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는 아홉 화가의 시선…통인화랑 '화론' 전
꽃은 예로부터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화가가 다룬, 가장 오래된 회화 소재 중 하나다.

그만큼 매력적이지만 이 시대 작가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종로구 관훈동 통인화랑에서 개막한 '화(花)론' 전에 모인 작가들은 가장 흔하면서도 어려운 주제인 꽃을 택했다.

김정선, 김제민, 신수진, 이광호, 이만나, 이정은, 이창남, 한수정, 허보리 등 아홉 작가가 꽃을 자신만의 색깔로 캔버스에 담아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우울한 나날 속에서 마련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모두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단순히 보면 동문 화가들의 꽃 그림 전시회지만, 작가와 작품 면면을 보면 각기 다른 시선과 개성이 드러난다.

이창남은 도시 풍경이나 일상 속 정물 같은 눈앞의 사물을 그려온 구상화가다.

그의 꽃 그림은 꽃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면서 빛과 그림자로 화면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꽃병 속 꽃은 이미 죽은 것인데, 어떤 꽃은 빨리 시들고 다른 꽃은 오래 남기도 한다"라며 "꽃은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정물"이라고 말했다.

꽃을 보는 아홉 화가의 시선…통인화랑 '화론' 전
김정선은 잡초 사이에 피어난 노란 민들레를 그렸다.

캔버스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확대된 민들레는 강렬한 노랑이 번진 추상으로도 보인다.

그는 "자기 색깔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하던 작가들을 주위에서 찾다 보니 동문이 모였다"라며 "우울한 시기인데 화사한 꽃을 그리면서도 너무 뻔하지 않은 작품을 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신수진은 아주 작은 꽃잎들로 화면을 채웠다.

작은 개체들이 모여 마치 생명체의 세포처럼 생명력을 발산한다.

작가는 "자연의 생성 원리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했다"라며 "화려한 것보다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겹쳐져 탄생하는 것이 의미 있고 내 삶과도 닮아서 솔직하게 드러냈다"고 덧붙였다.

허보리는 빠르고 거친 붓놀림으로 그린 꽃과 이파리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꽃이 흐드러진 풍경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만화가 허영만의 딸이기도 한 그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다가 수분이 빠진 듯 마른 모습을 보고 인간 삶이 식물이 시드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며 "이번에는 씩씩하게 자라는 꽃들을 보며 우리가 숨 가쁘게 사는 모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유일한 동양화가인 이정은은 꽃과 화병, 사과와 책, 고양이가 어우러진 정물화를 선보인다.

현대적인 책가도(冊架圖)를 선보여온 그는 "꽃은 자연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소재"라며 "처음에는 꽃만큼은 그리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괴리감이 느껴지는 멋진 것들보다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을 그릴 때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11일까지.
꽃을 보는 아홉 화가의 시선…통인화랑 '화론' 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