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관광] ⑤'삶을 닮은 치유의 숲' 저지리 환상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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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읽어주는 마을과 사람…그 속에서 삶의 휴식·용기 얻어
환상숲 10년 제주 대표 관광지 "단 한 사람이라도 숲 해설"
수십 수백 차례 이어진 화산활동으로 뜨거운 용암이 흘렀던 제주의 대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펄펄 끓었던 땅에도 생명이 움트고 나무들은 바위틈 사이로 뿌리를 내려 숲을 이뤘다.
자연이 주는 환상적인 신비이자 기적이다.
책을 읽듯 숲이 이뤄낸 기적, 숲속의 시간과 공간의 행간을 읽어주고 그 소중함을 알리는 마을 그리고 사람들이 있다.
◇ 곶자왈이 주는 교훈
지난 11월 30일 찾은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곶자왈 '환상숲'.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덤불을 뜻하는 '자왈'이란 말이 결합한 제주 고유어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단단한 용암대지 위에 갖가지 식물이 자라나 이뤄진 제주만의 독특한 숲이다.
환상숲이란 이름을 가진 이곳 곶자왈에서 '숲을 읽어주는' 해설사 이지영 씨가 두 팔 벌려 방문객을 맞았다.
이씨는 우선 방문객들에게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숲 해설을 시작했다.
"이 사진이 (1년 12달 중) 몇 월처럼 보이세요?"
푸른 나뭇잎을 자랑하는 곶자왈 사진과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 곶자왈 사진.
너무나 뻔한 듯 보였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곳 곶자왈은 1월 한겨울에도 푸르른 숲이고요.
4∼5월에 오히려 나뭇잎이 가장 많이 떨어진답니다.
"
곶자왈에는 지표수가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통로인 작은 구멍을 볼 수 있는데 일명 '숨골'이라고 한다.
숨골을 통해 나오는 지하 공기의 온도가 대략 15도 정도로, 숨골은 곶자왈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여름에는 숨골의 공기가 에어컨과 같은 역할을 하고, 반대로 겨울에는 난방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숨골 덕분에 곶자왈에서는 난대 수종과 온대 수종이 공존하는 독특한 식생을 보인다.
곶자왈 안과 밖의 계절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상한 계절의 공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씨의 설명을 들은 방문객은 묘한 호기심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더욱 귀를 쫑긋 세우고 이씨를 좇아 곶자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한 나무 앞에 서더니 다시 숲 해설이 시작된다.
"보세요.
나무의 뿌리들이 다 밖으로 나와 있어요.
바닥에 흙이 부족하고 (돌 때문에) 뿌리가 밑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잖아요.
대신 안 쓰러지려고 버티다 보니까 (뿌리가) 근육질이 됐어요.
"
마치 평평한 판을 깔아놓은 것처럼 지표면에 넓게 노출된 뿌리가 나무 전체를 꿋꿋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판근(板根) 현상이다.
살아남기 어려운 자연환경 속에도 느리지만 굳건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나무의 모습에서 무언가 삶의 교훈을 얻는 듯했다.
때를 맞춰 해설사 이씨가 슬며시 준비한 메시지를 꺼내 든다.
'어려운 상황은 당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ㅈㆍ들지 맙써.(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힘겹게 올라온 길들이 무너져 내릴 때도….'
'당신의 수고가 꺾일 수는 있지만, 당신이 쌓아온 시간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
환상숲은 고된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준다.
◇ 치유의 숲 곶자왈
제주시 한림읍의 도너리 오름에서 분출해 흘러 내려온 용암 끝자락에 형성된 곶자왈 환상숲.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곶자왈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이지영 씨 가족의 사연과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환상숲은 이씨의 아버지 이형철 대표가 직접 가꾼 곳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06년 겨울 뇌경색으로 쓰러져 큰 수술을 받고, 47살의 나이에 20여 년간 근무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오른쪽 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 대표가 사람을 피해 만난 게 바로 숲이었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며 가시덤불로 우거진 곶자왈에 산책로를 내며 숲을 가꿔나갔다.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하며 걸을 수 있을 산책로만 냈을 뿐 절대 숲을 훼손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년간 매일 숲을 걸으며 돌을 나르고 길을 내다보니 몸은 완쾌되고, 어느새 길도 완성됐다.
이후 알음알음 숲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면서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이 바로 환상숲이다.
지난 2011년의 일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숲을 알린다는 것이 오히려 숲의 파괴를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사람의 발길을 막는 것보다 숲 해설을 통해 제대로 제주 곶자왈을 알리고 보호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됐다.
환상숲은 '단 한 사람이라도 원한다면 숲 해설을 해드립니다'란 모토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처음엔 몇 사람 없던 방문객이지만 이들 가족의 진심이 통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한 해 평균 15만 명이 찾는 제주의 대표 곶자왈 공원이 됐다.
마을주민 등으로 구성된 직원 10명이 매시간 숲 해설을 하며 곶자왈을 알리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환상숲은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촌교육농장이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지정한 대한민국 '100대 스타 농장', 2016년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지킴이상을 수상했다.
또 제주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 웰니스 관광지다.
환상숲은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학습의 장이 되기도 한다.
정글처럼 우거진 숲을 구경하고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삶의 여유를 찾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연합뉴스
환상숲 10년 제주 대표 관광지 "단 한 사람이라도 숲 해설"
수십 수백 차례 이어진 화산활동으로 뜨거운 용암이 흘렀던 제주의 대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펄펄 끓었던 땅에도 생명이 움트고 나무들은 바위틈 사이로 뿌리를 내려 숲을 이뤘다.
자연이 주는 환상적인 신비이자 기적이다.
책을 읽듯 숲이 이뤄낸 기적, 숲속의 시간과 공간의 행간을 읽어주고 그 소중함을 알리는 마을 그리고 사람들이 있다.
◇ 곶자왈이 주는 교훈
지난 11월 30일 찾은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곶자왈 '환상숲'.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덤불을 뜻하는 '자왈'이란 말이 결합한 제주 고유어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단단한 용암대지 위에 갖가지 식물이 자라나 이뤄진 제주만의 독특한 숲이다.
환상숲이란 이름을 가진 이곳 곶자왈에서 '숲을 읽어주는' 해설사 이지영 씨가 두 팔 벌려 방문객을 맞았다.
이씨는 우선 방문객들에게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숲 해설을 시작했다.
"이 사진이 (1년 12달 중) 몇 월처럼 보이세요?"
푸른 나뭇잎을 자랑하는 곶자왈 사진과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 곶자왈 사진.
너무나 뻔한 듯 보였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곳 곶자왈은 1월 한겨울에도 푸르른 숲이고요.
4∼5월에 오히려 나뭇잎이 가장 많이 떨어진답니다.
"
곶자왈에는 지표수가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통로인 작은 구멍을 볼 수 있는데 일명 '숨골'이라고 한다.
숨골을 통해 나오는 지하 공기의 온도가 대략 15도 정도로, 숨골은 곶자왈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여름에는 숨골의 공기가 에어컨과 같은 역할을 하고, 반대로 겨울에는 난방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숨골 덕분에 곶자왈에서는 난대 수종과 온대 수종이 공존하는 독특한 식생을 보인다.
곶자왈 안과 밖의 계절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상한 계절의 공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씨의 설명을 들은 방문객은 묘한 호기심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더욱 귀를 쫑긋 세우고 이씨를 좇아 곶자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한 나무 앞에 서더니 다시 숲 해설이 시작된다.
"보세요.
나무의 뿌리들이 다 밖으로 나와 있어요.
바닥에 흙이 부족하고 (돌 때문에) 뿌리가 밑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잖아요.
대신 안 쓰러지려고 버티다 보니까 (뿌리가) 근육질이 됐어요.
"
마치 평평한 판을 깔아놓은 것처럼 지표면에 넓게 노출된 뿌리가 나무 전체를 꿋꿋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판근(板根) 현상이다.
살아남기 어려운 자연환경 속에도 느리지만 굳건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나무의 모습에서 무언가 삶의 교훈을 얻는 듯했다.
때를 맞춰 해설사 이씨가 슬며시 준비한 메시지를 꺼내 든다.
'어려운 상황은 당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ㅈㆍ들지 맙써.(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힘겹게 올라온 길들이 무너져 내릴 때도….'
'당신의 수고가 꺾일 수는 있지만, 당신이 쌓아온 시간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
환상숲은 고된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준다.
◇ 치유의 숲 곶자왈
제주시 한림읍의 도너리 오름에서 분출해 흘러 내려온 용암 끝자락에 형성된 곶자왈 환상숲.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곶자왈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이지영 씨 가족의 사연과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환상숲은 이씨의 아버지 이형철 대표가 직접 가꾼 곳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06년 겨울 뇌경색으로 쓰러져 큰 수술을 받고, 47살의 나이에 20여 년간 근무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오른쪽 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 대표가 사람을 피해 만난 게 바로 숲이었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며 가시덤불로 우거진 곶자왈에 산책로를 내며 숲을 가꿔나갔다.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하며 걸을 수 있을 산책로만 냈을 뿐 절대 숲을 훼손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년간 매일 숲을 걸으며 돌을 나르고 길을 내다보니 몸은 완쾌되고, 어느새 길도 완성됐다.
이후 알음알음 숲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면서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이 바로 환상숲이다.
지난 2011년의 일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숲을 알린다는 것이 오히려 숲의 파괴를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사람의 발길을 막는 것보다 숲 해설을 통해 제대로 제주 곶자왈을 알리고 보호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됐다.
환상숲은 '단 한 사람이라도 원한다면 숲 해설을 해드립니다'란 모토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처음엔 몇 사람 없던 방문객이지만 이들 가족의 진심이 통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한 해 평균 15만 명이 찾는 제주의 대표 곶자왈 공원이 됐다.
마을주민 등으로 구성된 직원 10명이 매시간 숲 해설을 하며 곶자왈을 알리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환상숲은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촌교육농장이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지정한 대한민국 '100대 스타 농장', 2016년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지킴이상을 수상했다.
또 제주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 웰니스 관광지다.
환상숲은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학습의 장이 되기도 한다.
정글처럼 우거진 숲을 구경하고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삶의 여유를 찾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