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노출 피하고 사생활 보호에 유의해야

이래저래 어수선한 2020년 여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가운데 그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하는 수도권 전공의들의 진료 거부사태가 장기화하고 정부와 의사단체의 강대강(强對强) 대치가 이어졌다.

기나긴 장마 속에 수해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강풍을 동반한 제8, 9, 10호 태풍 '바비'와 '마이삭', '하이선'이 한반도를 덮쳤다.

[신문 속 사진 읽기] 보도사진, 그 민감함에 대하여
이쯤 되면 '2020년 여름 한국 사회' 앞에는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할 것 같다.

그 '역대급' 현장에는 사진기자를 포함한 기자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겹게 현장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이다.

코로나19 전국 재확산의 진원지가 된 8·15 광화문 집회 현장과 전공의 파업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환자와 그 가족을 지켜보아야 할 대형병원 로비가 그랬다.

무너져 내린 산과 집, 소실된 강둑 등 처참한 재해 현장과 비바람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장 상황은 사진과 글, 영상뉴스로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렇게 전달된 뉴스는 예상되는 피해를 줄이기도 하고, 여론으로 피드백되어 재난을 극복해 나가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여기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강한 비바람에 힘겨워하는 모습의 사진이 있다.

불특정 시민들이기에 그들의 얼굴은 모자이크로 가렸다.

물론 사진을 찍은 후에 사진 사용에 대한 동의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바쁜 길을 가는 다수의 시민을 쫓아다니며 일일이 양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자이크 처리가 최선이 되는 이유다.

[신문 속 사진 읽기] 보도사진, 그 민감함에 대하여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 소리에 점점 더 민감해져 간다.

취재 과정 또는 보도된 사진으로 인한 시비도 빈번해진다.

이 사진 속의 시민들은 태풍이 다가오는 도심에서 바람에 젖혀지는 우산에 의지해 힘겹게 갈 길을 가고 있다.

사진기자 입장에서는 바로 이런 현장을 태풍 스케치로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사진 속 개인들은 비바람에 짜증 난 표정과 우산이 젖혀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사진은 망원렌즈(70∼200㎜)로 찍었다.

망원렌즈는 멀찍이서 찍게 돼 피사체가 된 개인은 사진 찍히는지 여부를 모를 수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사진기자가 숨어서 찍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카메라와 가방을 둘러맨 사진기자는 누가 봐도 그냥 사진기자다.

파파라치가 아니다.

단지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물론 그 장면을 예상하고 셔터를 눌렀다.

또 개인의 초상권 피해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쓴 얼굴을 일일이 모자이크 처리했다.

만약 이 장면을 광각렌즈(16∼35㎜)로 피사체에 바짝 붙어서 찍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십중팔구 짜증을 표출하는 개인과 카메라를 들이댄 기자 사이에 시비가 붙을 것이다.

"왜, 찍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감정적인 말싸움 말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인을 탓할 수는 없지만, 간혹 도를 넘어서는 사람과도 맞닥뜨린다.

그럴 땐 사진기자도 감정노동자가 된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거대한 파도와 부두에 정박한 어선 등도 비바람에 젖혀지는 우산만큼이나 그 태풍의 강도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스케치 사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연이든 필연이든 비바람이 몰아치는 길 위에서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장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 사진기자의 숙명이다.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재난 상황을 막아야 하듯 보도사진의 취재를 둘러싼 취재원과 기자 간의 마찰도 피해야 한다.

보도사진이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노출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보도사진도 개인정보 노출이나 사생활 보호에 민감해야 하는 시대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