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과 하와이, 독일 베를린, 태국 등 수많은 세계 영화제 시상식에 섰지만 한국에서 언젠가 꼭 한번은 상을 받고 싶었어요.

제 이름이 불릴 때 고려인 4세로서 모국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시간에 응답이 온 거라는 감격이 몰려왔죠."
박루슬란(40) 감독은 지난달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영화 '쓰리'로 뉴 커런츠 상을 받았다.

BIFF 최초의 고려인 출신 수상자라는 기록과 함께 박 감독의 영화 인생 20년 만에 처음으로 모국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뉴 커런츠 상은 아시아의 재능 있는 신인 감독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취지로 제정됐다.

그는 1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다른 동포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힘을 준 소식이 된 것 같아 더 기쁘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 고려인 첫 수상 감독 "모국서 인정받아 기뻐요"
40여년 전 옛 소련은 한 연쇄살인범으로 떠들썩했다.

좀처럼 잡히지도 않았을 뿐더러 범죄 수법도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오랜 추적 끝에 범인을 검거한 형사는 해고됐다.

흉악범죄 발생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국가는 그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현재 감옥이 아닌 병원에서 살고 있다.

영화 '쓰리'의 줄거리이자 모티브가 됐던 실제 사건이다.

박 감독은 "이 같은 비극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며 "다시는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사건을 재구성했다는 점과 스토리 등을 이유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연상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쓰리는 한국과 카자흐스탄 합작품이다.

양국 스태프가 카자흐스탄을 배경으로 합심해 두 나라를 오가며 1년간 촬영했다.

한국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2001년부터 인연이 있는 국내 촬영진을 중심으로 제작팀을 꾸렸다.

여기에 카자흐스탄 촬영과 현지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해외 스태프를 섭외했다.

그는 "앞으로도 양국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고생을 참 많이 했는데 수상하게 돼 다행"이라며 "상을 받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인정을 받았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차기작을 자신있게 찍을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수상 당시 한국 영화계에 발을 디뎠던 20여년 전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 나라는 참 밝구나, 여기서 살면 어떨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싹틔웠던 시절이다.

"서울 거리의 조명보다 더 눈부시게 느껴졌던 것은 내 또래의 한국 청년들이었어요.

꿈을 품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그 모습이 참 부러웠거든요.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이후 나라가 없어졌다는 상실감 탓에 어두웠던 당시 분위기와 한국이 극명히 대비됐어요.

마치 무성 흑백 영화와 총천연색의 영화처럼요.

"
그는 "나를 품던 따뜻했던 세상이 멈춰버린 느낌이었다"며 "당시 소련의 수많은 젊은이가 미래의 상실감이 컸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2006년에는 본격적인 영화 공부를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고 2012년 데뷔작인 '하나안'으로 국내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고려인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만들어 왔다.

부산영화제 고려인 첫 수상 감독 "모국서 인정받아 기뻐요"
그는 "영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라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웃었다.

영화 '쓰리' 개봉일은 미정이며, 시사회는 19일 서울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