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너른마당' 식당서 매년 대왕 기일에 합동 차례
동북아 호령한 대왕의 위업 기리고 고구려 기상 계승 목적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의 '너른마당' 식당에서는 매년 음력 9월 29일이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음식점 뜰에 6m 높이 광개토대왕비 세우고 17년째 추모제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실물 크기로 복제해 이 음식점 입구에 세운 거대한 비석 앞에서 17년째 합동 추모제가 열린다.

이달 3일에도 각계 인사와 예술인, 지역 원로 등 200여 명이 모여 대왕의 위업을 기리고 중국의 침략을 이겨낸 고구려의 힘찬 기상을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는 해병대 예비역으로 구성된 빅밴드의 연주와 난타 공연, 합창, 제례, 기념식 순으로 약 2시간30분 동안 이뤄졌다.

해마다 사재를 내 추모제를 지내는 주인공은 '광개토호태왕존숭회' 회장이자 너른마당 대표인 임순형(71)씨다.

고교 졸업 후 농사일과 식당 운영을 해온 임 회장이 광개토대왕 추모사업을 벌이기로 마음먹은 것은 1999년이다.

그해 고구려 유적 탐방차 중국 지린성 일대를 여행하다 광개토대왕비를 보고 우리 민족에 대한 벅찬 자긍심을 느낀 임 회장은 대왕을 존중하고 숭배하는 일을 하기로 작심했다.

이 비에는 대왕이 신라의 요청으로 5만 군사를 이끌고 왜구를 물리쳤고 동부여와 후연을 격파함으로써 요동을 차지했으며 남으로는 한강까지 영토를 넓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비문에 기록된 이도여치(以道輿治) 사상은 인류 공동 번영을 중시하는 고구려의 건국이념이다.

임 회장은 고구려의 패기와 웅혼한 기상을 국내에 알리고 계승하는 데 이 비석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고 판단해 이듬해인 2000년 중국 허베이(河北)성 취양(曲陽)현의 채석장을 찾아갔다.

지린성에서 약 2천Km 떨어진 이곳에 광개토대왕비와 재질이 같은 돌이 많이 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크기와 모양, 글자 등을 실물처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두께가 얇은 돌의 두 면에 글씨를 새기는 실수를 하는가 하면 완성 직전에 비가 깨지는 사고가 생기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4년 비로소 거대한 4면 돌기둥 비석이 제작됐다.

높이 6.3m, 둘레 6.6m, 무게 47t으로 실물 크기와 비슷하고 한자도 원형과 같은 1천775자가 새겨진 비석이 탄생한 것이다.

음식점 뜰에 6m 높이 광개토대왕비 세우고 17년째 추모제
임 회장이 중국과 한국을 4차례 오가며 광개토대왕비 탁본 사본을 건네주고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지적해가며 4년을 기다려준 결과였다.

육로와 바닷길을 거쳐 국내로 반입된 비석은 약 1만6천㎡의 뜰과 연못, 텃밭 등을 갖춘 너른마당 입구에 세워졌다.

추모제 날짜는 대왕 사망 후 2년 만인 414년 9월 29일 비석이 세워졌다는 금석학 전문가 등의 비문 해석을 참고해서 정했다.

비석 건립일은 고인의 기일과 대체로 일치하고 당시 음력을 썼을 것이라는 추론을 바탕으로 음력 9월 29일을 택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5년 첫 추모제가 열렸고 시간이 갈수록 각계 저명 인사들의 격려와 응원이 이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이한동·이수성·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박찬종 전 신민당 원내총무, 강현석 전 고양시장 등이 참여했고, 탤런트 전원주 씨를 비롯한 연예인들도 추모제에 동참했다고 임 회장이 전했다.

손자병법 전문가로 유명한 김병관 전 제1야전군사령관(예비역 육군 대장)은 차례상에 첫 잔을 올리는 초헌관 등의 역할을 10여 년째 했다.

김 전 부사령관은 "만주 일대 소수민족에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준 대왕의 뜻을 이어받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각오를 추모제에서 다진다"면서 "앞으로도 이 행사에 계속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평소에도 현장 학습차 학급 단위로 방문하는 초등학생 등을 상대로 광개토대왕비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위대한 역사를 지닌 자랑스러운 민족이라고 가르치는 등 대왕 선양사업을 하느라 동분서주한다.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대왕의 위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추모제를 자손 대대로 이어나갈 계획이라는 임 회장은 13일 "더 많은 국민이 동참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홍보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음식점 뜰에 6m 높이 광개토대왕비 세우고 17년째 추모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