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윤곽이 제시되지 않는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 기초해 대화와 외교를 통한 비핵화에 합의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북·미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달면서 대북정책에서 한·미 간 시각차를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과거 전제조건 없이 김정은과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전제조건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나는 (단순히) 어떤 사람의 말에 따라 그들이 뭘 할지 말지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김정은)가 어떤 약속을 한다면 그를 만날 것”이라며 “그 약속은 그의 핵무기고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핵화에 대한) 어떤 아웃라인(outline)이 만들어지고, 나의 국무장관 등이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갈지에 대해 협상하지 않는다면 (김정은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런 전제조건 없이 김정은과 만남으로써 북한이 추구하는 ‘국제적인 정당성 인정’을 거저 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작년 대선 때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없이 김정은과 세 차례 만남을 통해 김정은과 북한체제의 정당성만 높여줬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 발언도 그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며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해 전혀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도 한·미 정상회담 후 익명을 전제로 한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문을 닫고 있지 않다”면서도 “현재로선 정상회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직 적절한 준비를 한 이후에만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깜짝 지명했다. 미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실무를 총괄한 김 특별대표를 임명한 것은 북·미 대화 재개에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민감해하는 북한 인권 문제도 거론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하고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촉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인권을 핵심 이슈로 제기해온 반면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란 지적을 받았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간 간극을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