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기 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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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노래하라
다들 죽겠다고 난리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만도 아닌 걸 알지만, 핑계대기 쉬운 것이 보이지 않는 병균에게 이유를 돌리기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도 아니지만, 하릴없이 외신을 살피며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사회발전을 위한 제안이라도 하고 싶어서 “차가운 시선”으로 글을 쓰다 보니 욕을 먹고 난타를 당하기도 한다. 성품이 원래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국가와 사회를 비판하고 비평하는 의식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혼난 적도 많지만, 간혹 반성도 하고,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고 살고 싶은데 이 또한 쉽지 않다. 보이는 게 있고 느끼는 게 있으면 감출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전 세계인 중 5천만 명이 감염이 되었고,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요한 점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한국은 아니잖아?”, “정말 그럴까? 언제까지 괜찮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국민들은 모두 단결하여 마스크를 잘 쓰고, 방역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의료체계가 앞서가고 있으며,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애쓰고 계시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본다. 전 세계 비행기가 멈춰 있고, 공연장과 극장이 문을 닫고,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져 있음은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1년이 갈지 10년이 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걱정이 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분명 올바른 판단과 정의로운 생각을 갖고, 국가와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다만, 백성과 시민들은 이렇게 엄혹한 시절에 마음 고생하지 않고, 더욱 강인한 인내와 안정된 정서를 유지하면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해야 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독서와 글쓰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깊이 있는 삶의 철학을 탐구하며,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좀 더 여유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독서다. 가벼운 오락으로 점철되는 TV나 SNS에서의 수다는 순간적인 쾌락이나 위로는 될지언정 깊이 있는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 잔뜩 움츠러든 마음을 퍼내고, 감추어진 슬픔과 고통을 뱉어내기에 글쓰기만큼 훌륭한 게 없다. 딱히 작가로서 소설을 쓴다거나 에세이를 쓰지 않는 아마추어라고 해도, 그냥 백지 몇 장 깔아 놓고 낙서만 해도 위로가 된다. 위대한 글이 아니고, 간단한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만 해도 기분이 풀린다. 한번 해 보시라.
둘째는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가요를 부르고 때로는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즐거움도 느껴 본다. 트롯트가 아니거나 팝송이 아니더라도 부를 수 있고 중얼거리며 되뇌일 수 있으면 된다. 혼자 불러도 되고, 밥상 앞에서 돌아가며 젓가락을 두들겨도 된다. 아마도 베토벤 전원교향곡이나 막스 부르흐의 바이올린협주곡이면 더욱 좋을 듯하다. 과수원에 음악을 들려주니 과일 맛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빵을 반죽해서 발효를 시키는 과정에 노래를 들려 주었더니 빵맛이 좋아졌다는 일화도 있다. 감정과 감성이 풍부한 인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끝으로 운동이다. 이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경험이라 굳이 설명을 더 할 필요는 없으나, 강조하고 싶다. 결심만 하면서 움직이지 않거나 계획만 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움직임은 동물(動物)의 기본 동작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지하철 계단을 걸어 다니고, 가끔 등산을 하면서 땀만 흘려도 기본 체력은 유지가 될 듯하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다들 죽겠다고 난리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만도 아닌 걸 알지만, 핑계대기 쉬운 것이 보이지 않는 병균에게 이유를 돌리기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도 아니지만, 하릴없이 외신을 살피며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사회발전을 위한 제안이라도 하고 싶어서 “차가운 시선”으로 글을 쓰다 보니 욕을 먹고 난타를 당하기도 한다. 성품이 원래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국가와 사회를 비판하고 비평하는 의식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혼난 적도 많지만, 간혹 반성도 하고,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고 살고 싶은데 이 또한 쉽지 않다. 보이는 게 있고 느끼는 게 있으면 감출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전 세계인 중 5천만 명이 감염이 되었고,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요한 점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한국은 아니잖아?”, “정말 그럴까? 언제까지 괜찮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국민들은 모두 단결하여 마스크를 잘 쓰고, 방역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의료체계가 앞서가고 있으며,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애쓰고 계시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본다. 전 세계 비행기가 멈춰 있고, 공연장과 극장이 문을 닫고,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져 있음은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1년이 갈지 10년이 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걱정이 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분명 올바른 판단과 정의로운 생각을 갖고, 국가와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다만, 백성과 시민들은 이렇게 엄혹한 시절에 마음 고생하지 않고, 더욱 강인한 인내와 안정된 정서를 유지하면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해야 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독서와 글쓰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깊이 있는 삶의 철학을 탐구하며,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좀 더 여유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독서다. 가벼운 오락으로 점철되는 TV나 SNS에서의 수다는 순간적인 쾌락이나 위로는 될지언정 깊이 있는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 잔뜩 움츠러든 마음을 퍼내고, 감추어진 슬픔과 고통을 뱉어내기에 글쓰기만큼 훌륭한 게 없다. 딱히 작가로서 소설을 쓴다거나 에세이를 쓰지 않는 아마추어라고 해도, 그냥 백지 몇 장 깔아 놓고 낙서만 해도 위로가 된다. 위대한 글이 아니고, 간단한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만 해도 기분이 풀린다. 한번 해 보시라.
둘째는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가요를 부르고 때로는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즐거움도 느껴 본다. 트롯트가 아니거나 팝송이 아니더라도 부를 수 있고 중얼거리며 되뇌일 수 있으면 된다. 혼자 불러도 되고, 밥상 앞에서 돌아가며 젓가락을 두들겨도 된다. 아마도 베토벤 전원교향곡이나 막스 부르흐의 바이올린협주곡이면 더욱 좋을 듯하다. 과수원에 음악을 들려주니 과일 맛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빵을 반죽해서 발효를 시키는 과정에 노래를 들려 주었더니 빵맛이 좋아졌다는 일화도 있다. 감정과 감성이 풍부한 인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끝으로 운동이다. 이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경험이라 굳이 설명을 더 할 필요는 없으나, 강조하고 싶다. 결심만 하면서 움직이지 않거나 계획만 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움직임은 동물(動物)의 기본 동작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지하철 계단을 걸어 다니고, 가끔 등산을 하면서 땀만 흘려도 기본 체력은 유지가 될 듯하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