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사십을 넘어선 해 나머지 인생을 덤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인생이 즐겁다. 알고 보면 모두 좋은 사람들인데 그들과 경쟁하고 싶지도 않고, 폼 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많은 지식을 쌓고 싶지도 않고, 잘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혼자 웃으면 그만이다. 돈은 좀 벌어야겠지만 구멍가게 수준의 비즈니스 정도면 만족한다. 하루하루 깨닫고 즐거우니 사는 맛이 무르익는다.




즐겁고 재미있게 살려면 첫째 세상에 휩쓸리면 안 된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같은 자존감과 배포가 있어야 한다. 돈, 경쟁, 일등논리에 휩쓸리다보면 자기 인생은 어느덧 사라지고 만다. 새로운 기계,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고 최초로 하는 작업이 세팅(setting)이다. 세팅은 개인의 의지가 반영되어 평범한 물품이 자신의 가치관이 투영된 새로운 물품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체험을 얘기할 때 ‘천당에서 지옥까지’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필자는 직장인 신분에서 혼자 거친 세상에 나갈 때 미리 ‘돈, 명예, 경영’ 등 비즈니스와 관련된 간접이지만 양극단의 과정을 선험 했다. 세상 흐름에 따라가기보다는 스스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세팅하기 위해서다. 꽤 긴 시간을 거쳐 정리가 됐다. ‘먹고 사는 것 이상 규모의 비즈니스를 지향하지 않고, 세상과 경쟁하지 않으며, 나눔을 취미와 특기로 하자’ 같은 촌스런 표어가 되었다. 남 얘기 따라하지 않고 내가 보고, 경험한 것만 얘기하는 것 정도가 추가된다. 그러나 자신이 정한 표어에는 흔들리고 않고 확신을 가져야 그것이 진실이 된다.




얘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필자가 하는 일에 대해서 물어본다. 이 질문에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남들이 자신의 비즈니스와 정체성에 대해서 논리와 수사를 곁들여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시류와 경쟁하지 않는다. 사실 필자도 아직까지 잘 모른다. 필자의 대답에 담긴 깊은(?) 의도를 간파하면 감사하고, 아니어도 좋다.




비즈니스 규모가 구멍가게 수준이라 거창하게 얘기할 것이 없어서 좋다. 덕분에 모든 지인들이 친구가 된다. 주로 교육 관련 비즈니스를 펼치거나 진입하려는 현직 CEO, 기자 등 다양한 분들이 찾아온다. 우선 그들이 보기에 필자가 무슨 비즈니스를 지향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편안하다. 또한 자신들의 지향점은 대형 할인점, 백화점 수준의 규모라, 구멍가게 같은 수준의 필자에게 안심하고 조언을 구한다. 지인들이 필자를 경쟁자라고 인식을 하지 않으니 더욱 편한 만남이다. 필자가 조언하는 내용은 이미 현장에서 경험과 실천을 통해 위험을 제거한 바로 돈 되는 것들이다. 규모의 경제에 욕심이 없으니 해당 노하우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멀리서 찾아온 분들에게 그 정도 선물을 드리는 것은 예의다. 이 대목에서 김대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의 화려하고 폼 나는 규모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의 역량과 처지에 맞는 위치를 설정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굳이 맞설 필요는 없지만 세상에서 언급하는 대세가 모두 정답도 아니다. 와인과 둘러싼 얘기가 그렇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프랑스에는 와인이, 대한민국에는 막걸리가 있다.’ 필자는 막걸리 매니아이며, 와인으로 치면 막걸리 소믈리에 정도 수준의 애착을 가지고 있다. 만약 프랑스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우리가 현재 와인 대하듯 예법, 생산지, 곡물품질 등을 따지면 미친놈 소리 듣기 십상이다. 와인도 돈도 인간에게 복종하는 대상이다. 주인이 종에게 오히려 절절매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와인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와인의 향기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나오는 향기다. 값비싼 와인의 향기가 썩은 심성까지 가려주진 못한다. 한마디로 와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좋은 사람들과 마시면 된다.




지인들이 얼마 버냐고 물어보면 우스개 소리로 연봉 88만원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단촐한 벌이다. 그것도 주로 후배들의 밥값, 술값으로 지출된다. 뭐 먹고 사냐고 물어보면, 그냥 먹고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내심은 이렇다. ‘비즈니스 내공이 있는 사람은 당연지사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천상병 시인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벌이지만 앞일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 말은 천 시인은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에게 막걸리 값을 얻어 냈지만, 필자는 막걸리 정도는 살 수 있는 행복한 위치라는 의미다. 약 3년 후 그 구멍가게가 안정화 되는 시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실리도 챙길 수 있어서 좋다. 바둑으로 예를 들면 현재 한 귀퉁이에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필자는 저 멀리 대각선에 돌을 놓는다. 상대방은 저 사람이 정신 나간 사람이거나,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마음을 놓는다. 필자의 돌을 공격하기도 한다. 전투에 관심이 없고, 원래 가진 것도 없으니 흔쾌히 주거나 물러선다. 그러나 먼 훗날 저 멀리 착점한 돌들의 위력은 실로 엄청나다. 수 십 년 멀리 보고 놓은 돌이다. 현재 좋은 사람들과 대결할 필요도 없고, 세월이 흘러 멀리 뿌려 논 씨앗을 추수할 수 있게 되어 좋고, 그저 즐거운 인생이다. 필자 같은 김대리가 많아야 세상이 더욱 다양해지고, 튼튼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