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기선제압이 관건이다. 정공법으론 약한 군대가 결코 강한 군대를 이기지 못한다. 세가 불리하면 때를 기다리며 내공을 키우는 게 지혜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의 대범함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그 만용으로 병사까지 잃는다면 졸(卒)만도 못한 장수다. 세가 약하지만 싸움이 불가피한 때가 있다. 그땐 선공(先攻)이 유리하다. 선공으로 적의 전열이 흩어지면 그 틈새를 치고 들어야 한다. 그래야 승산이 높아진다.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을 이어 2세 황제에 즉위한 호해는 무능한 폭군이었다. 곳곳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를 세워 스스로 왕에 오르는 자들도 생겨났다. 어느 날 강동 회계의 태수 은통이 오중(지금의 장쑤성 오현)의 실력자 항량을 불러 거사를 의논했다. 향량은 초나라 명장 향연의 아들로, 고향에서 사람을 죽이고 조카 항우와 함께 오중으로 도망친 뒤 뛰어난 통솔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젊은이였다. 은통이 속내를 드러냈다. “지금 곳곳에서 진나라에 반기를 드는 건 나라의 명운이 다했기 때문이오. 내가 듣건대 ‘선손을 쓰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先則制人), 뒤지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 했소. 나는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하오.”

한데 ‘선수를 쳐서 적을 제압한다’는 선즉제인(先則制人)의 병법은 항량이 한 수 위였다. “거병을 하려면 환초를 찾아야 하는데 그의 행방을 아는 자는 제 조카 항우뿐입니다. 지금 밖에 있으니 그를 불러 환초를 데려오라 명하시지요.” “그를 들라하시오.” 항량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 항우에게 귓엣말로 일렀다. “내가 눈짓을 하면 즉시 은통의 목을 쳐라.” 은통의 목은 그렇게 날아갔다. 항량은 관아를 접수해 스스로 회계 태수에 오른 뒤 8천여 군사를 이끌고 함양(진나라 수도)으로 진격하다 전사했다. 뒤이어 회계 총수가 된 항우는 5년에 걸쳐 유방과 천하의 패권을 다툰다.

역사는 용기 있는 자가 쓴다. 두려움에 지면 모든 길이 흐려진다. 공포에 지면 흐릿한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앞서가는 자의 시야가 가장 넓은 법이다. ‘선즉제인’이 세상살이 최고의 지혜는 아니다. 선수를 치려 한 은통은 제 명을 다하지 못했고, 항량도 큰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먼저 치고 나오는 자의 몫이 크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삶이란 전쟁터도 나름 전술이 필요하다. 세만 믿는 공격은 화를 부르기 쉽다. 불가피한 싸움에선 선공이 유리하다. 그래야 승산이 커진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