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박용택…'우승택' 못 이루고 19년·6천778일 현역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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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PO 2차전 8회 대타로 나선 마지막 타석서 파울플라이 아웃
통산 최다 경기 출장·최초 2천500안타 뒤로 하고 인생 2막 준비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간판타자 박용택(41)이 끝내 '우승택'이라는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20년 11월 5일 도전을 접었다.
박용택은 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 벌인 준플레이오프(준PO·3전 2승제) 2차전에서 7-8로 추격하던 8회말 무사 1루에서 유강남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벼랑 끝 몰린 팀을 구하기 위해 안타 한 방이 절실했던 순간, 박용택은 두산 우완 구원 투수 이영하의 초구 높은 직구에 배트를 내밀었다가 3루수 파울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났다.
두산 3루수 허경민이 무서운 집중력으로 불펜 근처까지 뛰어가 타구를 낚아챘다.
LG가 9회 추가점을 내주고 7-9로 패해 시리즈 전적 2패로 탈락하면서 박용택의 현역 인생도 막을 내렸다.
2002년 4월 16일 인천 문학구장(현 SK행복드림구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프로 첫 경기에 출장한 이래 한국시리즈 우승만을 위해 달려온 장기 레이스를 만 19시즌, 날짜로는 6천778일 만에 끝냈다.
안방인 잠실구장에서 홈팬들이 보는 앞에서 프로에서의 마지막 타석을 장식한 건 박용택에겐 행운이었다.
박용택은 LG와 자유계약선수(FA)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올 시즌 후 은퇴를 예고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식장이 은퇴 무대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로 2년을 버텼다.
그러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LG의 전력으로는 '가을 두산'을 넘어서기 어려웠다.
박용택은 역시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김태균(38·전 한화 이글스)만큼이나 별명 부자였다.
'김도망', '김출루' 등 다양한 애칭을 종합한 '김별명'으로 불린 김태균처럼 박용택도 '눈물택', '용암택' 등 상황에 따른 다채로운 닉네임으로 사랑을 받았다.
우승 반지를 못 끼고 아쉽게 현역 무대를 떠난 점도 둘의 공통점이다.
박용택은 LG의 암흑기를 지탱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20년 가까이 박용택이 쌍둥이 유니폼을 입은 동안 김성근, 이광환, 이순철, 양승호(대행), 김재박, 박종훈, 김기태, 양상문, 그리고 류중일 등 감독 대행을 포함해 9명의 감독이 LG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만큼 LG 야구는 오랜 기간 안 풀렸고, 한국시리즈에서 또 뛰고 싶은 박용택의 바람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박용택은 신인이던 2002년 딱 한 번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다.
LG를 한국시리즈로 끌어올린 이가 박용택이었다.
KIA 타이거즈와 벌인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350에 홈런 2방, 4타점을 올려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그해 19승을 거둬 다니엘 리오스와 더불어 KIA의 원 투 펀치로 맹활약한 마크 키퍼의 공을 기가 막히게 잘 때렸다.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박용택은 1회와 6회 솔로포 두 방을 터뜨려 팀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새내기 박용택은 "키퍼의 공이 스윙에 딱딱 맞는다"며 밝게 웃었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4패로 밀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우승컵을 내준 박용택은 훗날 기쁨의 샴페인을 기대했다.
LG는 그로부터 11년 후인 2013년을 시작으로 2014년, 2016년 세 번 한국시리즈 직전 관문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그때마다 두산, 히어로즈, NC 다이노스의 벽을 넘지 못해 주저앉았다.
박용택도 더는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02년의 활약을 떠올리기엔 너무나 아득한 세월이었다.
박용택은 호타준족의 대명사였다.
2005년 43번이나 베이스를 훔치는 등 정규시즌 통산 도루 313개를 남겼다.
통산 타율은 역대 16위인 0.308이다.
2004년 처음으로 시즌 타율 0.300을 달성한 이래 3할만 11번을 쳤다.
타순표를 새로 쓰고 찢기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웠다던 김성근 전 감독만큼이나 박용택도 타격을 매일 고민했다.
스윙과 타구에 만족할 때까지 밤낮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망이를 돌렸다.
그 결과 타자 통산 최다 경기(2천236경기), 최다 안타(2천504개), 역대 2루타 3위(441개)의 금자탑을 쌓았다.
잘생긴 얼굴과 모델 뺨치는 몸매를 소유한 박용택은 한때 오프 시즌엔 패션 공부에도 열성이었다.
선수로 30년 이상 뛴 1막을 막 마친 박용택은 은퇴 후엔 미국, 일본에서 선진 야구 연수를 희망한다.
이론과 실력을 겸비한 지도자로 현장에 돌아오기 위해서다.
/연합뉴스
통산 최다 경기 출장·최초 2천500안타 뒤로 하고 인생 2막 준비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간판타자 박용택(41)이 끝내 '우승택'이라는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20년 11월 5일 도전을 접었다.
박용택은 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 벌인 준플레이오프(준PO·3전 2승제) 2차전에서 7-8로 추격하던 8회말 무사 1루에서 유강남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벼랑 끝 몰린 팀을 구하기 위해 안타 한 방이 절실했던 순간, 박용택은 두산 우완 구원 투수 이영하의 초구 높은 직구에 배트를 내밀었다가 3루수 파울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났다.
두산 3루수 허경민이 무서운 집중력으로 불펜 근처까지 뛰어가 타구를 낚아챘다.
LG가 9회 추가점을 내주고 7-9로 패해 시리즈 전적 2패로 탈락하면서 박용택의 현역 인생도 막을 내렸다.
2002년 4월 16일 인천 문학구장(현 SK행복드림구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프로 첫 경기에 출장한 이래 한국시리즈 우승만을 위해 달려온 장기 레이스를 만 19시즌, 날짜로는 6천778일 만에 끝냈다.
안방인 잠실구장에서 홈팬들이 보는 앞에서 프로에서의 마지막 타석을 장식한 건 박용택에겐 행운이었다.
박용택은 LG와 자유계약선수(FA)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올 시즌 후 은퇴를 예고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식장이 은퇴 무대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로 2년을 버텼다.
그러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LG의 전력으로는 '가을 두산'을 넘어서기 어려웠다.
박용택은 역시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김태균(38·전 한화 이글스)만큼이나 별명 부자였다.
'김도망', '김출루' 등 다양한 애칭을 종합한 '김별명'으로 불린 김태균처럼 박용택도 '눈물택', '용암택' 등 상황에 따른 다채로운 닉네임으로 사랑을 받았다.
우승 반지를 못 끼고 아쉽게 현역 무대를 떠난 점도 둘의 공통점이다.
박용택은 LG의 암흑기를 지탱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20년 가까이 박용택이 쌍둥이 유니폼을 입은 동안 김성근, 이광환, 이순철, 양승호(대행), 김재박, 박종훈, 김기태, 양상문, 그리고 류중일 등 감독 대행을 포함해 9명의 감독이 LG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만큼 LG 야구는 오랜 기간 안 풀렸고, 한국시리즈에서 또 뛰고 싶은 박용택의 바람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박용택은 신인이던 2002년 딱 한 번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다.
LG를 한국시리즈로 끌어올린 이가 박용택이었다.
KIA 타이거즈와 벌인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350에 홈런 2방, 4타점을 올려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그해 19승을 거둬 다니엘 리오스와 더불어 KIA의 원 투 펀치로 맹활약한 마크 키퍼의 공을 기가 막히게 잘 때렸다.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박용택은 1회와 6회 솔로포 두 방을 터뜨려 팀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새내기 박용택은 "키퍼의 공이 스윙에 딱딱 맞는다"며 밝게 웃었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4패로 밀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우승컵을 내준 박용택은 훗날 기쁨의 샴페인을 기대했다.
LG는 그로부터 11년 후인 2013년을 시작으로 2014년, 2016년 세 번 한국시리즈 직전 관문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그때마다 두산, 히어로즈, NC 다이노스의 벽을 넘지 못해 주저앉았다.
박용택도 더는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02년의 활약을 떠올리기엔 너무나 아득한 세월이었다.
박용택은 호타준족의 대명사였다.
2005년 43번이나 베이스를 훔치는 등 정규시즌 통산 도루 313개를 남겼다.
통산 타율은 역대 16위인 0.308이다.
2004년 처음으로 시즌 타율 0.300을 달성한 이래 3할만 11번을 쳤다.
타순표를 새로 쓰고 찢기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웠다던 김성근 전 감독만큼이나 박용택도 타격을 매일 고민했다.
스윙과 타구에 만족할 때까지 밤낮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망이를 돌렸다.
그 결과 타자 통산 최다 경기(2천236경기), 최다 안타(2천504개), 역대 2루타 3위(441개)의 금자탑을 쌓았다.
잘생긴 얼굴과 모델 뺨치는 몸매를 소유한 박용택은 한때 오프 시즌엔 패션 공부에도 열성이었다.
선수로 30년 이상 뛴 1막을 막 마친 박용택은 은퇴 후엔 미국, 일본에서 선진 야구 연수를 희망한다.
이론과 실력을 겸비한 지도자로 현장에 돌아오기 위해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