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저널리스트 '그날 밤 체르노빌' 번역 출간

다음 달 26일은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참사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35주기다.

시간이 흘렀지만, 생존자와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애덤 히긴보덤(53)은 저서 '그날 밤 체르노빌'(이후)에서 체르노빌 사고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패라고 규정하면서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히긴보덤은 2006년 체르노빌 사고 20주기 기사를 쓰려고 취재를 시작했다가 10년 이상 이 주제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는 기밀이 해제된 공산당 정치국 회의록과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의 회고록, 과학자들의 조사 보고서와 연구 논문, 일반인들의 사진과 일기 및 편지 등을 참조했다고 밝혔다.

책은 이런 자료를 토대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자 노력한다.

또 옛 소련 당국의 비밀주의와 정치적 선동이 20세기 최악의 재앙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진실을 가려왔는지에 파헤치려고 시도한다.

저자는 안전복과 헝겊 방독면 없이 방사능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갔던 작업자들과 피폭될 줄 알면서도 또 다른 폭발을 막기 위해 원자로 아래로 향했던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책은 "잠든 아들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집을 나선 이들이야말로 그날 밤의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말한다.

체르노빌 35주기…최악의 실패, 그리고 남은 이들의 목소리
히긴보덤은 발전소에 끝까지 남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과학자들도 언급한다.

이 과학자들은 최대 피폭 한도에 도달하면 귀가 조처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현장에 갈 때 방사선량 측정 기구를 두고 갔다고 전한다.

저자는 당시 소련 당국이 사고 직후 방사능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진실을 은폐했고, 방사능이 가득한 거리에서 메이데이 퍼레이드를 강행해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당국이 발전소를 봉인하기 위해 콘크리트를 이용해 석관(石棺)을 씌웠지만 완벽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사고 후 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높아지자 "실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방사능 공포증이 높아졌을 따름"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었다고 말한다.

책은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이 된 원자로 자체의 설계 결함, 소비에트 원자력 프로그램의 실패, 비밀주의, 과학자들의 오만 등은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원전에서 일하는 젊은 소장과 제어실 엔지니어들, 사고 후 오염 물질을 없애는 작업과 대규모 주민 이동을 지휘한 당국자들, 평범한 시민들 등 저자가 기록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당시 사고 전후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발전소 엔지니어들의 죽음과 오랜 투병을 비롯해 사고 책임자로 지목된 이들의 재판과 수감 및 출소 이후의 삶에 관해 추적하기도 한다.

김승진 옮김. 740쪽. 3만2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