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너절하면 힘이 없다. 글이 너절하면 뜻이 얕다. 길이 너절하면 발길이 헷갈린다. 최고의 맛은 담백하고, 최고의 소리는 고요하고, 최고의 덕은 은미한 법이다. 창이 너무 길면 적을 정확히 겨냥하기 어렵고, 말이 너무 길면 본질이 흩어진다. 광고 카피가 회자되는 건 짧은 문구에 깊은 뜻을 담기 때문이다.

나대경은 남송의 학자다. 그의 ≪학림옥로≫는 밤에 집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나눈 담소의 모음집이다. 천(天)·지(地)·인(人)으로 분류해 문인이나 선인의 말을 시화(詩話)·어록·소설의 문체로 실었다. 거기에 보면 종고선사(禪師·선종의 교리를 통달한 스님)가 선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왔다고 해서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한 치도 안되는 칼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한 치도 안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은 이 문구가 출처다.

여기서 ‘살인(殺人)’은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마음속의 속된 생각을 없앤다는 뜻이다. 번뇌를 없애고 마음을 모으면 ‘작은 것’ 하나로도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촌철(寸鐵)은 손가락 한 개 폭 길이의 무기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말 한 마디,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짧은 경구를 비유한다. 실제로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살린 사례는 역사에 무수하다.

니체는 “거짓을 말하는 자는 수다스럽다”고 했다. 수다로 거짓을 가리고, 감추고 싶은 데로 쏠리는 타인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공자는 “말을 꾸미는 자에게는 인(仁)이 드물다”고 했다. 부풀리고 과장하고 왜곡하는 말은 거짓이 좋아하는 토양이다. 거짓은 늘 그 주변을 기웃댄다.

지시는 분명히 해라. 오류는 주로 소통의 모호함에서 생긴다. 모르면 물어라. 정확히 아는 건 일의 절반이다. 추상적으로 나무라지 말고 구체적으로 요점을 짚어줘라. 중언부언하지 마라. 당신의 훈계를 잔소리로 여기는 순간 상대는 귀를 닫는다. 추임새를 넣어라. 그건 공감이고, 때로는 상대에 대한 위로다. 판소리는 추임새가 살린다. 마음을 열어라. 당신이 열면 상대도 연다. 공감은 둘의 마음이 함께 열릴 때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