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리딩방 모니터링 취재…급등한 날 매수 추천
틈틈이 유료방 가입 유도…"VIP방, 결국은 먹잇감"
증권팀 = 전기·전자업종 부품제조사 A사는 새해 들어 주가가 3배로 급등했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이 회사는 업황 부진 탓에 2017년 이후 줄곧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내면 코스닥시장에서 관리종목 지정 사유에 해당한다.

특별한 공시나 알려진 호재가 없었는데도 이 회사는 장중 상한가를 두 차례나 기록했다.

A사는 현재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된 상태다.

유통업으로 분류되는 코스닥 상장기업 B사도 최근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상한가 이튿날도 급등세가 이어졌다.

조용하던 포털 사이트 종목 게시판에는 '갑자기 왜 상한가를 가느냐'는 글들이 쏟아졌다.

B사 관계자는 주가 급등 배경에 대해 "우리도 모른다.

특별한 이슈가 없다"고 말했다.

◇ 이상 급등 배경은 리딩방(?)…갑자기 떨어진 '매수 사인'
이처럼 뚜렷한 호재 없는 중·소형주 급등 현상의 이면에는 주식 리딩방의 관여가 있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리딩방이란 유사투자자문업자가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주식 종목을 추천해주는 대화방 또는 인터넷방송 등을 말한다.

리딩방 중에는 이용료를 받는 대신 비교적 양질의 투자정보를 제공하며 주식 매매를 돕는 곳도 있지만 주가조작 목적에 악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도 다수 있다.

운영자나 'VIP 고객'이 선취매한 종목을 리딩방에 추천한 뒤 먼저 사들인 주식을 높은 가격에 넘겨 부당이득을 챙기는 식이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 목적으로 들어간 무료 공개 리딩방에서 A사와 B사 주식이 급등 무렵 매수추천 종목으로 지목됐다.

한 공개 리딩방에선 'A사 주식을 얼마에 매수하라'는 매수 사인이 처음 나온 것은 1월 말이었다.

주가 흐름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해당 리딩방에서 매수 추천 나왔던 시점은 정작 고점 부근이었다.

공개방 추천에 앞서 누군가가 선취매에 나섰다는 의미다.

주가 흐름과 거래량 추이를 보면 매수 지시가 나왔을 무렵 A사 종목을 먼저 사들였던 누군가는 이미 주식을 대거 내다 팔고 있었다.

추천 가격에 매매 체결이 불발되자 A사 주가는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고 리딩방 운영자는 황급히 추천 매수가격을 낮춰서 다시 제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상황을 모르던 공개방 참여자들의 매수로 주가가 일시적으로 반등하자 운영자는 '수익 인증'이라며 추천 시점 이전부터 오르고 있던 A사 주가 상승차트를 채팅방에 올리는 뻔뻔함을 보였다.

5분 단위 차트로 기록된 '인증샷'에선 누군가의 대량 매도로 주가가 급락했던 짧은 순간은 포착되지 않았다.

B사 주식도 크게 오르던 무렵 기자가 들어가 있던 한 공개 리딩방에서 거론됐다.

매수 추천 시점은 역시 고점 부근이었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 부담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분위기에서 주가는 매수 추천 후 하락세를 지속했다.

리딩방 신호만 믿고 B사 주식을 비싼 값에 사들인 투자자는 선취매 세력의 탈출만 돕는 꼴이 됐던 셈이다.

'떨어지고 있는데 어떡해야 하느냐'고 항의하면 글이 삭제되거나 강제퇴장됐다.

◇ VIP방 한달 가입비 수백만원도…후회해도 환불 어려워
공개 리딩방은 'VIP방' 홍보 역할도 겸하고 있다.

대부분 공개 리딩방은 '소수에게 고급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유료 VIP방 가입을 유도한다.

VIP방의 수익률도 틈틈이 인증샷을 올린다.

이용료는 월 수십만원대부터 수백만원대까지 다양하다.

공개방에서 운 좋게 이득을 본 사람들은 소수로 운영되는 VIP방의 수익률은 더 높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들의 유료방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투자 경험이 많은 개인 투자자가 적절하게 위험관리를 하면서 유료 리딩방의 정보를 매매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투자 결과에 실망하며 거액의 가입비만 뜯겼다고 후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뒤늦게 가입비를 돌려받으려고 해도 실제로 환불을 받기는 어렵다는 게 대다수 피해자의 증언이다.

일부 유사투자자문업자는 불공정행위 개연성이 큰 '작업'에 가담할 것을 공공연하게 꾀기도 한다.

비교적 합리적인 종목추천 운영방식을 취해 '정상 업체'라는 인상을 줬던 한 공개 리딩방은 막상 기자가 소수정예반 가입에 관심을 표하자 전화를 걸어와 "미공개 공시정보로 큰 이익을 얻을 기회가 있다.

얼마나 태울 수 있냐"고 물었다.

해당 리딩방은 고액의 가입비를 요구해 추가 취재에는 한계가 있었다.

◇ "수익 지속해 운영자 신뢰하는 게 더 위험"
리딩방을 오래전부터 접했다는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VIP 방에 가입함으로써 자신이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속한다고 믿는다면 이는 순진한 생각"이라고 경고했다.

신뢰가 쌓인 후 추천 종목에 크게 베팅했다가 큰돈을 잃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추천 종목으로 수익을 내 운영자를 신뢰하게 되는 시점부터가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주가조작 형사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유사투자자문업자가 회원들에게 주식종목을 추천하면 회원들의 매수로 주가가 상승한다는 것을 알고 추천 예정인 종목을 미리 매수한 후 가격이 오르면 매도하는 행위를 사기적 부정거래행위로 규정하고 단속하고 있다.

리딩방 운영자의 매매 지시를 단순히 따라만 했다고 하더라도 주가조작 형사 사건에 연루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김은미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전임연구원은 "리딩방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모바일 채널 발달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투자자들이 더욱 몰리는 분위기"라며 "피해가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