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판사 한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고충을 들었다.

중형(重刑)이나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사건을 다루면서 겪게 되는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한다. 사형선고를 하기 전날 저녁의 고뇌와 갈등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라 한다. 피고인이 아무리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해도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일을 결정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가히 짐작할 수 없지만 충분히 그 직업적 고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늙기 전에 다른 일을 해 볼까 고민한다고 했다.



환자를 돌보던 새벽에 갑자기 병실을 찾아 온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의 원인을 잘 모르거나 치료되지 않는 질병을 다루면서 이런 저런 검사와 다양한 약을 투여하면서 겪게 되는 의사의 고통 또한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책이 없는 병고(病苦)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보면서, 그들과 입씨름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욕을 먹고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회복의 기미가 나타나지 않아 자신의 무력함에 비애를 느끼는 슬픔은 어느 누구도 대신 느껴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해 볼까 한다고 했다.



정보통신(IT) 분야의 연구원과 만난 적이 있다.

입사 2~3년이 지나도록 특별한 연구실적을 내지 못하고, 탁월한 연구원의 보조역할만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눈치를 보면서 월급을 받아야 하는 박사의 고통을 누가 알겠느냐며 술잔을 따르는 그에게 동정심은 사치였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른 회사로 옮길까 고민한다고 했다.



최근에 어느 대기업 신문에 5개월간 열번 정도의 연재칼럼을 썼다. 격주로 쓰는 칼럼의 마감일은 제삿날 돌아 오듯이 금방 다가왔다. 더 이상 쓸 내용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지면이 바뀌어 칼럼을 중단하겠다는 요청이 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참으라”고..,

모두들 자기 일과 직업이 싫어 떠난다면 그 일은 누가 하겠는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모두가 그만 두려고 한다면, 그 일은 어느 누가 해야 하는가?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들인데, 그 어떤 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일들인데…



“아, 그렇구나? 모든 직업에 고통과 갈등이 있겠구나.”

어느 직업과 어느 직종이 편하고 쉬우며 간단하겠는가? 온몸을 던져 인대가 늘어나고 끊어지는 축구 야구 선수들, 등에 약을 바른 채 진통제를 먹고 춤을 추는 은반 위의 요정들, 발가락이 퉁퉁 붓다 못해 휘어지는 발레리나, 목청이 찢어지도록 떠들고 노래하는 가수와 강사들, 목숨을 밧줄에 걸고 빌딩의 벽을 닦는 청소부들…



그렇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 가치와 명예, 가족의 안정과 평화, 사회의 균형과 직업 세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땀과 피와 눈물을 아끼지 않으며 노력하고 있다. 인내와 고통과 용기와 자신감, 도전과 갈등과 고민과 열정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라, 삶의 현장과 치열한 현실 세계를 다른 말로 표현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