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해외여행도 다니고, 악기도 배우고, 수시로 문화생활도 할 수 있겠지만, 은퇴 후의 삶이 그리 풍요롭기는 쉽지 않은 바, 보다 저렴하게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고 느낄 필요가 있다. 각자 취향이 다르고, 경험에 따라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20년을 공부하고 30년 간 일을 했다면, 나머지 20년은 쉬거나 놀아도 된다. 평생을 일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날마다 일거리가 없다고 좌절하거나 슬퍼할 이유는 없다. 조금 가난하거나 부족해도 된다. 편한 노후를 위해 건강만 챙기고 가끔 산책을 하는 것도 행복한 일상의 중요한 시간이다. 산책은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느끼면 좋겠다. 클래식이나 고전 민화를 보면 된다. 쇼팽과 모차르트라는 이름만 검색해서 아무거나 들어 본다. 피카소나 빈센트 반 고흐를 검색하여 그림만 쳐다봐도 된다. 세부적인 지식이나 내용을 알 필요는 없다. 비전문가가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 것은 지식을 쌓기 위한 게 아니라, 취미로 생각하면 된다. 그냥 들으며 그냥 바라만 보면 된다. 구경거리로 생각하면 된다. 듣고 보면서 느끼기만 하면 된다. 두뇌만 있으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지고 저절로 즐거운 행복이 다가온다.
셋째, 책을 읽는다. 평생 읽어 보지 못한, 평생 읽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책들을 과감하게 사서 펼쳐 본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시간의 의미와 삶의 가치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시집을 사거나 철학 미학 역사 책을 사보거나 야한 소설을 읽어 보아도 좋다. 소일거리로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돼지나 호랑이는 책을 읽지 않는다. 사람만 읽는다.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끝으로, 신문을 자세히 읽는다. 대충 읽지 않고, 사설이나 칼럼, 또는 외신들을 세밀하게 읽어 본다. 신문은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다. 일주일만 자세히 읽어도 미래를 볼 수 있다. 꾸준히 읽다 보면 관심거리가 생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경영전략, 은퇴 후의 삶 등에 관한 기사도 넘친다. 인터넷 신문을 보지 않고, 종이 신문을 펼쳐 들고 밑줄을 쳐가며 읽는 습관도 좋다. 두어 달만 그렇게 하면 미래에 대한 통찰력도 생길 것이다.
죽기 전에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은 아주 값진 선물이다.
갑자기 시 한 편이 생각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