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부장관은 이날 서울 신문로2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미국과 북한이 결국에는 진지한 외교에 동참하기를 희망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비건 부장관은 “진지한 외교는 지속적인 관여와 어려운 교환이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보상도 있을 것”이라며 “양국 정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 간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에 대해 나눈 비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며 “북한과의 과제를 푸는데 있어서 외교가 가장 좋은 방법임은 물론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년 간의 비핵화 협상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데에 대해서는 북한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비건 부장관은 “북한은 지난 2년 간 많은 기회를 낭비해왔다”며 “협상 기회를 잡기보다는 협상의 장애물만을 찾는데에 헌신했다”고 대화에 응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를 비판했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성과가 없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협상 실무단이 확실한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비건 부장관은 “북한 협상 상대는 비핵화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지 못한 상태였다”며 “정상 간 협의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정상들이 동의할 수 있는 진전방안을 실무진이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김정은에 의한 ‘톱다운’ 방식의 담판만을 고집해 정상회담 전 사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 안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도 실무 협상단의 권한 위임 부족 문제로 바라봤다. 비건 부장관은 “영변은 완전한 비핵화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라며 “실무 협상팀이 정상회담 전 주에 도착했을 때 그런 것에 대해 논의할 권한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계속해서 실무 협상단 급에서 논의하지 않는한, 지도자들은 이것이 뭘 의미하는 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는한 합의가 어렵다”며 “미국은 그렇게 준비돼있고 앞으로도 준비돼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지금이 미·북 간 외교채널 복원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는 다음달 북한 8차 노동당 대회를 비롯해 핵심적인 행사들이 있을 것”이라며 “북한이 지금부터 그때까지의 시간을 활용해 외교 재개의 길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다음달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조 바이든 차기 미 행정부의 전향적 대북 정책 설정을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무력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한편 비건 부장관은 한·미 동맹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크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나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 등의 문제에 있어 “지도자들이 미래 지향적인 동맹의 목적에 대해 충분한 목적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대폭 감축이라는 카드를 두고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주장해온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한반도 상황은 70년간 바뀌어왔고 동맹도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2년 반 동안 북한특별대표를 지내며 대북 정책을 총괄해온 비건 부장관은 곧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과감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북 관계 전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궁극적으로는 북한과의 경제협력까지 모두 가능하다”며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의 로드맵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여러 포인트 중 내가 새로운 (바이든) 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전쟁과 갈등의 시간은 끝났고 평화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것”이라며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북·미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