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서 '악' 처방한 약사…망설임도 불편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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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포즈너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번역 출간
"아우슈비츠에서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약사로서 제 능력 안에서 상황이 허락하는 한 제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떠한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무죄를 선고해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
1965년 8월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법정에 선 루마니아 출신 빅토르 카페시우스(1907~1985)는 마지막 변론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20개월간 진행된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죄를 주장했다.
2주 뒤 1심 재판 주임 판사인 한스 호프마이어는 카페시우스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호프마이어는 그가 최소 8천명의 동료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며 살인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는 원래 1947년에도 나치 장교 복무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때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잔혹한 행위가 드러나기 전이었다.
이후 독일 검찰의 재수사로 기소돼 뒤늦게 죗값을 치렀다.
영국의 논픽션 작가 퍼트리샤 포즈너는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북트리거)에서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 카페시우스가 나치 장교가 되는 과정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임 약사로서 행한 잔혹한 일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추적한다.
카페시우스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약대를 졸업한 약사이자 독일의 화학 회사 이게파르벤의 자회사인 바이엘 영업 사원이었다.
루마니아에서는 유대인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내곤 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에서는 이송돼 온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냈다.
독가스 '치클론 베'를 지키는 일을 했고, 임산부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돕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 망설임이나 불편함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사람 좋은' 영업 사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카페시우스가 어떻게 아우슈비츠에서 끔찍한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를 수 있었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의 행적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떠올린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다며 주장하며 사용한 '악의 평범성' 개념을 인용한 것이다.
책은 카페시우스라는 한 개인의 타락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한 명의 약사가 원하는 대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시스템, 즉 아우슈비스 수용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살핀다.
저자는 나치가 유대인 격리 수감 용도뿐만 아니라 전쟁에 쓸 군수물자를 원활히 생산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용소를 건설했다고 설명한다.
이게파르벤이 나치와 손을 잡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추가로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아스피린'과 '비판텐'으로 유명한 바이엘의 전신이 이게파르벤임을 강조한다.
수년간 수집한 자료와 기록을 토대로 히틀러와 이게파르벤이 어떤 거래를 했으며 이것이 역사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도 서술한다.
아우슈비츠의 생체실험은 오직 이게파르벤의 이익을 위해서였는데, 이게파르벤이 신약의 효과를 검증하고자 수감자에게 의약품을 투약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생체실험의 주도권은 나치 친위대가 아니라 이게파르벤이 쥐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바이엘이 수면제 신약 임상 시험에 참여할 여자 수감자 150명의 가격을 놓고 아우슈비츠 소장과 흥정을 벌인 사례도 소개한다.
나치 친위대는 수감자 1명당 200라이히스마르크(약 80달러)를 요구했고 바이엘이 불평하자 170라이히스마르크로 가격을 낮춰줬다고 설명한다.
몇 주 뒤 한 바이엘 임원은 나치 친위대 측에 '실험 완료. 전원 사망. 곧 신규 주문 발주 예정'이라고 보고하기도 한다.
책은 종전 이후 독일에서 악을 스스럼없이 자행한 이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올리는 과정도 보여준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이었다고 알려졌지만, 재판 진행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김지연 옮김. 388쪽. 1만7천원. /연합뉴스
"아우슈비츠에서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약사로서 제 능력 안에서 상황이 허락하는 한 제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떠한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무죄를 선고해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
1965년 8월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법정에 선 루마니아 출신 빅토르 카페시우스(1907~1985)는 마지막 변론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20개월간 진행된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죄를 주장했다.
2주 뒤 1심 재판 주임 판사인 한스 호프마이어는 카페시우스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호프마이어는 그가 최소 8천명의 동료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며 살인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는 원래 1947년에도 나치 장교 복무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때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잔혹한 행위가 드러나기 전이었다.
이후 독일 검찰의 재수사로 기소돼 뒤늦게 죗값을 치렀다.
영국의 논픽션 작가 퍼트리샤 포즈너는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북트리거)에서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 카페시우스가 나치 장교가 되는 과정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임 약사로서 행한 잔혹한 일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추적한다.
카페시우스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약대를 졸업한 약사이자 독일의 화학 회사 이게파르벤의 자회사인 바이엘 영업 사원이었다.
루마니아에서는 유대인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내곤 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에서는 이송돼 온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냈다.
독가스 '치클론 베'를 지키는 일을 했고, 임산부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돕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 망설임이나 불편함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사람 좋은' 영업 사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카페시우스가 어떻게 아우슈비츠에서 끔찍한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를 수 있었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의 행적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떠올린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다며 주장하며 사용한 '악의 평범성' 개념을 인용한 것이다.
책은 카페시우스라는 한 개인의 타락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한 명의 약사가 원하는 대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시스템, 즉 아우슈비스 수용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살핀다.
저자는 나치가 유대인 격리 수감 용도뿐만 아니라 전쟁에 쓸 군수물자를 원활히 생산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용소를 건설했다고 설명한다.
이게파르벤이 나치와 손을 잡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추가로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아스피린'과 '비판텐'으로 유명한 바이엘의 전신이 이게파르벤임을 강조한다.
수년간 수집한 자료와 기록을 토대로 히틀러와 이게파르벤이 어떤 거래를 했으며 이것이 역사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도 서술한다.
아우슈비츠의 생체실험은 오직 이게파르벤의 이익을 위해서였는데, 이게파르벤이 신약의 효과를 검증하고자 수감자에게 의약품을 투약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생체실험의 주도권은 나치 친위대가 아니라 이게파르벤이 쥐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바이엘이 수면제 신약 임상 시험에 참여할 여자 수감자 150명의 가격을 놓고 아우슈비츠 소장과 흥정을 벌인 사례도 소개한다.
나치 친위대는 수감자 1명당 200라이히스마르크(약 80달러)를 요구했고 바이엘이 불평하자 170라이히스마르크로 가격을 낮춰줬다고 설명한다.
몇 주 뒤 한 바이엘 임원은 나치 친위대 측에 '실험 완료. 전원 사망. 곧 신규 주문 발주 예정'이라고 보고하기도 한다.
책은 종전 이후 독일에서 악을 스스럼없이 자행한 이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올리는 과정도 보여준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이었다고 알려졌지만, 재판 진행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김지연 옮김. 388쪽. 1만7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