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나뭇잎 사이
여인의 얼굴에 드리운
한낮의 푸르른 그림자
집요하게 태양 좇던 모네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 포착
풍경에 '살아있는 색' 입혀
모네가 무명 시절인 26세에 그린 이 작품은 인상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가 최초의 예술적 관심사를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켜 인상주의 화풍을 완성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당시 모네는 화실이 아니라 야외의 태양 광선 아래에서 자신의 눈에 보이는 자연 풍경을 화폭에 직접 그리는 혁신적인 창작 방식을 실험하고 있었다. 그는 물체 자체의 고유색이 있다고 믿었던 아카데미 화가들과 다르게 야외에서의 관찰 경험을 통해 사물의 고유색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물체에서 반사시키고 통과시키는 빛에 따라 눈에 보이는 물체의 색이 달라지는 빛과 색의 관계성을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런데 빛은 색의 근원이며 색은 빛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그림으로 증명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물체가 반사하는 빛의 색이 그 물체의 색이라는 원리를 어떻게 그림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 모네는 부단한 연구와 실험을 거쳐 혁신적인 창작 방식을 개발했다. 바로 자연광선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의 변화와 순간적 효과를 이용해 사물의 첫 인상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화폭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화창한 여름날 네 명의 여성이 정원을 산책하는 장면을 담은 이 그림은 그 혁신의 비결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먼저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세로 255㎝, 가로 205㎝의 대형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큰 캔버스를 선택한 이유는 매년 열리는 살롱전에 대작을 출품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겠다는 야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화폭이 워낙 커서 붓이 닿지 않은 부분에 대한 문제점은 프랑스 파리 교외의 빌다브레에 임대한 자신의 집 정원에 도랑을 파고 도르래를 이용해 캔버스의 높낮이를 조정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모네는 훗날 야외 작업 과정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정말로 큰 캔버스를 그 자리에서 단숨에 채워버렸고 자연을 직접 바라보며 그렸다. 그 자리에서 끝내지 못한 부분은 빈 공간으로 남겨두었으며 점점 캔버스를 도랑 속으로 낮게 내려 팔이 닿지 않던 윗부분을 칠했다.’
다음으로 아내 카미유를 그림 속 네 명의 여인으로 등장시켰다. 카미유 혼자서 1인 4역 모델을 맡게 한 것이다. 순종적인 아내였던 카미유는 온종일 강한 햇빛을 받으며 남편이 원하는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최신 패션 드레스를 여러 번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끝으로 모네는 ‘빛이 곧 색채’라는 예술적 신념을 그림에 구현하기 위해 끈기와 인내심을 발휘하며 빛의 효과를 관찰했다.
그의 목표의식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모네를 찾아갔을 때 그는 매우 한가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쿠르베가 ‘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고 묻자 모네는 ‘태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쿠르베는 ‘그동안에 배경이라도 그릴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지만 모네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그리려는 기상 조건과 정확히 같은 빛의 효과를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토록 집요하게 빛의 효과를 추적한 결과 이 작품에 자연광선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의 변화와 순간적 효과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림 속 양산을 쓴 여인의 얼굴색과 세 여인의 흰색 드레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관찰해 보라. 양산을 쓴 여성의 얼굴에 강한 햇빛에 의해 반사된 나무의 초록색이 반영돼 피부가 녹색조로 변했다. 또 세 여성의 흰색 드레스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검정이 아니라 파란 색조다. 고전회화에서 여성의 얼굴색과 그림자를 이런 색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화창한 여름날 나무가 무성한 정원에서 대상을 관찰하면 모네가 그림에 표현한 색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밝고 선명한 색채, 스케치풍의 빠른 붓질, 그림자를 푸른색으로 표현한 기법 등 혁신적 모네 화풍의 시작을 알리는 이 그림은 그가 끊임없는 노력과 강한 목표의식으로 위대한 혁신을 이뤄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