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기금을 모금한다. 많은 곳은 기금이 수천억원에 달한다. 이 돈은 대부분 교수들과 회계팀 직원이 운용한다. 투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선택지는 가장 안전한 은행 예·적금, 국공채 정도밖에 없다. 애초에 기금 운용을 통한 수익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와중에 초저금리 시대가 왔다. 적은 이자도 못 받게 되자 대학들은 고민에 빠졌다. 일부 대학들이 찾은 답은 외부위탁운용(OCIO)이다.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아웃소싱한다는 뜻이다. 작년 서울대에 이어 올해 이화여대가 학교기금 운용을 OCIO에 맡겼다.

대학뿐 아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지난달 내일채움공제사업에 필요한 ‘성과보상기금’을 운용할 OCIO 기관을 선정했다. 1조3000억원의 기금을 운용할 회사로 NH투자증권이 우선협상 대상자가 됐다. 이 기관 선정에는 6개 증권사와 5개 자산운용사가 제안서를 낼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기금 운용 외주화하는 기관들

OCIO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시장 규모는 100조원에 달한다. 주택도시기금, 산재보험기금 등 정부 기금뿐만 아니라 준공공기관과 일반 기업, 대학 등이 자금운용 아웃소싱에 나섰다.

이들이 자금을 외부에 맡기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저금리다. 은행에 넣어두면 수익을 거의 기대할 수 없어졌다. 내부에서 투자할 수도 있지만 상품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전문가들의 역량이 필요해진 것도 이 시장이 커지는 배경이다. 지난해에는 강원랜드 금융투자협회 서울대 등이, 올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화여대 등이 OCIO 기관을 선정했다.

기금 수익률도 안정적이다. OCIO를 도입하고 있는 정부 기금 중 주택도시기금, 산재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의 지난해 수익률은 각각 6.06%, 7.58%, 7.06%를 기록했다.

맞춤형 분산투자 로드맵 제시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비결은 기금 특성에 맞춘 국가별·자산별 분산 투자와 장기 투자라고 운용사들은 설명한다. 자금을 맡긴 기관이나 대학이 과거 기금 사용 내역과 앞으로의 사업 계획서를 주면 운용회사는 기금 성격에 맞는 맞춤형 기대수익률을 제시하고 여기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짜 준다. 기관들 중에는 ‘주식은 위험하다’는 편견 때문에 아예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편견을 깨고 기금의 특성에 맞는 글로벌 분산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 OCIO의 역할이다. 하형석 삼성자산운용 기금사업부문장은 “아직 규모가 크지 않은 민간 OCIO 자금을 글로벌 시장에 분산투자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통해 장기투자할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기금은 공공성도 중요하다. 권순호 NH투자증권 기관영업본부장은 “국민 세금이 들어간 ‘국부(國富)’인 만큼 벤치마크를 넘어서는 자금 운용을 하는 것이 기금 OCIO의 핵심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대학·공공기관도 "기금 굴려달라"…OCIO 시장 급성장

운용보수는 0.03~0.04%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OCIO의 평균 운용 보수는 3~4bp(0.03~0.04%)에 불과하다. 인건비 빼면 남는 게 없는 장사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증권사와 운용사들은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기금형 퇴직연금’이라는 엄청난 시장이 열릴 것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규모는 220조원 수준이다. 이 중 138조원이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에 들어 있다. DB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연 1%대 수준이다.

DB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노사가 퇴직연금을 담당할 수탁법인(기금)을 설립해 기금의 의사결정에 따라 연금이 운용되는 구조다.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들이 연합해 퇴직연금을 공동 운용해 국민연금처럼 ‘규모의 경제’ 효과도 볼 수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이 기금을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위탁운용하게 된다. 수백조원의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OCIO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선 것은 지금 쌓은 트랙레코드를 기반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연/최예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