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중주 라이브 연주와 스피커 60대가 선사하는 소리의 맛
시미언의 삶 지켜본 내레이터 역 김소진 연기 눈길
자연의 음악 가득한 무대…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새소리, 바람 소리, 천둥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려온다.

마치 청량한 숲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피아노,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4중주 라이브 연주는 이야기 전개에 따라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렬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22일 개막한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는 이렇듯 소리의 맛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스피커 60여 대가 무대와 객석을 ㄷ 자로 감싼 공연장에서는 자연의 소리가 청각을 울리며 공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선보이는 실험적 작품을 위한 기획 시리즈 프로그램 '컨템포러리S'의 세 번째 작품으로,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국내 최초로 무대화됐다.

자연의 음악 가득한 무대…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작품은 새들의 노랫소리를 기보한 최초의 음악가 시미언 피즈 체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 뉴욕주 제너시오의 성공회 사제였던 시미언은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승화시키고자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사제관과 정원의 각종 소리를 악보에 담았다.

연극은 딸을 출산하다 사망한 지 28년이 지나도록 아내를 잊지 못하는 시미언과 딸 로즈먼드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시미언은 딸이 아내를 죽였다며 원망하고, 로즈먼드는 시미언의 곁을 떠난다.

딸은 중년이 되어 사제관에 돌아오지만 아빠는 여전히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미언은 자신이 기보한 '야생 숲의 소리'를 출판사에 투고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성도들에게는 직무에 불성실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정원의 소리를 악보에 담으며 하루하루 늙어간다.

자연의 음악 가득한 무대…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무대에는 시미언 역의 배우 정동환, 딸과 아내로 1인 2역을 소화하는 이경미, 극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내레이터 역의 김소진이 등장한다.

특히 내레이터 역의 김소진은 눈길을 끌었다.

낮은 목소리에 섬세한 감정을 실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시미언의 속마음을 대변하며, 때론 친구처럼 대화를 나눈다.

오래도록 사제관과 정원을 떠돌며 시미언의 삶을 모두 지켜봤을 숲의 정령처럼 여겨졌다.

정동환은 시미언으로 완벽하게 몰입했다.

공연 내내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때론 집착과 광기의 연기를 선보이며 무대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시미언은 "당신은 거의 여기 있으니까 당신은 거의 이곳에 있어. 그래서 나도 거의 행복해"라면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집착을 표현한다.

자연의 음악 가득한 무대…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무대는 사제관과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사제관 공간에는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피아노와 식탁, 흔들의자가 놓여 있고, 아내가 아끼던 정원은 실제 살아 있는 꽃과 식물로 꾸며져 있다.

사제관과 정원 사이에는 물이 담긴 연못도 마련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전달되는 내용이 조금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다.

황정은 작가, 오경택 연출, 이진욱 작곡가가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내달 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