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겨울이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기 시작하는 이맘 때면 나는 늘 동네 슈퍼 앞 빨갛고 동그란 찜 통 안에 모락모락 하얀 김을 내뿜으며 손난로 보다 따뜻했던 기억의 “삼립호빵” 을 떠올린다. 노란색 땡땡이 로고 트럭으로 전국을 누비며 슈퍼마켓 입구 맨앞 매대를 점령 했던 그때 그 시절 삼립빵의 추억속엔 매일매일 집에 쌓여있던 꿀호떡과 보름달, 은방울빵이 너무도 당연했던 어린시절의 나와, 젊고 꿈많은 나의 아버지가 자리하고 있다.
매일 새벽 별을 보고 나가면 한밤의 별을 보고서야 집에 들어올수 있었던 젊은시절 아버지는 SPC 삼립 (구 삼립식품)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내가 아는 지구에서 가장 멋진 슈퍼맨이었다. 퇴사 후 캐나다 몬트리올로 기업 이민을 택하고 처음 시작했던 사업은 퀘벡인의 소울푸드 푸틴(Poutine)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시아 시장에 푸틴을 소개한 외국인 1호가 되었던 나의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의 구드프랑스(Goût de France)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난 8 월, SPC 그룹의 파리바게트 브랜드가 캐나다 진출을 발표하면서 현지 법인인 ‘파리바게트 캐나다(Paris Baguette Family Canada Licensing Inc)’를 설립하고, 토론토와 밴쿠버 지역을 시작으로 몬트리올 까지 시장확대 계획을 언론에 공개 하였는데, 사실 캐나다 퀘벡과 SPC 그룹과의 인연은 이보다 22년이나 앞선 1998년 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97년 퀘벡의 오리지널 커드치즈 (Curd Cheese)를 생산하는 프로마주 코테사 & 킹세이 유통(Fromage Côté S.A. et Distributions Kingsey)과 함께 손잡고 킹세이코리아 (Kingsey Korea.Inc)를 설립한 나의 아버지는, 1998 년 퀘벡대표부의 지원과 함께 코엑스에서 열린 98 인터네셔널 서울 푸드쇼 (98 International Seoul Food Show)에서 커드치즈를 처음으로 국내시장에 소개 하였고, 허영인 회장이 SPC 그룹으로 사명을 바꾸고 계열사를 통합하기 이전 설립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구드프랑스”와 함께 “푸틴” 을 아시아 최초로 소개하였다. 1998 년 당시 한국시장 론칭과 함께 정식으로 상표등록 까지 마쳤던 “푸틴 (Poutine)”이란 상호는 현재는 고유명사로 분리되어 더이상 등록이 불가 하지만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상표를 갱신하고 지켜드렸다면 지금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로 남아 브랜드 컨설팅을 할때면 클라이언트 에게도 항상 두번 강조하는 것이 지적재산에 대한 중요성과 미래 자산가치에 대한 투자이다. 자신의 브랜드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최선을 다해 지킬 줄 알아야 하고,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하며, 다른이의 노력을 훔치려 하지 않아야 한다. “푸틴”은 감자튀김에 치즈와 그레비 소스 (Gravy Sauce)를 얹은 음식인데 1957 년 캐나다 퀘벡의 작은도시 와윅 (Warwick)에서 당시 식당을 경영하던 페르난드 라샹쓰(Fernand Lachance)씨의 아이디어 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사실 “푸틴”이란 단어는 개발자인 라샹쓰씨가 간식으로 즐겨먹던 푸팅(pudding)에서 불어식 발음을 생각하던 중 아무런 뜻없이 푸틴으로 명명되었다고 하는데, 실제 제품명칭에 얽힌 재밌는 스토리는 개발자 (97 년 당시 생존)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푸틴이 퀘벡시장에서 상업성을 띄면서 본격적으로 마켓을 구성하게된 시기는 60년대 부터이며 70년대 부터는 사실상 간식류 음식으로 미국의 햄버거와 견줄만큼 그 성장세를 이어왔다고 보고있다. 현재 푸틴이란 단어는 캐나다 불어사전에 정식으로 등록이 되어 있으며 푸틴에 대한 퀘벡인들의 자부심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바게트 빵에 비유할 정도로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국에서 자랐던 유년시절엔 만인의 추억 삼림빵을 기억하고, 캐나다 학창시절엔 퀘벡인의 소울푸드 푸틴과 함께 성장한 내가 아버지를 닮아 음식과 리테일, 브랜딩에 관심이 많은건 애초부터 어쩌면 너 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그토록 애정 했던 푸틴은 너무도 시대를 앞서간 탓인지 당시 에는 기존 햄버거 프랜차이즈 시장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최근들어 캐나다에서 오리지널 푸틴을 접한후 한국에도 푸틴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음도 드는건 어쩔수 없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판매되는 푸틴에 사용 되는 치즈에 진짜 오리지널 퀘벡의 커드치즈는 찾아볼수 없다. 뽀드득 식감을 자랑하며 중독성 있는 그맛은 퀘벡 에서 생산된 한정된 치즈공장에서만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 퀘벡에서 매년 열리는 푸틴 페스티벌 (Poutine Festival)에 올해 준우승을 차지한 작품 은 “비빔밥 푸틴 (Bibimbap Poutine)”이었다. 한국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중요한건 퀘벡에도 한류가 찾아왔고, 현지 푸틴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가끔씩 구드프랑스의 푸틴을 여전히 추억하는 분들의 글을 보면서 다시 예전의 퀘벡팀과 나는 작은 도전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23년전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과 정말로 푸틴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국시장에 다시한번 진짜 “푸틴”을 더 예쁘게 선 보일 방법을 고심중에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기억하고 퀘벡기업과 퀘벡정부 대표부 분들께 감사한 마음과 늘 새로운 도전과 실험정신이 강했던 나의 아버지의 뜻을 함께해 주셨던 허영인 회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드린다. 파리바게트의 캐나다 진출이 성공적으로 안착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사랑하는 나의 아빠. 하늘에서 행복하시기를.
제시카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