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H₂O인가?' 출간…'페르난두 질 과학철학 국제상' 수상작

물은 물질의 원자론적 조성을 둘러싼 논쟁에서 종종 거론되는 주제다.

물의 분자식이 'H₂O'라는 건 상식으로 통하지만, 과거 원자화학의 첫 반세기 동안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은 1808년 원조 원자론에서 물의 분자식이 'HO'라고 주장했다.

H₂O라는 분자식이 옳다는 합의는 원자가라는 개념에 기초를 둔 유기 구조 이론이 확립된 19세기 중반 이후에서야 이뤄졌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장하석(54)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물은 H₂O인가?'(김영사)에서 과학적 가정 '물은 H₂O다'를 탐구하며 진리란 무엇이고 그걸 추구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살핀다.

저자는 단순하고 당연시되는 과학 지식이 형성되고 받아들여지기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으며, 어떤 연구 과정과 사고방식을 통해 결과를 얻어냈는지 알아야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무관심, 비이성적 거부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돌턴 역시 원자론을 다룬 최초의 저서에서 물을 이루는 원소의 원자가 몇 개인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에 관한 질문에 확실히 답할 방법이 없다는 걸 인정했다고 한다.

이어 돌턴이 '최대 단순성의 규칙'이란 가정을 추가해 물의 분자식을 HO라고 설명했는데, 물은 그가 아는 한 수소와 산소의 유일한 화합물이니 가장 단순한 원자의 조합이라고 가정했다는 의견도 덧붙인다.

H₂O라는 물의 분자식은 아보가드로가 처음 제안했는데, 이는 가설 위에 가설을 세워 얻어낸 거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현대 과학철학에서 핵심 주제인 실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능동적 실재주의'를 제시한 뒤 다원주의를 체계적으로 옹호한다.

장하석의 '물' 탐구 결론은 다원주의…"과학기술 맹신 넘어서야"
'능동적 실재주의'란 우리 자신을 실재에 최대한 노출하기로 하는 과학적 태도이며, 불변의 진리가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시도 대신 실재에서 배우는 현실적인 방법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의한다.

책은 "물은 H₂O다.

수소와 산소의 정전기적 결합의 산물이며 전지를 사용해 분해할 수 있다"며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의 일대일 결합의 산물이다.

원소이며 '플로지스톤'을 집어넣거나 빼냄으로써 수소 기체와 산소 기체를 생산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명제를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우리는 논리적 상호 모순이 발생하는 방향으로 이 명제들을 해석함으로써 단 하나의 명제만 선택하는 것을 강제할 수도 있다"며 "이 명제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고, 각각이 속한 실천 시스템들의 장점을 환영하고 발전시킬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능동적 규범적 인식적 다원주의'로 규정한다.

다원성이 주는 혜택으로는 다수의 시스템을 그저 허용하는 것에서 유래하는 '관용의 혜택'과 시스템 간 경쟁과 융합 등을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의 혜택'으로 구분한다.

이를 토대로 나태한 관용과 판단의 포기를 뜻하는 상대주의에서 벗어나 지식의 육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과학적 연구의 질과 가치를 평가하는 다원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한다.

저자는 "성숙한 다원주의적 태도를 지닌 사람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것과 생산적으로 관계 맺는다"고 강조한다.

2012년 8월 출간 이후 약 9년 만에 번역돼 국내에 소개되는 이 책은 저자의 '상보적 과학' 연구 프로젝트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상보적 과학'이란 과학지식을 역사적, 철학적으로 재조명해 과학자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과학을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과학사-과학철학사적 비전이다.

그는 2004년 '온도계'를 탐구해 내놓은 첫 결과물 '온도계의 철학'으로 과학철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수상했고, '화학적 물'을 탐구한 이 책으로는 5년간 과학철학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인 책에 수여하는 '페르난두 질 과학철학 국제상'을 받았다.

전대호 옮김. 680쪽. 2만9천800원.
장하석의 '물' 탐구 결론은 다원주의…"과학기술 맹신 넘어서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