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대 : 주역으로 이룬 천년왕국의 힘(주역명승지순례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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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대는 주지하다시피 삼국유사의 「紀異」편에 실려있는 신라 신문왕과 부친 문무왕의 전설이 얽힌 고적이다. 전설은 오래되었지만, 그동안 이견대는 실전되었다가, 1967년 발굴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도 아주 소싯적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 문무대왕해중릉의 발굴내용이 당시의 신문지상이나 매스컴에 대서특필되었던 기억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견대의 내부에 걸려있는 당시 조사단장 김상기박사가 쓴 <利見臺記>에 의하면 신라五嶽조사단의 발굴로 문무대왕해중릉이 대왕암으로 고증되면서 역사의 부침속에 까맣게 잊혀진채 祈雨壇이나 譯院으로 쓰였던 이곳 이견대도 함께 중건되었다는 내력을 전하고 있다.

바로 이 건괘의 구이효와 구오효의 이상을 우리의 아름다운 전설로 승화시킨 곳이 바로 이견대 대왕암의 전설이다. 삼국유사 紀異편의 만파식적의 고사에 보이는대로, 왜적의 침입을 막다가 스스로 호국의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은 구오의 비룡이고 아들 신문왕은 見(현)龍에 해당한다. 그래서 신문왕이 선고 문무왕이 계신 대왕암을 바라보니, 바로 구이효사에 見龍在田利見大人이 되고, 또 입장을 달리해서 대왕암에 있는 문무왕의 입장에서 저 멀리 이견대에 찾아온 아들 신문왕을 바라보니 구오효사의 飛龍在天利見大人의 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응의 상서로서 동해룡이 바친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온 나라가 평안해졌다는 萬波息笛의 고사는, 구이와 구오가 상응하고 두 대인이 서로 합심하여 온 천하를 화평하게 다스린다는 건괘의 뜻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건괘는 여섯 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대립 갈등하는 양상을 늘 걱정하지만, 이견대의 고사는 갈등을 넘어선 위대한 조화를 말하고 있다. 진심은 통한다. 그것이 인간 세상이고, 이 세상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