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예술의전당 듀오 리사이틀 리뷰
서로 다른 개성의 시너지…임동민·임동혁 형제의 호흡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가 최상의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이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최정상의 무대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은 더더욱 희귀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피아니스트 임동민, 임동혁 형제는 우리 클래식계에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고, 두 사람이 함께 무대를 '나눠 쓰는' 첫 듀오 콘서트 또한 흐뭇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듀오 무대는 두 사람이 가꿔온 탁월한 음악성이 펼쳐지는 자리였다.

쇼팽으로 꾸며진 전반부 공연에서는 임동혁이 녹턴 8번과 발라드 1번을, 임동민이 스케르초 1번과 3번을 각각 들려줬다.

형제라고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스타일은 아주 다르다.

임동혁이 마치 음악의 급류에 몸을 맡기고 능수능란하게 흐름과 강도에 변화를 줄 줄 아는 피아니스트라면 임동민은 안정된 호흡을 바탕으로 전체의 구성적 얼개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전하는 연주자다.

그러한 두 사람의 개성은 이번 공연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피아노는 현을 타격해 음을 발생시키지만, 페달링이나 화성의 연쇄 등으로 타격 효과를 은폐하거나 음의 지속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듣는 이에게 청각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악보에 표기된 '객관'의 요소와 더불어 음향적 재현에 뒤따르는 '환상'의 요소가 어떻게 혼합돼 하나의 개성을 이루느냐가 피아노 연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녹턴 8번 내림라장조는 달콤한 애상을 머금은 '노래'가 순간의 격정보다 더 전면에 부각돼 있다.

본래 사랑이나 마적인 판타지를 담아내는 이야기 시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발라드는 자유로운 성격적 기악 작품을 지칭하는데, 쇼팽이 남긴 네 곡 가운데 첫 곡은 가장 서정적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음향과 호흡을 일거에 전환하는 임동혁의 감각적 능력이었다.

소리를 빚어내는 예민함이 돋보이고 언뜻언뜻 즉흥적 감흥이 빛을 발하는 한편, 간혹 저음부의 울림이 선율의 선명성을 뒤덮거나 동형 리듬 진행이 다소 산만하게 처리되는 지점도 있었으나 서정적 순간과 들뜬 판타지의 날 선 대조로 인해 듣는 이를 매혹하는, 흡입력 있는 연주였다.

임동민의 연주는 단단했다.

큰 폭의 움직임, 예상을 뒤엎는 진행과 거기서 발생하는 유희적 느낌이 특징인 스케르초들은 고전적인 형식미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작품들이다.

어쨌든 스케르초란 리듬 본위의 춤곡이므로 동적인 주제의 명료한 터치, 울림의 통제로 인한 움직임의 형상화가 중요하다.

마치 색채를 혼합시키듯 적극적으로 음향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킨 임동혁과 달리 임동민은 한발 물러서서 전체를 넉넉히 장악하는 통제력의 미덕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특히 시종일관 흔들림이 없는 그의 호흡은 쇼팽의 기교적 화려함에 가려지기 쉬운 악구 자체의 매력을 전해줬다.

서로 다른 개성의 시너지…임동민·임동혁 형제의 호흡
공연의 후반부는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피아노 연탄 및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꾸며졌다.

슈베르트의 만년 걸작인 '환상곡'(D 940)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방랑자의 발걸음이 인상적이다.

공포와 광기가 극히 서정적인 선율을 엄습해 청년 예술가의 쓸쓸하고 고독했던 여정을 반추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피아니스트 형제에게 하나의 피아노는 나눠 쓰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다.

전문 피아노 듀오의 연주와 비교했을 때 두 사람은 역시 홀로 하나의 피아노를 책임지는 데 더 익숙했다.

말하자면 협소해진 공간이 그들의 음악적 자유를 다소 침해했던 것일까.

저음 파트의 임동민은 다소 뒤에 물러나 있었고, 임동혁 또한 슈베르트의 서정과 광기 사이의 역동을 충분히 표출하지 못했다.

그들 개개인이 지닌 소리를 창출하는 능력은 여전히 빛났으나 이와 별개로 두 사람의 호흡이 서로를 자극해 작품의 정점과 심연을 연출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형제는 다시 각각 한 대의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다시금 제 호흡을 마음껏 숨 쉰 것 같았다.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은 두 사람의 개성이 훌륭한 시너지를 낸 무대였다.

남성적인 야성과 깨질듯한 예민함을 동시에 지닌 라흐마니노프의 넓은 감성의 폭을 임동민과 임동혁은 훌륭하게 포착했다.

두 피아노 사이의 균형미 또한 탁월했다.

훌륭하나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그들이 얼마나 음악적인지는 드러났으되 작품의 위력이 듣는 이를 압도할 만큼 현현하지는 못했다.

이들 형제가 지금의 반짝임을 넘어서서 보다 깊은 음악의 심연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개개인이 지닌 음악적 탁월함뿐 아니라 다채로운 관계 속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본질적 조화의 감각을 가다듬는다면 이 특별한 형제들은 장차 명실상부한 대가다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