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큼 보통 시민과 엘리트층간 갭이 큰 나라도 드물다. 정치인 이나 관료의 국정 운영을 보면 여론 이나 국민을 무시하고 독선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이는 정치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이 한국과 비교해 지나칠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론이 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민단체가 활성화돼 있지도 않다. 그야말로 국정은 소수 엘리트가 원하는 대로 끌고가는 형국이다.

정치인의 면면을 봐도 ‘대물림’하는 사람이 많다. 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물론 자민당내 차기 총리감 후보로 거론되는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도 대를 이어 정치를 하는 명문가 출신이다.

야당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경우 집권 자민당 출신이 많다. 그래서 그 인물이 그 인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오카다 카츠야 민주당 대표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재벌가의 아들이다.

한국의 경우 대를 이어 정치를 하거나 재벌가에서 정치를 하면 비판 세력이 많다. 국민들의 시선도 따가와 제대로 못하면 정말 버티기가 어렵다.

일본에서 천황제가 유지되는 것만 봐도 일본인의 가치관 이나 정서는 주변 아시아국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과거 왕조시대에도 수백년 단위로 왕조 교체가 있었다. 일본의 경우 실제 정권을 잡은 쇼군(장군)이 바뀌어도 천황 가문은 유지되는 기묘한 역사를 갖고 있다.

역사를 되돌아 보면 일본인은 혁명적인 변화를 싫어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50년 이상 실질적인 정권 교체가 없었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중 일본처럼 정권 변화가 없는 사례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현재 일본을 이끌고 있는 세력은 관료라고 보면 틀림없다.

일반 시민이나 도시를 다니는 젊은이를 보면 ‘일본도 별 게 아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관료를 만나보면 좀 생각이 달라진다.

일본에서 최고 명문대를 나오고 실력있는 젊은이들은 아직도 졸업 후 관료의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당분간 이러한 패턴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관료 중심의 일본이 언제까지 세계 최고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관료들은 우수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일본이 10년이상 장기불황을 겪고도 정권교체가 안되고 사회적 변화가 적은 것도 바로 우수한 관료 ‘덕택(?)’이 아닐까 가끔 생각을 해보곤 한다.

한국이 어려운 국내외 여건속에서 IT 나 디지털 산업에서 세계적으로 앞서고 있는 것은 ‘관료’ 가 아닌 ‘기업가’ 덕분이다.물론 관료의 공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관료들이 힘이 셀수록 폐해도 크고, 부작용도 크다. 일본의 경우 시민과 언론의 목소리가 적어 문제가 더 커지고 속으로 곪고 있다.

최근 일본 관료제의 문제점이 외부로 터져나왔다.바로 낙하산 인사다.

고이즈미 총리가 개혁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지 4년이 지났지만 ‘낙하산 인사’가 전혀 시정되지 않고 있다.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낙하산 인사를 없애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낙하산 인사는 늘고 있는 실정이다.

관료가 총리 보다도 힘이 세다는 증거다.

최근 드러난 교량 건설 담합 사건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도로공단 출신 간부들이 민간 기업으로 내려가 공단과 짜고 건설 공사를 담합, 실제 보다 훨씬 낙찰가가 높아졌다.

당국의 조사가 시작된 후 교량 낙찰가는 평균 30%이상 떨어졌다. 수십년 동안 담합으로 발생한 공공 요금 부담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져온 셈이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 만사가 ‘인사’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관료들이 잘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