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낸 정재일 "비극적 역사 잊지 않겠다는 다짐 담았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0년 만의 정규앨범 '시편'…"어리석음 되풀이하는 인간에 대해 고민"
'어떤 진실들은 찾아냈을 때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
연극 '그을린 사랑'에 나오는 이 대사는 작곡가 정재일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습관처럼 이 말을 되뇌었고 점차 태도로 배어 나왔다.
진실에 천착하는 그의 태도는 10년 만의 정규앨범인 '시편(psalms)'을 만들게 했다.
'시편'은 정재일이 비극의 역사를 짚어가며 만든 앨범이다.
5·18 민주화운동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시청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의 음악을 재구성해 수록했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정재일은 "거대한 슬픔 앞에서 그리고 끝을 모를 상처 앞에서 조무래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하는 행위, 잊지 않는 행위라고 생각했다"고 앨범 발매 배경을 밝혔다.
그는 지난해에도 미디어 아티스트 장민승과 함께 5·18 50주년 영상 '내 정은 청산이오'를 제작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시편'은 시작됐다.
"처음엔 평범한 시민으로서 무슨 수로 이렇게 무거운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저에게 기억하는 법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했습니다.
목소리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게 됐죠." '내 정은 청산이오'와 '둥글고 둥글게', '시편' 세 작품은 각각 다른 외피를 썼을 뿐 "잊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의 메시지가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시편'에는 구체적인 한국 현대사뿐만 아니라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그런데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탐구가 녹아 있다.
"저 자신의 우둔함과 고통 등에도 집중했어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렸죠. 인간의 비극, 고통, 우둔함은 왜 이다지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
"아주 사적인 기도"를 담고 싶기도 했다는 그는 앨범과 곡 제목을 구약성서 시편에 나오는 구절과 장·절의 숫자를 인용해 지었다.
합창 아카펠라와 구음, 일렉트로닉 음향, 현악 앙상블로 구성된 노래와 연주곡 21트랙을 실었다.
"기도 소리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목소리입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형식을 차용해 라틴어 기도로 음악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구체적인 가사를 전달하기보다는 만트라처럼 계속해서 욀 수 있는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앨범 전반에는 성스러우면서도 웅장한 분위기가 스며 있다.
첫 트랙 '26.9'부터 마지막 트랙 'how frail the sons of man you have created'(당신이 창조한 사람의 아들은 얼마나 나약한가)를 순서대로 눈감고 듣다 보면 천국의 선경이 그려지는 듯하다.
정재일은 특히 시편 89장 48절에 사로잡혔다.
'기억하소서, 제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얼마나 헛되이 창조하셨는지를'이라는 구절에 귀를 기울였고 타이틀곡 중 하나인 'memorare'(기억하소서)와 '89.48Ⅰ', '89.48 Ⅱ' 등을 실었다.
"그 구절에서 '기억하소서'라는 부분이 제 마음에 가장 와닿았습니다.
마치 저 자신에게 말하고 읊어야 하는 진언이 아닐까 생각했죠."
이 밖에도 시편 144장 4절을 인용한 타이틀곡 'his days are like a passing shadow'(그의 날들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다)와 '10.1' 등이 수록됐다.
정재일은 "시간이 되실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들어봐 주신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감정의 흐름을 촘촘히 엮은 만큼 순서대로 듣는 것이 '시편'의 올바른 감상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생충', '옥자' 등 영화를 비롯해 연극, 뮤지컬, 가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을 선보여온 그는 이번 앨범 '시편'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한계를 또 한 번 확장했다.
그런 정재일에게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냐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 좀 없어지면 좋겠는데, 없어질지 잘 모르겠습니다.
겸손하고 평범하지만 따뜻한 '사회구성원'이 되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
'
연극 '그을린 사랑'에 나오는 이 대사는 작곡가 정재일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습관처럼 이 말을 되뇌었고 점차 태도로 배어 나왔다.
진실에 천착하는 그의 태도는 10년 만의 정규앨범인 '시편(psalms)'을 만들게 했다.
'시편'은 정재일이 비극의 역사를 짚어가며 만든 앨범이다.
5·18 민주화운동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시청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의 음악을 재구성해 수록했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정재일은 "거대한 슬픔 앞에서 그리고 끝을 모를 상처 앞에서 조무래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하는 행위, 잊지 않는 행위라고 생각했다"고 앨범 발매 배경을 밝혔다.
그는 지난해에도 미디어 아티스트 장민승과 함께 5·18 50주년 영상 '내 정은 청산이오'를 제작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시편'은 시작됐다.
"처음엔 평범한 시민으로서 무슨 수로 이렇게 무거운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저에게 기억하는 법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했습니다.
목소리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게 됐죠." '내 정은 청산이오'와 '둥글고 둥글게', '시편' 세 작품은 각각 다른 외피를 썼을 뿐 "잊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의 메시지가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시편'에는 구체적인 한국 현대사뿐만 아니라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그런데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탐구가 녹아 있다.
"저 자신의 우둔함과 고통 등에도 집중했어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렸죠. 인간의 비극, 고통, 우둔함은 왜 이다지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
"아주 사적인 기도"를 담고 싶기도 했다는 그는 앨범과 곡 제목을 구약성서 시편에 나오는 구절과 장·절의 숫자를 인용해 지었다.
합창 아카펠라와 구음, 일렉트로닉 음향, 현악 앙상블로 구성된 노래와 연주곡 21트랙을 실었다.
"기도 소리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목소리입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형식을 차용해 라틴어 기도로 음악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구체적인 가사를 전달하기보다는 만트라처럼 계속해서 욀 수 있는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앨범 전반에는 성스러우면서도 웅장한 분위기가 스며 있다.
첫 트랙 '26.9'부터 마지막 트랙 'how frail the sons of man you have created'(당신이 창조한 사람의 아들은 얼마나 나약한가)를 순서대로 눈감고 듣다 보면 천국의 선경이 그려지는 듯하다.
정재일은 특히 시편 89장 48절에 사로잡혔다.
'기억하소서, 제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얼마나 헛되이 창조하셨는지를'이라는 구절에 귀를 기울였고 타이틀곡 중 하나인 'memorare'(기억하소서)와 '89.48Ⅰ', '89.48 Ⅱ' 등을 실었다.
"그 구절에서 '기억하소서'라는 부분이 제 마음에 가장 와닿았습니다.
마치 저 자신에게 말하고 읊어야 하는 진언이 아닐까 생각했죠."
이 밖에도 시편 144장 4절을 인용한 타이틀곡 'his days are like a passing shadow'(그의 날들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다)와 '10.1' 등이 수록됐다.
정재일은 "시간이 되실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들어봐 주신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감정의 흐름을 촘촘히 엮은 만큼 순서대로 듣는 것이 '시편'의 올바른 감상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생충', '옥자' 등 영화를 비롯해 연극, 뮤지컬, 가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을 선보여온 그는 이번 앨범 '시편'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한계를 또 한 번 확장했다.
그런 정재일에게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냐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 좀 없어지면 좋겠는데, 없어질지 잘 모르겠습니다.
겸손하고 평범하지만 따뜻한 '사회구성원'이 되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