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니지 – 사랑보다 깊은 상처
상처를 안고 산다는 것은 위대하다
요즘 갑자기 강북의 학원가로 불리는 중계동 은행사거리
거기 뒷골목에 손 크기로 이름난 <돼지네>라는 술집이 있다
거기서 서비스안주로 주는 조개탕을 먹다가 이렇게 생긴 조개를 보았다


상처로 보아 분명 적어도 몇달 전에 불가사리에게 입은 상처이다
불가사리는 조개류의 저 단단한 껍데기를 이빨로 갈아 구멍을 뚫고
속을 유유히 파먹는 바다의 무법자이다
불가사리에게 한번 잡히면 끝장인데 운 좋게도 이녀석은
불가사리의 관발을 벗어나 여생을 누린 것이다



뒤집어 안쪽을 보니 거의 속살 가까이까지 파먹히다가
구사일생으로 벗어났고
스스로 기존의 껍질 안쪽으로 새 조개껍질성분을 뿜어
가까스로 속살을 덮고 살았던 것이다



조개의 생애가 위대했다
한낱 작은 바다생물에 지나지 않지만
죽음을 벗어나고 상처를 끌어안고 그 상처를 보듬으면서
이렇게 크게 자랐다는 것이 눈물겹도록 위대했다



그렇다
생명은 죽음보다 위대한 것이다
어떠한 상처를 끌어안고 살지라도
생명은 위대한 것이다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이 우주 무엇가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위대함이다



사는 게 조금 부실하고 뒤처지면 어떠랴
잘나거나 유명하지 않으면 어떠랴
덜 배우고 가진 것 적으면 어떠랴
몸 여기저기 조금 부실하거나 망가졌은들 어떠랴



살아있는 것은 위대하고
상처를 안고 산다는 것은 더 위대하고
상처를 안고 무엇인가를 꿈꾸면서 이루어나가면서 산다는 것은
가장 위대하면서 아름다운 삶이다
그것은 바로 신이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은혜이자 권리이고 의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