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작 '바람난 가족' 이후 크고 작은 역할로 함께 작업

1971년 영화 데뷔작 '화녀'와 이듬해 '충녀'까지 천재 감독 김기영의 페르소나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배우 윤여정(74)은 이후 결혼과 함께 오랜 공백기를 보냈다.

'에미'(1985) 등에 출연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다시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건 2003년이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투병 중인 남편을 두고 새로운 남자 친구를 만나 새 인생을 즐기는 시어머니 역으로,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화려한 복귀를 이뤄냈다.

16일 전화로 만난 임 감독은 "여러 배우한테 거절당한 캐릭터인데 윤 선생님이 바로 '내가 할게' 하셨다"고 했다.

윤여정은 노출과 노골적인 대사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꺼렸던 캐릭터에 기꺼이 도전했고, 영화는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 진출하는 등 국내외에서 성공을 거뒀다.

임 감독은 이날 윤여정의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 지명 소식에도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미나리' 촬영을 시작하기 전 대본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런 조건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거절할 만한 상황이었어요.

한국에서처럼 편안하게 대우받으면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니까요.

그 나이에 자기 돈을 써가면서 함께 하셨고 이런 결과를 맞이하신 건, 그분이 몸보다 마음이 젊은 분이어서겠죠."
이후 윤여정은 '그때 그 사람들'(2005) '오래된 정원'(2006), '하녀'(2010), '돈의 맛'(2012), '나의 절친 악당들'(2015), '헤븐:행복의 나라로'(2021)까지 크고 작은 역할들로 임 감독과 함께 했다.

임 감독은 "윤여정은 꽤 드라이하고 미니멀하게 연기를 하시는 편이고 나는 감독으로서 그런 연기를 좋아한다"며 "감독인 나는 그 배우의 연기를 좋아하고, 그 배우는 자기 연기를 좋아해 주는 감독을 좋아하니 서로 친해졌다"고 했다.

'나의 절친 악당들'에는 윤여정에게 맡길 만한 역할이 없었지만 "그냥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할 테니 집어넣어라"는 윤여정의 말에 한 장면을 촬영하면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윤여정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헤븐:행복의 나라로"에도 출연했는데 임 감독은 "아주 화려하고 독특한 캐릭터"라고만 귀띔하며 말을 아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작품 중에는 '하녀'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인 동명 영화를 50년 만에 리메이크한 영화는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원작에 없던 나이 든 하녀를 연기한 윤여정은 국내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임 감독은 "윤여정은 조연이 아니라 전도연과 함께 주연으로 생각하고 만든 영화"라고 했다.

두 사람은 이후 2012년에도 '돈의 맛'으로 다시 함께 칸을 찾았다.

리처드 바인의 소설 '소호의 죄' 연출을 맡아 할리우드 진출을 앞둔 임 감독은 "제가 윤 여사를 모시고 할리우드에 가겠다고 했는데 한발 늦었다"고 농담하면서 "(윤여정은) 어려울 때 꺼내 쓸 수 있는 옆 주머니에 따로 찬 지갑처럼 언제나 마음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주는 배우"라고 마음을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