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DARPA, 실패를 성공처럼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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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봉균의 밀리터리 AI <7> 한국형 DARPA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 세 번째 이야기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 세 번째 이야기
한국인이 가장 멀리하고 싶어하는 단어 를 꼽으라면 아마도 ‘실패’가 1~2등을 다툴 것이다.(다른 하나는 ‘비교’ 또는 ‘열등’이지 않을까?) 미국 생활 30년 동안 직장과 일상에서 다양한 민족을 겪은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론은 악착같은 삶에 익숙한 동아시아계에서도 성공을 향한 한국인의 피나는 노력은 가히 독보적이라는 점이다. 실패자로 낙인찍히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 민족성이 6.25 전쟁 후 60년만에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만들어낸 동력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한국의 관료주의적, 평가 중심적 연구 문화에서 자라난 '실패 공포증'은 국책과제 성공률을 97~99%의 상수 (constant)로 만들어 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의 뿌리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이 바로 ‘한국형 DARPA’가 롱런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난 몇십년 동안 실패를 모르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연구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과연 ‘한국형 DARPA’는 실패를 어떻게 정의하고 관리하여야 롱런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먼저 미국의 DARPA가 실패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DARPA 연구 문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점을 꼽으라면, DARPA가 시행하는 연구에서 ‘실패’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정의하는 ‘연구비의 낭비’, 즉 연구팀에게 ‘실패자’라는 무능력의 족쇄를 씌우는 비관적 컨셉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불확실성을 없애준’ 귀한 지식으로 여기는 긍정적 컨셉이란 점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DARPA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여야 한다.
DARPA의 홈 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듯이, DARPA의 최상의 목적은 ‘prevent technological surprise’다. 1957년의 ‘Sputnik’ 같은 소위 ‘갑툭튀’ 무기가 나오는 걸 미리 예측해 내고, 이를 무력화하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게 이 기관의 존재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많은 연구 과제가 ‘세계 최초’로 실행되어왔고, 이는 지난 60여년 동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식 파괴적인 세계 최초 무기와 기술들로 태어났다. 여기에서 ‘world's first’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 연구와 중국 소련 등의 ‘갑툭튀’를 방어하려는 연구의 차이를 보게 된다. 즉, ‘갑툭튀’ 방지를 위한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계 최초, 최고의 무기나 기술이 나온 것이지 결코 세계 최초의 성과만을 최상의 목적으로 연구를 수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목적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면 왜 DARPA가 비슷한 문제를 푸는 과제 공고를 5~20년 사이에 한두 번씩 되풀이하는지, 또 이것이 결코 비효율적이거나 낭비가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하나의 커다란 문제를 풀기 위해 한 번씩 연구에 투자할 때마다 그 분야에 대한 ‘불확실성’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는 얘기다. 첫 도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필요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나올 때 쯤에 맞춰 다시 도전하도록 하게 해 주는 곳도 DARPA다. (참고로, 인공지능의 경우 DARPA가 이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다시 하기까지는 거의 30년이 걸렸다. 비록 공식적으로 인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2019년 DARPA에서 인공지능 분야에 총 30억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한 사실 자체가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개발 속도가 실제로 ‘갑툭튀’ 기술임을 뒤늦게나마 인지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된다. 즉, DARPA는 인공지능 분야만큼은 존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은 다음 칼럼에서 다룰 계획이다.)
그러면 DARPA는 실패를 어떻게 관리할까. 25년 동안 수십 번 DARPA 과제에 지원하고, 과제를 수행한 경험을 토대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공고된 과제에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풀겠다고 제안할 때부터 ‘실패’확률이 높은 아이템을 어떻게 정의하고, 과제 수행 중 언제 그리고 어떻게 실패할 아이템을 식별할 수 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여야 한다. 즉, 애초에 연구제안자가 다양한 실패 가능성을 미리 그리고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과제를 수주할 확률은 거의 없어진다는 얘기다. 이를 risk identification, risk mitigation, risk management라고 한다.
둘째, 연구과제 수행 중에 수시로 PM과 미팅하면서 새로운 결과 (성공이든 아니든)를 분석하며, 최초의 목표 달성 가능성을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수정한다. 즉, 연구 수행과정을 통해 줄어드는 불확실성의 속도와 질에 따라서 연구 시작 전에 세웠던 최종 결과와 현재 예측가능한 최종 결과와의 차이를 분석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연구 결과의 예상 도달점을 수정한다. 주목할 점은 설사 DARPA에서 최종 목표를 수정한다고 해서 실패한 연구가 성공한 연구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목표 수정에 쓰여진 연구 결과의 심도 있는 이해를 통해 다음 연구과제가 어떤 구조와 예산, 그리고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즉, 현저하게 줄어든 불확실성이 다음 연구의 성공 기반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DARPA는 실패를 피하려는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닌, 실패와 대담하게 맞짱을 뜨는 연구를 지원하고 거기서 나오는 노하우를 적재적소에 요긴하게 잘 쓰는 기관이다.
최근 이광형 KAIST총장이 추진한 국내 첫 ‘실패연구소’ 설립이나, “성공률이 80%가 넘으면 연구비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정책은 한국의 성공위주 연구 문화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런 신선한 문화가 하나둘 모여야 '축적의 힘'이 될 것이다. 단순한 실패 용인이 아닌, 매주 과제 책임자를 불러 결과물을 추궁하는 관리가 아닌, DARPA처럼 융합적 거시적 과제 내에서 체계적으로 실패를 관리할 수 있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하기를 기대해 본다.
<류봉균 대표>
▶현 (주)세이프가드AI 창업자 겸 대표
▶현 EpiSys Science 창업자 겸 대표
▶전 보잉 팀장, 수석연구원, 및 개발책임자
▶미국 콜럼비아대 전자공학 박사
이 점이 바로 ‘한국형 DARPA’가 롱런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난 몇십년 동안 실패를 모르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연구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과연 ‘한국형 DARPA’는 실패를 어떻게 정의하고 관리하여야 롱런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먼저 미국의 DARPA가 실패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DARPA 연구 문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점을 꼽으라면, DARPA가 시행하는 연구에서 ‘실패’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정의하는 ‘연구비의 낭비’, 즉 연구팀에게 ‘실패자’라는 무능력의 족쇄를 씌우는 비관적 컨셉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불확실성을 없애준’ 귀한 지식으로 여기는 긍정적 컨셉이란 점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DARPA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여야 한다.
DARPA의 홈 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듯이, DARPA의 최상의 목적은 ‘prevent technological surprise’다. 1957년의 ‘Sputnik’ 같은 소위 ‘갑툭튀’ 무기가 나오는 걸 미리 예측해 내고, 이를 무력화하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게 이 기관의 존재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많은 연구 과제가 ‘세계 최초’로 실행되어왔고, 이는 지난 60여년 동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식 파괴적인 세계 최초 무기와 기술들로 태어났다. 여기에서 ‘world's first’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 연구와 중국 소련 등의 ‘갑툭튀’를 방어하려는 연구의 차이를 보게 된다. 즉, ‘갑툭튀’ 방지를 위한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계 최초, 최고의 무기나 기술이 나온 것이지 결코 세계 최초의 성과만을 최상의 목적으로 연구를 수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목적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면 왜 DARPA가 비슷한 문제를 푸는 과제 공고를 5~20년 사이에 한두 번씩 되풀이하는지, 또 이것이 결코 비효율적이거나 낭비가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하나의 커다란 문제를 풀기 위해 한 번씩 연구에 투자할 때마다 그 분야에 대한 ‘불확실성’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는 얘기다. 첫 도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필요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나올 때 쯤에 맞춰 다시 도전하도록 하게 해 주는 곳도 DARPA다. (참고로, 인공지능의 경우 DARPA가 이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다시 하기까지는 거의 30년이 걸렸다. 비록 공식적으로 인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2019년 DARPA에서 인공지능 분야에 총 30억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한 사실 자체가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개발 속도가 실제로 ‘갑툭튀’ 기술임을 뒤늦게나마 인지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된다. 즉, DARPA는 인공지능 분야만큼은 존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은 다음 칼럼에서 다룰 계획이다.)
그러면 DARPA는 실패를 어떻게 관리할까. 25년 동안 수십 번 DARPA 과제에 지원하고, 과제를 수행한 경험을 토대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공고된 과제에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풀겠다고 제안할 때부터 ‘실패’확률이 높은 아이템을 어떻게 정의하고, 과제 수행 중 언제 그리고 어떻게 실패할 아이템을 식별할 수 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여야 한다. 즉, 애초에 연구제안자가 다양한 실패 가능성을 미리 그리고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과제를 수주할 확률은 거의 없어진다는 얘기다. 이를 risk identification, risk mitigation, risk management라고 한다.
둘째, 연구과제 수행 중에 수시로 PM과 미팅하면서 새로운 결과 (성공이든 아니든)를 분석하며, 최초의 목표 달성 가능성을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수정한다. 즉, 연구 수행과정을 통해 줄어드는 불확실성의 속도와 질에 따라서 연구 시작 전에 세웠던 최종 결과와 현재 예측가능한 최종 결과와의 차이를 분석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연구 결과의 예상 도달점을 수정한다. 주목할 점은 설사 DARPA에서 최종 목표를 수정한다고 해서 실패한 연구가 성공한 연구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목표 수정에 쓰여진 연구 결과의 심도 있는 이해를 통해 다음 연구과제가 어떤 구조와 예산, 그리고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즉, 현저하게 줄어든 불확실성이 다음 연구의 성공 기반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DARPA는 실패를 피하려는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닌, 실패와 대담하게 맞짱을 뜨는 연구를 지원하고 거기서 나오는 노하우를 적재적소에 요긴하게 잘 쓰는 기관이다.
최근 이광형 KAIST총장이 추진한 국내 첫 ‘실패연구소’ 설립이나, “성공률이 80%가 넘으면 연구비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정책은 한국의 성공위주 연구 문화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런 신선한 문화가 하나둘 모여야 '축적의 힘'이 될 것이다. 단순한 실패 용인이 아닌, 매주 과제 책임자를 불러 결과물을 추궁하는 관리가 아닌, DARPA처럼 융합적 거시적 과제 내에서 체계적으로 실패를 관리할 수 있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하기를 기대해 본다.
<류봉균 대표>
▶현 (주)세이프가드AI 창업자 겸 대표
▶현 EpiSys Science 창업자 겸 대표
▶전 보잉 팀장, 수석연구원, 및 개발책임자
▶미국 콜럼비아대 전자공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