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을 꿈꾸는 자에게
이번 대성리 설치미술전의 특징은 무엇인가를 나무에 매다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하도 엉뚱하고 기발한 것이 많은 전시회에서 우스운 일이 하나 있었다.
나무에 오만 가지 잡동사니가 아주 조화스럽게 너풀대고 있었다.
그것이 작품인 줄 알고 열심히 감상을 했다.
알고 보니 홍수 때 떠내려온 쓰레기와 바람에 날린 비닐조각들이었다.
작품을 보고도 모르는 사람과 작품 아닌 것을 보고도 감상하는 사람 중
과연 누가 더 똑똑할까 또는 더 멍청할까?
나무에 연탄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하나같이 이마에 검정 빨강 또는 흰띠를 두르고 있다.
연탄은 아궁이에서 탈 때 쓸모가 있다.
이 작품의 연탄은 과연 나무에 매달려 탄 것인가?
아니면 다 탄 연탄을 매단 것인가?
난 이 작품을 보면서 혁명에 울고 웃는 비혁명대원들은 생각한다.
머리에 결사반대 띠를 두르고 결코 죽지 않는 숱한 데모대를 생각한다.
연탄 하나가 탄다는 것은 한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산활동의 총체이다.
혁명은 현실에 맞지 않는 상황을 뜯어 바꾸는 것이다.
고친다기보다 바꾸는 것이 더 어원에 맞을 것이다.
체제를 혁명하든, 사회가치를 혁명하든, 조직의 생리.관습을 혁명하든
혁명에는 고통과 희생과 불평등이 따른다.
더우기 목숨이나 자존도 걸려 있다.
혁명은 불평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평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혁명은 누구나 하지 못한다.
불평은 어느 사회에서 언제든지 발생하는 것이지만
혁명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발생하고 성공하는 것이다.
나는 나무에 매달린 연탄재를 보고 혁명대원이 아니면서
혁명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불평인들을 떠올렸다.
<어느 누군들 20세기 한국에서 혁명을 꿈꾸지 않았으랴!>
나는 30년 가까이를 이 명제 하나를 곰곰 궁리했다.
그리고 내 주위에서 보는 숱한 사람들
신문 방송에 올라왔던 많은 사람들과 죽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 중 과연 행동 당시에 정말로 혁명전사였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혁명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혁명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혁명은 진정한 혁명전사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연탄은 아궁이에서 활활 탈 때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어느 혁명을 빙자한 불평인이
저 현실이라는 나무에
연탄재를 매달면서
활활 타오르기를 빌었던가?
<매달기>는 달리지 않는 것을 달리는 곳(것)에 억지로 달리게 하는 것이다.
<꿈꾸는 것>과 <불평>과 <혁명>을 혼동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저 나무에서 과일 달리듯 검은 연탄이 스스로 열려
활활 불타오르는 것을 꿈꾼다.
누구는 나무에 연탄재를 매달고 불이 안 붙는다고 불평한다.
혁명가는 불이 활활 타는 연탄화덕을 나무에 매달려고 애를 쓸 것이다.
살을 에는 바람이 씽씽 부는 강가에서
나는 꿈을 꿀 것인가? 불평을 할 것인가? 혁명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2000년 어느 겨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