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것. 내가 나임을 인정받는 것. 원하는 건 그런 최소한의 것들이에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낸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
한국에서 태어난 몽골 국적의 마리나(19)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은유 작가가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에서 평범한 삶에 대한 바람을 나타낸다.
그는 이른바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이주민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 중 부모의 체류자격 상실, 난민 신청 실패 등에 따라 체류자격이 없는 아동 중 한 명이다.
이주 관련 단체들은 국내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만~30만 명,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 명 정도라고 추산한다.
마리나는 현행법상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한국을 떠나야 하는 건 기본권 침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인권위는 지난해 5월 법무부에 마리나의 강제퇴거 중단을 권고했다.
마리나는 제도 변경으로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게 됐지만, 이 자격은 1년간 유효하고 매년 갱신해야 한다.
인권위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고 책을 펴내게 됐다는 은유 작가는 마리나를 비롯해 이주아동 5명, 이주아동 어머니, 이주인권활동가, 이주아동 지원 변호사 등 총 9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저자는 미등록 이주민 자녀로 태어난 아동, 문제없이 살다가 아버지가 출국 후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불법체류자가 된 아동, 한국에 살며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탓에 귀국이 어려운데 난민 신청에 실패한 아동 등의 사례를 소개한다.
미등록 이주아동 부모인 인화(59)는 1990년대 초 다섯 살 호준과 함께 한국에 왔지만, 한국인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여전히 불법체류자로 산다고 한다.
서른을 앞둔 호준은 "한국인과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비자를 주는데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 사람은 왜 안 되나.
한국에서 25년을 일했다"고 묻는다.
저자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사는 작은 인간에게 눈길이 갔다고 표현한다.
그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생의 초기 세팅이 이뤄지는 시기에 사막 같은 곳에 내던져진 아이를 뉴스에서 보고 나면 오래도록 심란했다"고 말한다.
책은 미등록 이주아동이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본인 명의 휴대전화 개통이 어렵고, 청와대에 견학하러 가도 들어가지 못하며, 티켓 예매 사이트 회원 가입이 안 돼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사는 일부터 QR 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까지 비국민 아이들에게 배제와 좌절은 일상이다"라며 "공부할 권리는 있지만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올해 4월 법무부가 발표한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에 관해서도 짚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심사받을 기회를 주는 게 이 방안의 골자다.
저자는 "이 대책은 아주 소수의 아동에게만 해당하는데 태어나자마자 한국에 온 아이나 15년보다 짧은 기간 체류했지만 국적국에 귀국하기 힘든 경우는 구제되지 못한다"며 "이제 첫발을 떼었을 뿐 갈 길이 멀다.
실질적이고 항시적인 구제대책 마련은 숙제"라고 강조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232쪽. 1만5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