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지인의 혼사를 핑계 삼아 남쪽에서 전해오는 꽃소식에 콧바람도 쐴겸 일요일 이른 아침,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좀비’ 출몰을 경계하며 좌정하고선 부산서 호구하는 친구에게 톡질을 했다.
귀경 예매표가 19시라 오후 반나절이 어중간 해 함께 놀자고. 단박에 눈치 챈 친구, 도착 시간 맞춰 부산역에 나타났다.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해운대 인근 웨딩홀에 들러 눈도장 찍고 밖을 나서는데 봄비가 추적추적~
친구는 우선, 해운대 마천루와 광안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황령산에 올라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했다. 황령산 오름길에 잠시 차를 멈춰 봄비 내리는 광안리와 해운대 풍경에 젖어 들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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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대교 오른쪽 끝머리에 용호동 이기대(二妓臺)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이기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수영의 권번에 있던 두 명의 기생에 얽힌 일화가 전해진다. 수영성을 함락시킨 왜장이 벌인 잔치에 불려갔던 두 명의 기생이 왜장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후 함께 바다로 뛰어 들었다는 이야기다. 임란 때 진주목의 관기, 논개 못지않은 두 義妓가 이곳에도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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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고층 아파트단지를 산자락이 감싸안은 모습이다. 대연동 목장골이다. 30년 전 저 아파트단지 자리엔 목장이 있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9시 방향 산등성이에 그 말썽 많은 황령산 실내스키돔(노란 지붕)이 보인다. 여러 사람 멍들게 하고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실내스키돔으로 현재까지 이렇다할 대책없이 흉물로 남아 있다. 하늘엔 먹구름, 땅엔 봄햇살이…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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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산 봉수대 앞 전망대. 지하에는 카페가 있다. 한 달에 한번씩 토요일에 음악회가 열린다.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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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적셔가며 양복에 우산 쓰고 황령산 정상에 올랐다.(물론 주차장까진 차로 이동, 봉수대 정상까지만 걸어서~)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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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마지막 오지 생태마을, ‘물만골’이 파란 속살을 드러내다. 예전엔 물이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동행 중인 친구(장영희 부산대 겸임 교수, 시인)의 설명이다. 여기서 잠깐, 시인 장영희의 詩, ‘물만골’ 세 편을~~


물만골․·1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자궁 속처럼 조용하다.
바람과 나무와 햇살이
백수정처럼 말갛다.
고집스럽게 거부해야 할
무엇이 있는 것처럼
습자지 같은 낮달마저
침묵으로 걸려 있다.

그림 속 신선 같은 노인들은
말은 안 하고 입술만 달싹인다.
그 눈빛 아이처럼 맑아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은
허튼 사내와 같다.

일곱 색깔 허영으로 물들고
오색 비단으로 치장한 몸으로
뻔뻔한 도시에서
두꺼운 얼굴로 시끄럽게 살아온
난 몹시도 부끄럽다.



물만골·2

도회에서
샴페인처럼 들뜨다가
희떠운 삶을 지고
여기 발 들여놓고
곰곰 생각해보면
내 삶의 절반은 거품이다.
쏜살같은 세월 속에 엮어온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지만
저 숲에 진 빚이 만만찮다.
여기서는 걸어야 한다.
걷는 사람만이 함께 산다.
여긴 스쳐 간 인연을
얘기하기 좋은 곳
느릿느릿하게
세월이 서성인다.



물만골·3

땅속에서는 고구마 붉어 가고
숲에서는 저절로 밤 익고
남달리 솔은 푸르고
우렁찬 솔 싹은 소리가 없는데
산딸기는 흐드러져 임자 없이
길손을 기다리며 고라니 가족 함께 산다.

실핏줄이 다 보이는 나무들은
서로 기대어 어수선한 세월의 오후를
가만가만 건너고
모든 것은 저절로 자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어깨 겯고 함께 산다.

잠자리 한 마리 사뿐 날갯짓하니
온 마을이 출렁이고
나그네 가슴 속에선
물결이 일렁인다.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황령산을 내려와 광안대교 너머 이기대 백련사로 향했다. 친구에 의하면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천혜의 장소란다. 차는 포도를 벗어나 천길벼랑 위로 난 아찔한 길로 들어섰다. 승용차 교행이 어려우리만치 좁은 비포장길이다. 조수석에 앉아 창 아래로 내려다보니 모골이 송연하다.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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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의 막다른 곳, 암벽 앞에 따개비처럼 들러붙어 있는 자그마한 절집이 있다. ‘백련사’다. 손바닥만한 절집 마당에서 바라본 광안대교와 마린시티와 해운대, 그리고 멀리 해운대 장산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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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에 바라본 마린시티와 해운대. 멀리 정면에 해운대 장산의 모습도 뚜렷하다.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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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앞뜰 홍매화와 괴목 사이로 보이는 광안대교(다이아몬드 브릿지)와 광안리 해변의 풍경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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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백련사를 뒤로하고 오륙도가 건너다 보이는 스카이워크를 향해 go~ 아쉽게도 스카이워크는 비가 와서 출입금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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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끔 잊고 있는 또하나의 부산 명소, 바로 세계에서 단 하나, 그것도 우리나라 부산 대연동에 자리한 유엔묘지공원을 찾았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유엔장병 2,300명이 영면해 있는 곳이다. 묘역을 촉촉히 적시는 봄비가 처연했다.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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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이국에서 스러져간 한 터키 병사의 묘역에 올려진 손때 묻은 유품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지구상에서 전쟁만큼은 없어야 한다.
반나절 동안 야무지게 부산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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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없이 들이닥친 불청友에게 숨은 부산 명소 몇군데를 뽑아 반나절 투어 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선 친구에게 도통 염치가 없다.
“친구야! 알토란 같은 일요일 반나절을 델꼬 댕기며 구경시키느라 욕봤데이”

부산역 옆골목, 묵은지 잘 한다는 집에서 좋은데이 부딪쳐 가며 반나절 쪽집개 투어를 마감했다. 5월 서울 나들이 할 일이 있다는 친구에게 그때 웬수를 갚겠다긴 했는데, 글쎄 반나절 서울 속성 투어가 가능이나 할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