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의 에너지 이구동성] (2) '영국원전, 우선 협상자 지위 상실'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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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젠 사이트 조감도 (이미지: NuGen)
원전 프로젝트는 그 자금 규모나 준비 기간이나 복잡성도 유별나지만,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과 변화를 반영하고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한전이 작년 말부터 우선 협상대상자로 지정되어 협의해온 뉴젠(Nugen)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뉴젠은 2009년에 프랑스의 ENGIE(이전 GDF Suez)와 스페인의 Ibedrola 그리고 영국의 SSE가 공동 투자해서 3.6GW의 원전을 짓기로 한 원전 프로젝트다. 2011년에 SSE가 지분을 ENGIE와 Iberdrola에 팔면서 이를 매수한 두 회사가 각각 50%씩 지분을 소유했다. 20013년 말에 일본 Toshiba가 Iberdrola와 ENGIE로부터 뉴젠 지분 60%를 샀고, 2017년 초에 도시바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ENGIE는 매도옵션을 통해 나머지 40% 지분을 도시바에게 팔았다. 그 후, 도시바가 이 뉴젠 지분 100%를 팔려고 한전을 우선 협상자로 지정했다.
영국 원전은 완전 민영화된 시장이어서 영국 정부가 딜 자체를 결정할 수는 없다. EDF와 체결한 차액보전 계약 단가(CFD Strike Price)가 전력 도매가의 2배에 달하고, 영국 정부 직접 차입 금리가 2%지만, 민간 원전 사업자가 프로젝트에 반영한 금리는 9%여서, 필요 이상 비싸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전에만 영국 정부가 정부 정책을 반영하면서, 원전 업체의 프로젝트를 위한 금융 및 보증을 지원하는 RAB(Regulated Asset Base) 모델을 도입했다.
물론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도시바로서는 한시바삐 한 푼이라도 더 받고 팔아야 하고, 뉴젠도 당장 60여 명의 직원들과 40여 참여업체들이 급한 문제지만, 사는 한전 입장에서는 노형 평가, 건설, 운영에 따른 제반 위험과 수익성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새 RAB모델과 비교 확인 및 검증해야 하고, 또한 영국 정부와 뉴젠은 이 확인 작업을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
프로젝트 참여 경쟁 과정에는 보통 매도자는 가격을 잘 받기 위해 Media나 기관들을 이용해 여론을 조장하거나, 역정보를 흘리거나, 압력을 넣기도 하고 제삼자를 이용해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비근한 예로 2013년 말 Iberdrola가 지분을 매각할 때, 도시바가 우선 협상자였다.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원하던 가격과 차이가 크게 생기자, Iberdrola는 우선협상자 지위를 해제하고 한전에 매수 의사 확인을 요청해왔다. 이를 도와 새로운 협상을 시작했고, 인수가를 시세보다 약간 높게 해서 인수의사를 표시했었다. 하지만, 그 후에 들어보니 Ibedrola가 이 한전의 인수 희망 가격을 다시 도시바에 제시하면서 가격을 높였다고 한다.
원전협상도 다른 협상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덤벼들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방임해도 안 된다. 계속 관심을 표명하고 스탠스를 같게 유지하되, 새로운 모델이나 문제점들은 하나하나 세밀히 따져 보면서 양면 작전을 펼쳐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EDF 원전을 건설하던 아레바와 도시바 원전을 건설하던 웨스팅하우스가 모두 노형 평가 승인 후에 안전성 문제로 건설 중에 공기가 지연되고 공사비가 폭증하는 바람에 재정 파탄에 이르렀는데, 이는 한전의 뉴젠 준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전 세계의 주요 원전 사업자는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한국, 캐나다 정도이다. 이 중 프랑스가 중국 투자를 받아 다음 영국 원전에 중국모델을 들여온다. 따라서, 영국에 중국 원자로가 더 들어 오는 건 어렵다. 프랑스와 미국은 위에 언급한 재정문제로 더 이상 경쟁이 어려운 상황이고, 일본도 이미 히다치 사업도 지지부진해서 영국 정부에서 1년 넘게 일본 업체들을 타진했으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점령 이후 영국 시장 진입이 막혀 있다. 결국, 예기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한, 현재로는 한전과 캐나다가 유력한 후보인데, 계속해서 원전건설을 해옴으로써 강력한 Supply Chain을 확보한 한전이 캐나다보다 여러 모로 유리한 위치이다.
한전이 사기업처럼 영리를 위해 기민하게 대처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 스탠스를 잘 유지하며 협상과 딜을 전술적으로 잘 관리해야 한다. 어드바이저를 활용, 현재 영국 전력업체들이 보유 중인 원전 지분이나 원전 해체청(Nuclear Decommissioning Authority)이 보유한 다른 사이트들에 대한 협업 타진 등 시장에 실현 가능한 다른 신호들을 섞어 쓰는 것도 도시바의 전술을 무력화시키고, 한전의 입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신규 원전 한 곳에 100% 투자하는 것보다 다른 원전에 분산하거나 신, 재생 프로젝트들과 적정비율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투자한다고 하면, 투자위험을 분산하면서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니, 급한 도시바로서는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상대가 먼저 시작한 게임인데, 내 패를 그냥 포기하고 마냥 끌려가서야 좋은 승부를 겨룰 수 있을까?
김동성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원전 프로젝트는 그 자금 규모나 준비 기간이나 복잡성도 유별나지만,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과 변화를 반영하고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한전이 작년 말부터 우선 협상대상자로 지정되어 협의해온 뉴젠(Nugen)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뉴젠은 2009년에 프랑스의 ENGIE(이전 GDF Suez)와 스페인의 Ibedrola 그리고 영국의 SSE가 공동 투자해서 3.6GW의 원전을 짓기로 한 원전 프로젝트다. 2011년에 SSE가 지분을 ENGIE와 Iberdrola에 팔면서 이를 매수한 두 회사가 각각 50%씩 지분을 소유했다. 20013년 말에 일본 Toshiba가 Iberdrola와 ENGIE로부터 뉴젠 지분 60%를 샀고, 2017년 초에 도시바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ENGIE는 매도옵션을 통해 나머지 40% 지분을 도시바에게 팔았다. 그 후, 도시바가 이 뉴젠 지분 100%를 팔려고 한전을 우선 협상자로 지정했다.
영국 원전은 완전 민영화된 시장이어서 영국 정부가 딜 자체를 결정할 수는 없다. EDF와 체결한 차액보전 계약 단가(CFD Strike Price)가 전력 도매가의 2배에 달하고, 영국 정부 직접 차입 금리가 2%지만, 민간 원전 사업자가 프로젝트에 반영한 금리는 9%여서, 필요 이상 비싸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전에만 영국 정부가 정부 정책을 반영하면서, 원전 업체의 프로젝트를 위한 금융 및 보증을 지원하는 RAB(Regulated Asset Base) 모델을 도입했다.
물론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도시바로서는 한시바삐 한 푼이라도 더 받고 팔아야 하고, 뉴젠도 당장 60여 명의 직원들과 40여 참여업체들이 급한 문제지만, 사는 한전 입장에서는 노형 평가, 건설, 운영에 따른 제반 위험과 수익성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새 RAB모델과 비교 확인 및 검증해야 하고, 또한 영국 정부와 뉴젠은 이 확인 작업을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
프로젝트 참여 경쟁 과정에는 보통 매도자는 가격을 잘 받기 위해 Media나 기관들을 이용해 여론을 조장하거나, 역정보를 흘리거나, 압력을 넣기도 하고 제삼자를 이용해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비근한 예로 2013년 말 Iberdrola가 지분을 매각할 때, 도시바가 우선 협상자였다.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원하던 가격과 차이가 크게 생기자, Iberdrola는 우선협상자 지위를 해제하고 한전에 매수 의사 확인을 요청해왔다. 이를 도와 새로운 협상을 시작했고, 인수가를 시세보다 약간 높게 해서 인수의사를 표시했었다. 하지만, 그 후에 들어보니 Ibedrola가 이 한전의 인수 희망 가격을 다시 도시바에 제시하면서 가격을 높였다고 한다.
원전협상도 다른 협상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덤벼들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방임해도 안 된다. 계속 관심을 표명하고 스탠스를 같게 유지하되, 새로운 모델이나 문제점들은 하나하나 세밀히 따져 보면서 양면 작전을 펼쳐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EDF 원전을 건설하던 아레바와 도시바 원전을 건설하던 웨스팅하우스가 모두 노형 평가 승인 후에 안전성 문제로 건설 중에 공기가 지연되고 공사비가 폭증하는 바람에 재정 파탄에 이르렀는데, 이는 한전의 뉴젠 준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전 세계의 주요 원전 사업자는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한국, 캐나다 정도이다. 이 중 프랑스가 중국 투자를 받아 다음 영국 원전에 중국모델을 들여온다. 따라서, 영국에 중국 원자로가 더 들어 오는 건 어렵다. 프랑스와 미국은 위에 언급한 재정문제로 더 이상 경쟁이 어려운 상황이고, 일본도 이미 히다치 사업도 지지부진해서 영국 정부에서 1년 넘게 일본 업체들을 타진했으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점령 이후 영국 시장 진입이 막혀 있다. 결국, 예기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한, 현재로는 한전과 캐나다가 유력한 후보인데, 계속해서 원전건설을 해옴으로써 강력한 Supply Chain을 확보한 한전이 캐나다보다 여러 모로 유리한 위치이다.
한전이 사기업처럼 영리를 위해 기민하게 대처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 스탠스를 잘 유지하며 협상과 딜을 전술적으로 잘 관리해야 한다. 어드바이저를 활용, 현재 영국 전력업체들이 보유 중인 원전 지분이나 원전 해체청(Nuclear Decommissioning Authority)이 보유한 다른 사이트들에 대한 협업 타진 등 시장에 실현 가능한 다른 신호들을 섞어 쓰는 것도 도시바의 전술을 무력화시키고, 한전의 입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신규 원전 한 곳에 100% 투자하는 것보다 다른 원전에 분산하거나 신, 재생 프로젝트들과 적정비율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투자한다고 하면, 투자위험을 분산하면서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니, 급한 도시바로서는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상대가 먼저 시작한 게임인데, 내 패를 그냥 포기하고 마냥 끌려가서야 좋은 승부를 겨룰 수 있을까?
김동성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