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동체이건 내부 집단 간 경쟁과 견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생존력이 약해지고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기도 한다.
어느 공동체이건 내부 집단 간 경쟁과 견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생존력이 약해지고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기도 한다.
Homogeneity는 동종성, 균질성(均質性), Heterogeneity는 이종성, 불균질(不均質) 등의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전파했고 후대는 이를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공동체(사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러한 어울림은 모든 무기물과 생물에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가장 간단한 생명체인 단세포 생물도 주위 무기물과 상호 작용해 생명현상을 유지하고 단세포 생물들끼리 군락을 이루는 사회성을 보여준다.

즉 무생물이건 유생물이건 간에 이론적으로는 홀로서기가 가능하나, 실질적으로는 주변의 다른 물체들과 상호 작용하는 일종의 사회적 구조체를 이뤄 존재하며 구조체 속에는 동질(同質) 혹은 이질(異質)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암세포를 통해 알아본 동종과 이종
동종과 이종 어느 것이 좋은 것인가. 동종과 이종을 이해하기 위해 종양을 예로 들어 보 자. 몸속에 생긴 종양 덩어리는 수많은 암세포와 혈관, 림프, 신경, 점막, 섬유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로 이루어진 구조이며 각각의 요소는 암세포가 자라고 전이되는 데 필요한 기능과 역할을 한다. 1g의 종양은 약 109개의 암세포로 이뤄져 있으며 이 암세포들은 생화학, 생물학, 유전적 성상에 따라 여러 가지 소그룹으로 분류된다.

양성 종양의 경우에는 유사한 성상의 암세포 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월등하여 소그룹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동질성이 이질성보다 높은 양상을 보이지만 종양이 악성일수록 이질성이 동질성을 압도하여 수백, 수천 개의 소그룹이 존재한다.

암세포에서 이종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는 적응과 선택이다. 암세포가 특정 기관에서 발생해 자라기 위해서는 암세포가 주위 미세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주위 미세환경은 암세포가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위 우성의 세포집단이 선택되는 것이다.

둘째는 생존력이다. 인체 내에서 암세포가 자라나는 과정 중에는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으로 끊임없이 암세포를 제거해 내려는 시도가 있는데 이는 인체의 면역체계와 항암치료를 일컫는다. 일부 암세포는 면역체계에 의해 제거되지만, 많은 암세포가 면역체계에 감지되지 않거나 면역세포들과 싸워 이기는 방법으로 생존한다.

항암치료는 화학요법제에 대한 감수성이나 표적치료제의 경우 표적 발현과 세포 내 신호 경로의 다양성과 이질성이 생존의 주요 기전이다. 각각의 암세포는 동일한 화학요법제에 대하여 다른 감수성을 보이고 고유의, 혹은 2차적인 내성을 유발시켜 치료에 저항한다. 표적치료제에 대하여는 표적을 발현하지 않거나 변이시킴으로써 또는 표적에 의존하는 신호경로를 우회하거나 다른 신호경로를 활성화시켜 생존한다.

셋째, 변이(變異)와 진화(進化)다. 암세포는 유전적으로 불안정하여 끊임없이 변이되고 진화한다. 결과적으로 암세포들의 이질성은 점점 심화되어 통제불능의 상태로 무한대 증식한다.

동종과 이종의 장단점
이런 동질성과 이질성의 생물학적인 특성을 바이오계에 어떻게 대입할 수 있을까. 다른 모든 사회 분야와 마찬가지로 바이오계에도 크고 작은 공동사회(community)가 형성되어 있다.

가장 흔한 형태가 출신 지역, 학교, 연구 실 등으로 연결되는 이음의 연(緣)뿐 아니라 연구 테마, 학파, 정책, 또는 정치적인 동질 혹은 유사성으로 형성되는 동질성의 집단, 순혈주의나 순혈통주의라는 말로 표현되는 끼리끼리 문화다.

지극히 관례적, 폐쇄적, 독점적, 불공정과 불공평 등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기 쉽지만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오랜 동료의식과 전통, 화합과 익숙함, 그리고 강한 단결, 소속감과 자부심 등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있다.

단지 적당주의와 매너리즘, 내로남불의 감싸기 같은 유혹을 동질 집단의 특성인 전문성, 공동 의식, 명령과 보고 체계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한 높은 생산성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학연, 지연이 다르고 심지어는 충돌하는 이론과 테마를 연구하는 구성원이 만든 이질적인 집단이 있다. 개혁, 혁신, 경쟁 등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지만 그 뒤에는 갈등, 부조화, 비협조나 불화, 충돌, 그리고 낮은 효율과 생산성 등 극복해야 할 많은 난관이 숨어 있다.

동질성이 높은 조직은 구성원이 조직의 전통과 문화, 규율에 익숙하고 의견을 토의하고 수렴하는 과정이 순리적이고 효율적이어서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높은 생산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견제나 경쟁 체계가 약해 발전이나 혁신적인 면에서는 약점을 나타낸다. 따라서 연구 과정에서 오류나 착오를 발 견해 교정하는 과정이 너무 늦은 시기에 이뤄지고, 발전적이고 혁신적인 인적 쇄신이나 조직의 구조조정 면에서는 취약점을 드러낸다.

반면에 구성원의 이질성이 높은 집단은 소속감, 단결력과 화합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의견 수렴이나 토의 과정이 오래 걸려 외부에는 내부 분란으로 보일 수 있고 생산성이 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높은 선의의 경쟁심과 연구, 견제 기능은 연구 열의와 연구 결과의 재현성, 정직성 등을 높게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암세포가 이질성으로 치료에 맞서 생존력을 높이듯, 집단 내외의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은 무한경쟁에 대항해 살아남는 집단의 높은 생존력과 신뢰도의 밑바탕이 된다.

관건은 적절한 균형
그렇다면 가장 효율적인 집단의 성상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동종집단의 소속감, 자부심 그리고 강한 단결력과 이종 집단의 우월한 경쟁력, 인적 쇄신, 구조 혁신을 통한 생존력을 열거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공동체의 이렇게 완벽한 동질성과 이질성의 조합을 구성원만으로서 완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인적 구성으로 부족한 부분은 정책이나 지원을 이용하여 메워야 한다. 즉 혼혈주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구성원의 개성과 철학이 반영되고 녹아들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서 명심할 것이 있다. 암세포는 특별히 인체에서 제거되어 실험실 환경에서 세포주로 수립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지 못한다. 그들의 과도한 생존력이 숙주인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어느 공동체이건 내부 집단 간 경쟁과 견제가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지면 생존력이 약해지고 심지어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기도 한다. 공동체를 이루는 동질집단이건 이질집단 이건 집단의 내부, 혹은 집단 간 지혜로운 균형이 강한 생존력의 열쇠다.
<저자 소개>

[김선진의 바이오 뷰] 동종(Homogeneity) vs 이종(Heterogeneity)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