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 년 전에 형성된 암사동 신석기 유적이다.
마을 옆으로 나 있는 올림픽대로 위로 바람보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난다.
서울 변두리인 이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성도가 높은 다운 빗살무늬토기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자부심을 품는 시민은 많지 않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이다.
제일 정교하고 발전된 양식의 빗살무늬토기는 암사동을 비롯한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서 출토됐다.
이 때문에 고고학계에는 빗살무늬토기 문화가 중국 동북부 지역을 포함해 한반도 일대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암사동 유적지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은 적지 않다.
이곳을 찾는 시민은 연간 12만 명가량 된다.
암사동 유적을 중심으로 매년 가을 3일 동안 펼쳐지는 강동선사문화축제에는 40여만 명이 참여한다.
암사동 유적은 관람 시작 전 아침 시간에 운동이나 산책하는 시민에게 개방된다.
암사동 유적은 시민에게 가까운 듯, 먼 듯한 존재다.
유적 가치가 잘 인식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멀고, 주민 가까이 있는 쉼터라는 점에서는 낯설지 않다.
암사동 유적 맞은편에는 유적과 연계한 암사역사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역사공원에는 선사체험마당, 야외공연장, 탄소상쇄숲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암사동 유적과 한강을 연결하는 도보길인 암사초록길도 만들어진다.
암사역사공원과 암사초록길이 완공되면 암사동 유적은 서울의 긴 역사 지평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한 권의 재미나는 책 읽기가 끝났거나 어려운 숙제를 해치우고 난 뒤, 허전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조용한 박물관이나 한갓진 유적지를 찾아보라. 선인이 살아간 궤적에서 새 출발의 실마리가 잡힐지 모른다.
강동구 암사동 올림픽대로 875에 있는 암사동 유적은 조용한 공원 같다.
오전 6시부터 9시에는 시민들이 이곳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봄날의 따뜻한 아침 햇살이 만물을 축복하고 있었다.
갓 피어난 진달래, 벚꽃, 목련, 앵두나무꽃이 늘씬하게 잘 자란 푸른 소나무 사이사이에서 향기를 내뿜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수천 년 전 신석기 시대에도 한강 변은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암사동 유적지에는 신석기시대 선인들이 살았던 집들이 재현돼 있다.
볏짚으로 만든 초가집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억새로 지붕을 올린 움집이다.
신석기시대 한반도에서는 농경이 시작되지 않았다.
반면 한강 변에는 억새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히 억새는 집 짓는 재료로 쓰였다.
집안이 어두컴컴하고 차가워 보이는 움집도 피어나는 봄을 거부할 수 없는 듯 유적지는 화사한 봄기운을 겨워하고 있었다.
물고기를 잡거나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신석기시대 선인들의 모형은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재미를 끌어내고도 남을 것 같았다.
유적 내 체험 마을에는 아이들이 화살을 쏘아 맞히면 땅바닥으로 쓰러지는 멧돼지, 사슴 등의 모형이 있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암사동 유적은 서울에 생긴 가장 오래된 마을일 뿐 아니라 한반도 젖줄인 한강 유역에 형성된 신석기시대 마을로서는 최대 규모다.
한반도 전체를 봐서도 이 정도로 큰 규모의 신석기 집단 취락이 발견된 곳은 없다.
이곳에서 발굴된 주거지는 약 40여 기다.
주거지는 모두 땅을 1m 이내 깊이로 파고 그 위에 지붕 구조를 얹은 움집이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해 겨울이 추운 기후에 적합하다.
집안 중앙부에는 강돌을 원형, 타원형, 방형으로 돌려 화덕자리를 설치했는데 조리, 난방, 조명의 기능을 했다.
이곳에서는 움집 외에도 저장구덩이, 야외 노지, 강자갈을 쌓아 만든 돌무지 시설 등이 확인됐다.
돌들이 열을 받은 흔적이 뚜렷하고 불탄 흙, 숯, 빗살무늬토기 조각 수십 점이 확인돼 돌무지 시설은 토기를 굽던 한뎃가마나 공동 화덕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 생활문화예술의 정수로 평가받는 빗살무늬토기가 이곳에서 빚어졌던 셈이다.
◇ 빗살무늬토기의 '원조' 한반도
3열 빗금, 5열 빗금, 손톱으로 눌러 새긴 듯한 반원, 끝이 둥근 무언가로 찍어 누른 듯한 작은 점들, 'V'자를 여러 개 겹친 듯한 문양…. 어릴 때 교과서에 실린 사진으로 본 빗살무늬토기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빗살무늬토기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됐다.
시베리아 전역에서 나타난다고 해 한때 시베리아 빗살무늬토기 문화 벨트가 그려지기도 했다.
빗살무늬토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흔히 시베리아 기원설이 인용돼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중국 동북 지역을 포함해 한반도 일대를 그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대두했다.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그릇 모양과 문양의 다양성이 특출할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앞서기 때문이다.
암사동 유적지를 포함해 한반도 중서부에서는 빗살무늬토기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은 문양의 토기가 나왔다.
한반도를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원조'로 보는 이유다.
암사동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는 크기가 다양하다.
토기의 아래쪽은 뾰족하거나 둥근 모양이며 그릇 바깥면에 음각으로 무늬를 새겼다.
토기를 윗부분, 가운데, 아랫부분의 3부분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문양을 조각한 경우가 많다.
윗부분에는 주로 단사선문, 중앙 부분에는 생선 뼈 모양의 문양(어골문)이 새겨져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문양을 볼 수 있다.
암사동 유적에서는 땅을 파는 굴지구, 돌도끼, 맷돌 기능을 하는 갈돌·갈판, 다른 도구를 만들기 위한 고석 등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특히 2016년 발굴조사에서 한국 신석기 유적에서는 처음으로 옥 장신구가 출토돼 한강 유역의 선사시대 예술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한국은 빗살무늬토기 문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강동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암사동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선사 시대 유적은 보존된 것이 많지 않다.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물이 별로 없어 역사 시대의 것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훨씬 적다.
그러나 선사시대 문화재를 둘러싼 인식은 바뀌고 있으며, 세계유산등재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자국의 신석기 유적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리려는 중국과 일본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선사시대 유적의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세계적 기류를 고려하면 암사동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 어둡지 않다.
◇ 신석기부터 마을을 품었던 한강
암사동 유적은 한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어로와 채집 생활을 했던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올림픽대로로 가로막혀 한강과 단절돼 있다.
올림픽대로가 없다면 암사동 유적에서는 한강이 훤히 내다보이고, 한강이 어떻게 선인들의 터전이 될 수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움집은 한강을 따라 줄짓듯 늘어서 있었다.
유적과 유물은 원래 앉음새에 있을 때 그 가치와 의의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한강을 느낄 수 없는 암사동 유적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 구간의 올림픽도로 지하화는 훗날 한국이 좀 더 잘살게 될 때 후손들이 해야 할 몫으로 남을 것 같다.
올림픽대로의 구조를 변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적과 한강과의 관련성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암사초록길이다.
초록길은 약간 우회해 유적과 한강을 연결한다.
다만 암사동 유적에서 한강에 이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유적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거리의 한강 변에 광나루공원과 암사생태공원이 있다.
암사초록길이 조성되면 걸어서도 유적에서 한강에 접근할 수 있다.
한강 변에 이르면 약간의 품을 판 것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
강 건너편으로 삼국시대 격전의 현장인 아차산성과 아차산 보루군이 있는 아차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암사생태공원은 한강이 곡류하는 지점에 있다.
퇴적물이 쌓여 생긴 작은 하중도 2개가 공원 안에 있다.
강변에 설치된 관찰 데크에 서서 일대를 조망하니, 수심이 얕은 남쪽 하안인 암사동 일대는 거주지로 유리하고, 지대가 높은 북쪽 하안인 아차산은 방어 요새가 될 만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렴풋이 떠오른 한강의 역사 지리다.
암사생태공원은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건설된 콘크리트 호안 블록과 하안 자전거도로 등을 철거해 자연형 호안 생태공간으로 복원됐다.
고덕수변생태공원, 하남시 한강수변과 연결돼 넓은 자연생태공간을 형성한다.
가을에는 갈대가 큰 군락을 이루고 산림청 보호식물인 낙지다리, 쥐방울덩굴, 애기부들, 질경이택사, 줄, 골풀, 도루박이, 부처꽃, 참억새 등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야생식물들이 자란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에는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과 어여쁜 신록이 발산하는 생기로 가득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