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펜트업(억눌린) 소비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집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새로운 가전제품을 찾는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란 논리다.

○코로나19로 바뀐 인식 계속돼

산업연구원은 올해 가전 내수 시장이 수요 촉진 정책 완화, 주택경기 위축 등 부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0.1%가량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 회복이 예상되는 데다 코로나 이후 가전 소비지출 확대 트렌드가 이어진다는 점을 이유로 지목했다.

지난해 국내 가전 시장은 카메라와 튀김기를 제외한 모든 품목에서 판매량이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세탁기, TV, 냉장고 시장이 각각 15%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의류관리기, 전기레인지, 커피메이커 등 시장은 30% 이상 커졌다. 식기세척기 시장은 전년 대비 3배 넘게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 전망은 더 좋다. 산업연구원은 올 상반기 가전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걷힐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데다 펜트업 수요가 뒤늦게 시작되는 국가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타티스타는 올해 세계 가전 시장이 5606억1300만달러(약 626조2047억원)로 2025년까지 연평균 2.65%씩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집을 단순 거주공간이 아니라 도피처 등으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집 안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려는 생활방식이 굳어졌다”며 “자동차 역시 공유 대상에서 소유 대상으로 바뀌었기에 차량용 소형가전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인수 GfK 연구원은 “인테리어, 편리함, 휴식에 중점을 둔 가전 트렌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거익선’ 트렌드 강화

‘거거익선’ 트렌드도 한층 더 뚜렷해질 전망이다. 올해 가전업체들은 80인치 이상 대형 TV를 주력 상품으로 밀고 있다. 65인치 이상이 인기를 끌었던 지난해보다 소비자들이 더 큰 화면을 원한다고 판단해서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대형 화면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65인치 이상 TV 판매량이 52% 증가했으며 2분기에는 77% 늘었다. 딜로이트는 소비자들의 대형 TV 선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8K(7680×4320)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프리미엄 TV도 판매 호조가 예약돼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올해 세계 OLED TV 출하량을 580만 대로 예측했다. 지난해(365만 대)에 비해 59% 증가한 수준이다. 2022년에는 670만 대가 출하될 것으로 옴디아는 내다보고 있다. 딜로이트는 올해 8K TV 출하량이 10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했다. 프리미엄·대형 TV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8K 시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게 딜로이트의 설명이다.

가전에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홈 시장도 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홈 시장은 올해 24.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가전업체는 프리미엄 가전 전략의 한 축으로 스마트홈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 스마트싱스’ ‘LG 씽큐’ 등 스마트폰 앱에 연동되는 가전 제품군을 늘리고, 나아가서는 집 전체를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주요 제품은 프리미엄 가전을 구매하고, 나머지는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선호하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가전 시장의 위협 요소 중 하나로 중국 저가 제품의 국내 진출 증가를 꼽았다. 가전업계에서는 주로 소형 가전에서 중국 등 업체들의 저가 제품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