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찍고 완도에서 만난 해신 장보고
땅끝 해남마을 전망대로 가는 모노레일 안에서 본 해남
제 일상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여행도 느긋하고 여유있게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짧은 시간 동안 50명 넘는 인원이 남도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는 숨가쁜 여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명소를 방문하는 즐거움은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땅끝마을 찍고 완도에서 만난 해신 장보고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남해
백일도 흑일도 그리고 고산 윤선도가 유배시절 이후 지냈던 보길도 같은 섬들이 떠 있는 다도해…
무심한 여행객의 시선엔 아름답지만 지루한 공간일 수 있지만 이곳을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소중한 공간이겠지요. 수산자원이 풍부해 부유한 어부들이 많다는 해설사의 설명은 이곳의 삶에도 도시인들이 모르는 특별한 혜택과 풍요로움이 있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더 활짝 마음을 열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읽는 안목과 기회를 만드는 능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땅끝마을 찍고 완도에서 만난 해신 장보고
전망대에서 내려와 해변 아래까지 내려 가는 동안 터무니 없이 걸음이가 무거워지고 힘이
빠졌습니다. 같이 다니던 이 작가님 모습도 안보이고 혼자 내려가는데 앞에 가던 사람들 모습도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게 어찌나 힘들던지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며 이렇게 힘과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순간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될까하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낯선 땅이라 그 느낌이 사뭇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그래도 쉽게 절망하지 않고 차분히 힘을 내야지 생각하며 땅끝 해변으로 내려가니 일행들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적인 불안함에서 벗어나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일행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가다보면 다시 즐거운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겠지요. 안도하며 돌아가려는데 지인께서 해변까지 가보지 않고 그냥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말에 다시 힘을 내 해변 아래로 내려가니 다른 일행들은 모두 가버리더군요.

덩그마니 혼자 남겨졌습니다. 갑자기 땅끝에 혼자 남겨진 쓸쓸함과 적지 않게 살아온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과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주마등 같이 떠올랐습니다. 어린시절 꿈은 왜 쉽게 빨리 이뤄지지 않고 여러가지 장애를 만나 지지부진해진 걸까요. 의지가 약하고 지혜와 노력이 부족한 때문이겠지요. 또 꿈을 쫓는 일외에 해야할 일들 때문에 꿈을 미뤄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끝에서 스스로를 향해 그리고 앞에 펼쳐진 바다를 향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꿈들을 쉽게 포기하진 않을거야. 꼭!”라고.

조금 후련해져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미 버스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용서를 구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땅끝마을 찍고 완도에서 만난 해신 장보고
늦은 시각에 완도항 부근 숙소에
여장을 풀고 식당에 모였습니다. 일행
과 마주앉아 저녁을 먹고 술 한 잔에
바쁘게 다니느라 못한 인사를 나누었
습니다. 일행들은 대부분 기업이나
단체의 홍보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각각의 인생과
삶의 내공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식사 이후에도
늦게까지 음주가무와 더불어 인연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와 한 방을 쓰게된 이 작가님은
적당한 때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카메라 가방을 들고 다니느라 기진맥진 했기 때문이죠.

이 작가님과 나누는 둘만의 얘기도 좋았구요. 저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니 여러가지 좋은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피곤으로 낯선 곳에서 잠드는 설레임도 잊고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땅끝마을 찍고 완도에서 만난 해신 장보고
다음 날 아침식사를 위해 예약된 식당으로 가는 길에 이 작가님과 해무가 가득한 바다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해무가 가득한 바다의 느낌을 전날 운림산방에서 소치 선생님 후손의 그림중에서 보았던 터라 반가웠습니다.

완도는 청해진의 해상왕 장보고로 유명하지만 또 하나 세계적인 골프스타가 최경주의 고향이라고 합니다. 완도항에 세워진 최경주의 동상으로 알게된 사실입니다. 일행중 한 분인 레저신문의 기자분이 완도 사람들에게 최경주에 대한 인터뷰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작가님은 새파란 기자가 아닌 삶의 우여곡절을 겪은 중년의 기자 모습이 멋있다 하더군요. 간밤의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식사를 하고 사람들과 완도항 주변의 수산물 경매장으로 갔습니다. 그 활기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일행은 장보고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땅끝마을 찍고 완도에서 만난 해신 장보고
장보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 자료로 추측할 때 평민 출신으로 청해진(완도)에서 무예를 익히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계급사회인 신라에서 평민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 기회의 땅인 당나라 서주 지방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의 무령군 소장이라는 군직에 올랐다고 합니다. 자신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세상에서 기회를 찾고 만든 그의 도전 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당에서 신라인들이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리는 현실을 목격하고 귀국해 흥덕왕에게 해적들을 소탕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이에 흥덕왕은 감동해 당시 신라에 없던 관직인 청해진 대사로 임명했습니다. 장보고는 청해진에 성을 쌓고 군선을 만들고 수군을 훈련시켜 일대의 해적을 소탕했습니다.

후반기에는 일본과 당나라를 잇는 중개무역을 일으켰습니다. 중국의 산둥성과 일본의 규슈에 장보고 진영에서 만든 신라의 배가 수없이 드나들었습니다. 이러한 중개무역을 통해 장보고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동북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하며 해상왕국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이후 장보고를 지원했던 흥덕왕이 아들 없이 죽고 신라 왕실에서 왕권 다툼이 일어났습니다.그때 뒤에 신무왕이 된 김우징이 가족과 함께 장보고의 청해진으로 도망와 몸을 의탁했다고 합니다. 이때 장보고는 막강한 군사력과 자금력으로 왕실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지방의 호족(토착세력)으로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이후 김우징은 장보고 군사력의 도움을 얻어,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된 민애왕을 죽이고 신무왕이 됩니다. 이는 신라 최초의 성공한 군사 쿠데타라고 합니다. 평민 출신의 장보고 군대의 도움으로 신라의 왕이 된 신무왕은 장보고에게 특별한 공로를 인정해 감의군사로 임명하고 식읍을 내립니다.

또한 신무왕이 죽고 뒤를 이은 문성왕은 장보고에게 진해장군이라는 직책을 수여하고 장보고의 딸을 둘째 왕비로 맞이하려 합니다. 그러나 섬사람의 딸을 왕실의 배필로 삼을 수 없다는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분노한 장보고는 크게 노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신라 조정에서는 이후 장보고 진영을 크게 염려했는데 이때 염장이라는 자가 장보고를 암살했다고 합니다.

얼마전 해신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장보고의 일대기가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요. 저는 드라마를 보지 못했고 장보고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르지만 그의 포부와 세계 속에서 만들어낸 큰 뜻과 발자취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장보고는 충이 강조되었던 조선시대에 반역자로 몰려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고 국내 기록도 변변치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일본 불교 천태종의 중흥조인 엔닌의 여행기 <입당구법순례여행기>와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두목의 <번천문집>에 장보고에 대한 기록이 소상하게 나와 있다고 합니다.

어제는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박태환이라는 세계적인 스타탄생을 지켜보며 우리 국민 모두 함성을 질렀는데요. 세계 무대에서 큰 뜻을 품었던 역사속의 장보고에 대한 긍지를 이어 앞으로 더욱 세계의 벽과 경계를 허물고 세계속에서 꿈을 펼치며 사랑받는 많은 인재들이 탄생하리라는 즐거운 기대감으로 뜨거운 무더위도 참을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