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S. 밀로 '굿 이너프' 출간

19세기 중반 발간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 과학문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모든 생물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설명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인간은 '신의 자녀'라는 선택적 지위를 잃었지만, '최적화'라는 진화의 무기를 얻었다.

다윈의 자연 선택론은 인간 사회에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효율과 경쟁, 혁신을 추구하는 시장 자유주의와 맞닿으면서 인류의 무한 경쟁을 촉발했다.

인류 문명은 경쟁 속에 급속한 발전을 이뤄냈지만, 부작용도 초래했다.

우생학이 만들어져 전쟁의 실마리가 됐고, 경제적 양극화도 불러일으켰다.

철학자이자 역사가로서 다양한 책을 저술한 다니엘 S. 밀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는 신간 '굿 이너프'(다산 사이언스)를 통해 이 같은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을 논박한다.

자연이란 다윈의 말처럼 최적화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린의 경우가 저자가 든 대표적인 예다.

야생에서 기린을 본 적이 없던 많은 진화학자는 기린이 높은 곳의 먹이를 먹기 위해 긴 목을 가지도록 진화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기린은 실제 낮은 곳에서 자란 풀을 즐겨 먹는다.

특히 건기에는 낮은 곳에 있는 풀을 먹는데 이곳은 다른 초식동물 경쟁자와 먹이가 겹치는 곳이다.

오히려 먹이가 풍부한 우기가 돼서야 높은 곳의 잎을 먹는 모습을 보면 기린의 긴 목이 최적으로 진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적자생존'은 정말 자연의 법칙일까?
저자는 다윈이 자연선택 이론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최적화'에 예외적인 케이스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설명한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해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게 최적화의 법칙인데, 교미 시에 정자 수를 낭비하는 보노보노나 침팬지의 경우처럼 자연에는 에너지의 낭비를 일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자연의 법칙은 진화와 혁신이기보다는 "정체"라고 강변한다.

저자는 "변화는 자연에서 예외에 속하며, 보수주의가 규칙"이라고 설명한다.

DNA가 유전체에서 유리한 것이건 해로운 것이건 가리지 않고, 돌연변이라면 모조리 제거하려고 한다는 게 그 예다.

진화론에 대해 논박하던 저자는 책 후반부로 가서 자연에서 인간사회로 보폭을 넓힌다.

특히 다윈주의에 뿌리를 둔 현대 사회가 인간의 탁월성에 지나치게 방점을 두고 있다며 이 같은 태도는 비생산적이라고 비판한다.

"개인에게 탁월성은 헛수고나 다름없다.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충분히 훌륭한 적정 수준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적합도가 떨어진다.

이들은 더 자주 실패하고, 실패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도 더 크다.

"
책은 '종의 기원'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관점을 담았다.

이 때문에 '종의 기원'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페이지를 넘길 때 다소 갸우뚱거릴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비를 넘어선다면 문학, 철학, 생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유연한 전개에 진화론과 사회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충호 옮김. 432쪽, 2만2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