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강원도 A대학 학생 황준혁(가명·20대)씨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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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강원 A대학에 입학한 황준혁씨는 학교 측이 온라인에서 시행하는 신입생 실태조사 문항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부모님 직업과 혼전 성경험에 대한 인식을 묻는 등 민감한 문항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생활 침해라고 판단한 황씨는 불참자 명단을 소속 단과대학에 통보한다는 공지에도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 부모 직업·성경험 인식 질문…학생들 "황당"
A대학 상담센터가 신입생의 대학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8일부터 실시하는 온라인 설문조사 문항을 두고 인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가 된 문항은 ▲ 부모 생존 여부 ▲ 부모 직업 ▲ 학비 조달 주체 ▲ 성(性) 인식을 묻는 항목 등이다.

학부모 관련 문항은 부모의 생존·사망 외에 이혼·별거 여부까지 응답하게 돼 있다.

부모 직업 문항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전문직, 생산직, 단순노무직과 같이 구체적인 업종을 답해야 한다.

부모 양육 태도, 부모와 대화 정도, 부모와 관계를 묻는 항목도 포함됐다.

성경험 인식을 묻는 문항의 경우 결혼 전 성경험, 혼전 동거, 동성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황씨는 "민감한 내용의 질문을 보며 황당했다"며 "고등학생 때도 안 하던 사적인 내용의 설문조사를 대학에서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A대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에도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80년대에 사는 것 같다", "상처받는 사람 분명히 있을텐데 생각 없나" 등 항의성 글이 대거 게시됐다.

설문조사가 강제성을 띠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상담센터가 '신입생 전원이 설문조사를 필수 실시해야 하며, 미참여자 명단을 각 단과대학으로 보내 (설문조사를) 재실시할 예정'이라고 공지해 학생들 사이에서 조사 미참여시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황씨는 "미실시자 명단을 통보하면서까지 설문조사에 참여하라는 건 학생 입장에서 반강제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문가 "인권침해 소지"…대학 측 "문제 질문 삭제·수정 용의 있어"
전문가들은 대학이 신입생들에게 민감한 개인정보를 묻는 것이 인권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수도권 B대학 학생생활상담연구소는 2019년 연애경험, 첫 성관계 시기, 왕따 경험 등 민감한 질문이 포함된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성적 조회가 불가능하게 했다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민감 개인정보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수집해야 한다"며 "설문조사 일부 문항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인권정책연구소 김형완 소장도 "몇몇 문항은 신입생 대학 생활을 돕겠다는 조사 목적과 무관한 질문"이라며 "인권침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대 관계자는 "부모 직업 및 학자금 조달 관련 문항은 장학제도 마련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학내 구성원 대상 성 인지 감수성 교육 때 학생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학생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면 일부 질문을 보완하거나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강제성 논란에 대해서는 "조사 참여율을 높이려다 보니 (필수참여) 관련 문구가 들어갔지만 설문조사가 필수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A대 측은 최근 공지 게시글 내 신입생 필수 참여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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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