사 보고서 보다 주목할 만 했다. 정치적 격변기, 올 한 해에 중앙은행의 이런 소신과 용기도 함께 기대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