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관점으로 제3세계 경제발전 현장을 연구한 개발경제학자이자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거대 기획'에 도전하며 실현 가능한 개혁을 추구한 경제사상가.
앨버트 O. 허시먼(1915∼2012)은 이렇게 요약된다.
제러미 애덜먼 프린스턴대학교 역사학 교수가 독일 태생의 유대인 경제학자 허시먼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앨버트 허시먼'(부키)이 번역 출간됐다.
미국에서 2013년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Worldly Philosopher: The Odyssey of Albert O. Hirschman'으로 '세속의(worldly) 사상가'로 허시먼을 조명한다.
또한, 독일 사회민주당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며 베를린대학에 입학했다가 1933년 나치 집권에 독일을 탈출해 파리와 런던에서 대학을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반파시즘 운동 가담, 프랑스군 입대, 미국 피신 후 미군으로 세계 2차대전 참전 등 오디세이아를 연상케 하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간다.
저자는 허시먼의 세속적인 측면을 '세계를 아우르는(of the world)', '세상에 대한(about the world)', '세계 속으로(to the world)' 등 세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허시먼은 독특할 정도로 세계를 아우르는 인물이었다.
그는 유럽과 미국, 남미를 넘나들며 생활하고 연구했고 전 지구적인 사건들을 직접 겪고 관찰했다.
허시먼은 세상에 대한 사상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경제와 철학, 문학, 정치 분야에서 제시한 통찰은 상아탑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 경제학계가 배타적으로 전문화되는 추세를 우려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무엇보다 그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변화에 기여하는 학문을 하고자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헤겔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들과 대비되는 '실천적 관념론' 또는 '실용적 이상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52∼1956년 세계은행이 콜롬비아 정부에 파견한 경제 자문관으로 일했다.
당시는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에는 개발의 물결이 몰아치던 시대이기도 했다.
서방 세력은 대규모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자본을 쏟아부었고, 공산주의 혁명의 불씨는 현지에서 지펴지고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의 확신에 회의적이었던 만큼이나 계획 경제를 지향하는 공산주의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개발 계획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서방의 비전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은행 전문가들이 만든 개발 계획에 맞선 것에 대해 계획이란 외국인 전문가들이 인상적인 통계수치들로 만드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었을 뿐, 정작 그것을 실행하고 관리해야 할 콜롬비아 현지 사람들이 가진 지식은 부차적이거나 비과학적이거나 혹은 아예 그보다도 못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지인들은 변화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반발한 것이다.
허시먼은 콜롬비아와 콜롬비아 사람들이 그저 전통의 관습에 빠진 채 무기력하게 원조나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봤다.
그는 저개발사회에서 희소한 것은 자본이나 중산층, 기업가 정신 등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기량, 즉 '개발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개혁이란 '변화를 강제하고 추동해낼 수 있는 긴장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본 허시먼은 경제개발은 외부에서 부과되거나 도입되는 것도 아니고, 구세주가 나타나 특별하고 신비로운 힘을 내놓음으로써 이뤄 주는 것도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개혁의 과정에는 현지인들과의 불안정한 연합, 현지인들이 알고 있는 기민하고 복잡한 전술이 필요하다고 본 허시먼은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는 대신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실행 과정의 모든 측면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려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허시먼은 말년에 하버드대학을 비롯해 수많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등 명예를 누렸지만, 노벨경제학상은 받지 못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실천적 관심에서 촉발된 사유의 실마리를 좇아 거대 이론의 맹점을 파고들었을 뿐, 자신만의 학파를 형성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또 갈수록 수학적 분석으로 경도되는 경제학계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경제학의 협소한 영역에 갇히지 않고 학문 간 경계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전문기업 한섬은 대표 브랜드 '타임(TIME)'이 국내 기성복 브랜드 중 처음으로 여성 파리패션위크 공식 캘린더에 등재됐다고 11일 밝혔다.타임은 2026 가을·겨울(F/W) 여성 파리패션위크 공식 캘린더에 등재돼 지난 9일(현지 시간) 프랑스 문화의 상징인 리슐리외 국립 도서관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타임은 한섬이 1993년 론칭한 여성복 브랜드로, 국내 기성복 브랜드가 여성 파리패션위크의 공식 캘린더에 등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파리패션위크는 런던·밀라노·뉴욕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글로벌 4대 패션위크 중 하나다. 남성, 오뜨쿠뛰르(고급 맞춤복), 여성 세 분야로 나눠 진행되며 여성 파리패션위크는 세계 수십만 개의 브랜드 중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만 공식 캘린더에 이름을 올리는 '메인 이벤트'로 알려져 있다. 한섬 관계자는 "파리패션위크를 주관하는 프랑스 패션협회(FHCM)는 공식 캘린더에 등재될 브랜드를 심사하는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여성 파리패션위크 공식 캘린더에 타임이 등재된 건, 한국형 럭셔리 패션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한섬이 프랑스 리슐리외 국립 도서관에서 진행한 2026년 가을겨울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시간의 레이어' 콘셉트로 디자인된 의류와 잡화 200여 종이 선보여졌다. 트렌치코트와 코트 등은 각기 다른 소재를 덧대 볼륨을 살리고, 소재와 질감을 대비시키는 등 디테일을 표현했다.한섬은 이번 등재에 대해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으로 인수된 뒤 글로벌 브랜드화를 추진한 게 성과로 이
"아빠는 개 싫어한다."우리 아빠도 그랬다. 현재 내 반려견인 김정원을 임시 보호하던 시절, 아니 그전에 다른 강아지를 임시 보호할 때도 아빠는 내가 개를 입양하지 않길 바랐다. 개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생명을 책임지는 무게를 걱정했다. 평생 직장인으로 살아온 아빠는 프리랜서 작가의 삶을 든든해하면서도 늘 걱정했다.방송 일은 너무 바빠 보여 걱정이었고, 기고하는 일은 수입이 적어 걱정이었으리라. 그저 제 한 몸 밥이나 잘 먹고 잘 잤으면 하는 마음, 제 한 몸도 못 챙기는 것 같아 피어나는 조바심 속에서 강아지 하나가 더 들어오는 일을 아빠가 찬성할 리는 없었다.김정원을 입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는데, 차 한 대가 속도를 천천히 줄이더니 이내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민지야!"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반가워서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는 뒤에 따라오는 차가 있어 오래 대화할 수 없다는 걸 눈치채고는 소리쳤다. "애 단단히 입혀서 다녀라!"겨울이었지만 내 강아지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얘가 입은 패딩이 내가 입은 것보다 비싼데…' 말하려는 순간 아빠는 창문을 닫고 주차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는 정원이가 패딩을 입어도 안타까워하고, 우리 밥 먹는 시간에 김정원 밥을 동시에 안 준다고 안타까워하고, 웅크리고 잔다고 안타까워하고, 집 안에서 배변을 못 한다고 안타까워한다.그 때문에 산책 여러 번 나가는 날 걱정하는 척하다가도, TV나 보면서 좀 쉬려고 하면 꼭 한마디 한다. "정원이 데리고 나갈 때 안 됐냐?" 좀 전에 갔다 왔다고 하면 덧붙인다. "말을 못 하니 얼마나 불쌍해?" 아빠,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는 르네상스 이후 예술 분야의 최대 혁신이 될 겁니다.”2021년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 같은 NFT 찬양이 쏟아졌다. NFT란 디지털 파일에 ‘원본 증명서’를 붙여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 기존 디지털 예술 작품은 실물이 없는 그림 파일이나 영상 데이터에 불과했지만, NFT를 사용하면 이런 작품도 명화(名畵)처럼 거액에 사고팔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기성 미술계도 이에 적극 호응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글로벌 유력 경매사들은 NFT 경매를 신설했다. 중견 작가들은 너나할 것 없이 NFT 작품을 출시했다. “뭔가 수상하다”는 비판은 작품이 수억원에 팔렸다는 뉴스들에 묻혔다.5년이 흐른 지금, 대부분의 NFT는 휴짓조각만도 못한 신세가 됐다. 국내 최대 NFT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 NFT에서 수천만원에 거래되던 작품들은 이제 10만원에 내놔도 사려는 이가 없다. 카카오 계열사에 소속돼 있던 거래 플랫폼 ‘클립 드롭스’는 한 중소기업에 인수됐다가 문을 닫았고, 이곳에서 구매한 NFT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해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NFT 가격과 거래량 등으로 산출하는 ‘크립토슬램 500 NFT 지수’는 2022년 고점 이후 99% 하락했다. 지난달 문을 닫은 ‘니프티 게이트웨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대형 NFT 거래소가 서비스를 종료한 상태다.“NFT 95%는 사망”아이디어 자체는 좋았다. 디지털 작품은 파일만 복사하면 원본과 동일한 결과물이 나온다. 원본을 무한 복제할 수 있으니 가치를 평가받기도, 거래하기도 어려웠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사진작가들은 이 문제를 ‘에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