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중학교 - 임승유(1973~)
중학교를 지나갔다. 모르는 중학교다.
아는 중학교 앞으로는 개울이 흘렀다.
밤에도 흘렀다. 뒤로는 산이 있었다.
시커멓고 커다랗게 있다가 내려오면
화단이 있었다. 화단 옆에 가사실이 있었다.
낮에는 미트볼을 해 먹었고 밤에는 해 먹은 적 없다.
중학교를 지나갔다.

시집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中

졸업을 한 이후에 학교 앞을 우연히 지나가본 적이 있나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학교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많이 변한 것도 같고 그대로인 것도 같아서 모르는 중학교처럼 낯설게 여겨질 때가 있지요. 그럴수록 나의 유년 시절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저에게 학교는 칼을 처음으로 잡아본 곳이에요. 아무도, 아무것도 다치지 않게 칼 잡는 법에 대해 골몰하며 가을무를 서걱서걱 써는 계절입니다.

이서하 시인(2016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