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경기 회복세는 지속되고 있으나 일본 사회는 뒤숭숭 하다.

경기 회복 과정에서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90% 중산층 사회로 안정을 자랑해온 일본 사회는 흔들리고 있다.

최근 유아 및 초등학생 관련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세계 최고를 자랑해온 치안도 점차 빛을 잃고 있다.

이달 들어 일본 전국 곳곳에서 ‘이지메(집단 따돌림)’로 인한 초중학생의 자살 사고가 잇따르자 열도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지메 자살을 예고한 편지가 문부과학상에게 배달된 이달 7일 이후 3명의 남녀 중학생이 자살했다.

어린 학생들의 자살 원인은 급우들로부터 돈을 가져오라는 협박 이나 체육 시간에 골탕을 먹는 등 전형적인 집단 ‘왕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초중학교때 또래 집단끼리 발생하는 따돌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는 일이다.필자도 학창 생활을 되돌아 보면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일본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지메는 정신적으로나,육체적으로 덜 성숙한 어린 시절의 한 때 충동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이지메는 학생 집단 뿐만 아니라 성인이 돼도 나타난다.일부 지역의 경우 아직도 외부에서 이사온 사람을 왕따 시키는 사례가 많다.이사간 지역에 정착하지 못해 결국 집을 옮기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일본의 이지메는 폐쇄적인 일본 사회의 특성을 보여준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되기 전까지 봉건사회 였다.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바쿠시대가 열렸으나 지방에서는 영주(도노사마)들이 각 지역을 분할 통치하는 형식이었다.

지방에서는 이들 영주가 왕이었다.영주는 서민들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었으며 각 지역은 개별 국가였던 셈이다.

실제로 지금도 일본인들은 고향을 물을 때 구니(한자로 나라국)가 어디냐고 묻는다.섬나라인 일본에서 4개 본섬중 가장 적은 시코쿠 같은 곳에 가면 아직도 섬 밖을 나간 적이 없는 주민을 많이 만날 수 있다.이들에게는 시코쿠가 그들의 국가인 셈이다.

중세 봉건시대에 서민들에게 가장 큰 형벌은 ‘무라 바나시’였다고 한다.무라는 ‘마을’,하나시는 ‘떠나다’는 의미다.즉 ‘마을 밖으로 추방’이 가장 큰 형벌이었다.

자신이 속한 마을 떠나면 다른 영주가 사는 지역으로 옮겨가 정착하기가 어렵기때문에 당사자에겐 죽음을 의미하는 극형이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이지메는 일본의 역사적인 산물인 셈이다.지진이나 전쟁 등의 재해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주변 집단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게 일본인의 숙명이었다.마을 단위의 집단을 벗어나 살기가 어려웠다.

일본사회는 현대화 되고 글로벌화 됐지만 저변에 흐르는 전통과 특수성은 고스란히 남아있다.최근 발생하고 있는 이지메는 제도나 사회 시스템 뿐만 아니라 의식까지 글로벌화돼야 해결될 문제다.

일본이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폐쇄 문화를 고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