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송전탑 꼭대기를 밑에서 쳐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까마득한 높이에 아찔함을 느꼈겠지만, 그 아득한 곳에 사람이 올라가는 상상을 하긴 쉽지 않다.

송전탑은 고압 전선을 걸기 위해 높이 세운 철탑이다.

높을수록 안전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최소한의 높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765kV 고압 송전탑의 경우 최저 지상고가 28m로 철탑의 평균 높이는 100m에 달한다.

송전탑을 유지·보수·관리하는 일은 한국전력의 하청업체가 한다.

송전전기원이라 부르는 이들은 20㎏의 장비를 착용하고 1개에 8㎏이나 되는 애자까지 메고 탑을 오른다.

추락과 감전의 위험이 늘 목덜미를 겨누는 극한직업이다.

철탑에서 일하다 보면 약한 바람만 불어도 진동 때문에 어지럼증에 구토하기도 한다.

밑에 있는 동료가 구토물을 뒤집어쓰는 경우도 있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연출 이태겸)는 극단적인 노동환경에 처한 송전탑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 송전탑 위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와 섬은 전북 군산의 신시도다.

탑 위에서 내려다보는 신시도는 어떨까.

관광을 위한 전망대도 아닌 송전탑 위를 생계를 위해 올라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풍경일까.

발밑에 펼쳐진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광과 상존하는 죽음의 공포가 한 인간의 머릿속을 찰나의 순간에도 번갈아 오갈 것이다.

◇ 죽음보다 두려운 해고
영화의 첫 장면. 책상 위에 작은 스탠드 불이 켜져 있다.

잠시 뒤 불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곧 정전이라도 될 듯이. 깜빡이는 불빛은 왠지 불길하고 불안하다.

회사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받은 권고사직을 거부하던 정은(유다인 분)은 하청업체로 파견을 가면 1년 후 복직시켜주겠다는 제안에 지방으로 향한다.

하청업체는 송전탑을 보수·관리하는 곳이다.

전문적 기술도 없는 여자 직원이 달갑지 않은 현장 소장은 정은을 그만두게 만들라는 원청의 압박에 제대로 된 일거리조차 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1년을 버티고 원청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정은은 고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에 오르는 극한 노동을 자청하고 이를 안쓰럽게 여긴 동료 충식(오정세 분)은 송전탑에 오르는 노하우를 가르쳐 주며 정은을 돕는다.

충식은 정은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두 번 죽는 거 알아요? 한 번은 전기구이, 한 번은 낙하, 34만5천 볼트에 한 방에 가거든요.

근데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워요.

우리가 무서운 건, 해고예요.

"
죽음보다 해고가 더 두렵다는 이 대사가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표현하기 위한 과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바뀌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딱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 충격적이지만, 너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이 순간에도 현장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가 죽음의 위협에도 그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에겐 해고가 죽음보다 더 공포스런 일임을 증명하고 있다.

충식은 정은의 인사고과가 자신을 넘어설 경우 해고의 칼날이 자신을 향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정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한다.

부당한 해고 위협, 원청의 갑질, 성차별, 노동자의 생명을 돈 몇 푼과 맞바꾸려는 대자본의 생리를 뼛속 깊이 체험하며 절망의 시간을 보낸 정은은 섬마을에 전기가 끊긴 어느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선 복구를 위해 혼자 송전탑에 오른다.

그 아득한 꼭대기 위에서 그는 "외다리 지옥길을 걷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고 되뇐다.

◇ '그와 나는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시인 송경동은 'MRI를 찍던 날'에서 현장에서 쓰러져가는 노동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H빔에 발가락 물린 최씨
그라인더에 눈을 간 안씨
제 손을 타공한 김씨
엘리베이터 홀로 골인한 고씨
아시바에서 뒤로 착지한 원씨
장비에 깔려 탕탕탕 세번 바닥을 치다 간 박씨
비 오는 날 용접선에 달라붙은 황씨

수평이 안 맞았군
마감이 허술해
저곳을 보강해줘야 할 텐데
떼먹힌 노임, 망가진 몸보다
제대로 된 일 매듭이 더 눈에 선한

노동자의 마흔
죽음보다 두려운 해고를 피하려는 노동자들이 지금도 하루에 7명씩 사망하는 현실에서 송전탑에 오르지도, 노동 현장에서 해고나 죽음의 공포를 맞닥뜨리지도 않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내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고 탄식하는 것뿐일까.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수전 손택이 오래전 요구했던 성찰,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을 살짝 비틀어 보자.
'안락함을 누리는 우리와 공포 속에 사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안락함이 그들의 공포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이 아마도 작지만 분명한 출발점이 아닐까.

해고가 죽음보다 두려운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을 해고하지 않는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