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in제주] 천 년 전 제주에 마지막 화산분출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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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놓고 다양한 논란…과학적 연구조사로 송악산·형제섬 가능성
전문가 "제주도는 활화산 지대, 언제든 화산활동 가능…연구 필요"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 탐라(제주)의 산에 4개의 구멍이 열려 붉은 물이 솟아 나오더니 5일이 지나서야 그쳤다.
그 물은 모두 와석(瓦石, 기와돌)이 됐다.
목종 10년(1007년), 탐라에 서산(瑞山)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났다.
임금이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 시찰토록 했는데, 탐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로 깜깜해지면서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진동이 7일 밤낮으로 계속됐다.
산의 높이가 백여장(약 300m)이고, 둘레가 사십여리(약 16㎞)가량 되며 초목은 없고 연기만 자욱이 덮였다….」
고려왕조 500년 역사를 다룬 고려사(高麗史, 1449∼1451년) 중 천문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룬 오행지(五行志)는 제주에서 일어난 과거 화산분출 모습을 이처럼 기록하고 있다.
당시 4개의 화구가 존재했고, 용암이 흘러나와 굳어 기와 형태의 암석이 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1007년 '바다에서 산이 솟아 나왔다'는 내용으로 미뤄 당시 제주에서 용암이 물을 만나 폭발하는 격렬한 수성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조선 시대 문헌 등에도 탐라의 화산 분출에 대한 내용이 동일하게 반복적으로 기록돼 있다.
다만,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07년의 화산분출 위치가 '지금의 대정현'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들 두 건의 화산분출 기록 외에 제주에서 또 다른 화산 활동이 발생했다는 기록은 없다.
과연 천 년 전 제주에서 마지막 화산활동이 일어난 것일까.
지질학에서는 1만년 이내 화산활동 기록이 있는 화산을 활화산으로 분류한다.
제주도의 경우 고려사를 비롯해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서에 천 년 전 화산활동이 직접 목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어 세계화산백과사전에는 제주가 활화산으로 분류 표기돼 있다.
◇ 천 년의 섬 논란
1002년, 1007년 발생한 화산분출의 위치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일부 고문헌에서 이들 화산분화 위치가 제대로 된 근거 없이 특정돼 사람들에게 많은 혼란을 준 것이다.
이형상은 '남환박물'(1704년)에서 고려사에 기록된 화산분출의 주인공을 가파도로 추정했고, 최부는 '탐라시 삼십오절'(1487년)에서 우도로 추정했다.
또 서귀포시 안덕면 군산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가파도와 우도에서 청동기시대 무덤 양식인 고인돌이 발견되고, 군산 주변 일대에도 토기와 같은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는 등 천 년 전 화산으로 볼 수 없는 증거들이 쏟아져나왔다.
이외에도 김상헌의 남사록(1601년)과 탐라지도병서(1709)를 통해 비양도가 천 년의 섬 물망에 떠오르기도 했다.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탐라의 해중에서 섬이 용출했다고 했는데, 곧 비양도라고 한다'고 기록했고, 탐라지도병서(1709)에도 비양도를 고려사 화산분출 기록에 등장하는 '서산'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비양도가 천 년 전에 형성된 섬으로 굳게 믿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7월 비양리 포구에 비양도 탄생 천년 기념비가 세워졌고, 탄생 1천년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비양도에서 2천년 전 토기가 출토되고, 과학적 연대 측정을 통해서도 천 년의 섬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일종의 헤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이후 제주에서 발생한 천 년 전 화산활동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과학적 분석을 통한 연구가 이어졌다.
◇ 송악산이냐 형제섬이냐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안웅산 박사는 지난 2016년 다소 의외의 결과를 냈다.
그는 2016년 2월 발표한 '문헌에 기록된 제주도 화산활동에 관한 연구'를 통해 역사서상에 나온 화산폭발이 지금까지 알려진 천 년 전이 아니라 3천800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안 박사는 제주 화산활동 기록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제주에서 가장 젊은 화산으로 추정되는 화산체인 송악산, 비양도, 일출봉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과 광여기루미네선스 연대측정을 시행했다.
그는 송악산은 최소 3천800년 전 이후, 비양도는 최소 4천500년 전 이전, 일출봉은 6천∼7천년 전 이후에 분출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안 박사는 역사서에 기록된 천 년 전 화산을 찾지 못했지만, 연대측정을 통해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제주에서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서에 기록된 화산활동은 초기 수성 화산활동과 후기 마그마성 화산활동이 차례로 일어난 일련의 과정으로, 송악산이 바로 그런 화산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1002년, 1007년의 기록은 각기 다른 화산분출로 보이지만, 하나의 단성화산에서 일어난 화산분출을 두차례에 걸쳐 기록한 것이라고 재해석했다.
역사서상 1002년의 기록은 실제로 화산분출이 일어난 시기가 아니라 단지 과거 탐라의 화산활동이 최초로 고려조정에 보고(혹은 전달)된 시점이며, 1007년의 기록도 왕명으로 조사에 나선 전공지가 탐라를 방문해 해당 화산분출 사건의 실체를 종합적으로 확인한 결과가 정리돼 보완 기술된 시기라고 봤다.
반면, 2019년 4월 지질학회지에 발표된 '제주도 화산활동에 관한 역사 기록의 이해'(고기원·전용문·박준범·박원배·문수형·문덕철)에는 다른 주장이 제기된다.
이들은 역사서의 기록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1002년과 1007년에 각기 다른 화산분출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탐라국이 고려에 편입되기 전부터 고려는 탐라에 관리를 둬 민심을 살피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을 조정에 보고하도록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기록의 진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들은 1002년 6월에 발생한 화산은 육상에서 분화한 것으로 보고, 그 위치를 특정할 순 없지만 하나의 산에서 4개의 구멍이 열려 용암이 분화했다기보다 중산간 지역에서 틈 분화가 일어나 용암이 네 군데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1007년 화산은 수성화산으로 현재의 형제섬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역사서 기록을 분석하면 당시 화산분화 위치는 해안에서 2㎞ 내외의 거리에 위치한 바다이거나, 해안에서 1㎞ 이내 거리의 바다에서 화산이 분화해 육지와 이어졌거나, 수성화산체가 형성된 후 파도에 의해 침식돼 수중에 존재할 가능성 등 3가지다.
과거 대정현 경계 내에 위치한 섬과 화산체 중 이러한 특징을 지닌 지형은 차귀도, 와도, 형제섬, 송악산, 수월봉, 용머리해안을 들 수 있다.
제주도 서부해역에는 산을 이룰 정도의 침수 화산체 지형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중 용머리해안은 120만년 전, 차귀도와 와도는 40만년 전에서 25만년 전에 형성됐으며, 수월봉 1만8천년 전, 송악산 3천8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조사되는 등 시기가 맞지 않는다.
이들은 아직 형제섬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가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상세 연구가 요구되며, 제주도 주변 해역에 대한 정밀 해저지형 조사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마지막 분출한 화산체의 위치를 놓고는 이처럼 이견이 있으나 한라산이 활화산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안웅산 박사는 "비단 역사서에 기록된 이 화산활동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제주도는 실질적인 활화산 지대에 속한다"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가까운 미래에 화산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해서 연대측정뿐만 아니라 과거 화산활동의 패턴까지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한라산, 제주도가 바로 좋은 연구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전문가 "제주도는 활화산 지대, 언제든 화산활동 가능…연구 필요"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 탐라(제주)의 산에 4개의 구멍이 열려 붉은 물이 솟아 나오더니 5일이 지나서야 그쳤다.
그 물은 모두 와석(瓦石, 기와돌)이 됐다.
목종 10년(1007년), 탐라에 서산(瑞山)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났다.
임금이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 시찰토록 했는데, 탐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로 깜깜해지면서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진동이 7일 밤낮으로 계속됐다.
산의 높이가 백여장(약 300m)이고, 둘레가 사십여리(약 16㎞)가량 되며 초목은 없고 연기만 자욱이 덮였다….」
고려왕조 500년 역사를 다룬 고려사(高麗史, 1449∼1451년) 중 천문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룬 오행지(五行志)는 제주에서 일어난 과거 화산분출 모습을 이처럼 기록하고 있다.
당시 4개의 화구가 존재했고, 용암이 흘러나와 굳어 기와 형태의 암석이 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1007년 '바다에서 산이 솟아 나왔다'는 내용으로 미뤄 당시 제주에서 용암이 물을 만나 폭발하는 격렬한 수성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조선 시대 문헌 등에도 탐라의 화산 분출에 대한 내용이 동일하게 반복적으로 기록돼 있다.
다만,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07년의 화산분출 위치가 '지금의 대정현'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들 두 건의 화산분출 기록 외에 제주에서 또 다른 화산 활동이 발생했다는 기록은 없다.
과연 천 년 전 제주에서 마지막 화산활동이 일어난 것일까.
지질학에서는 1만년 이내 화산활동 기록이 있는 화산을 활화산으로 분류한다.
제주도의 경우 고려사를 비롯해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서에 천 년 전 화산활동이 직접 목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어 세계화산백과사전에는 제주가 활화산으로 분류 표기돼 있다.
◇ 천 년의 섬 논란
1002년, 1007년 발생한 화산분출의 위치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일부 고문헌에서 이들 화산분화 위치가 제대로 된 근거 없이 특정돼 사람들에게 많은 혼란을 준 것이다.
이형상은 '남환박물'(1704년)에서 고려사에 기록된 화산분출의 주인공을 가파도로 추정했고, 최부는 '탐라시 삼십오절'(1487년)에서 우도로 추정했다.
또 서귀포시 안덕면 군산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가파도와 우도에서 청동기시대 무덤 양식인 고인돌이 발견되고, 군산 주변 일대에도 토기와 같은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는 등 천 년 전 화산으로 볼 수 없는 증거들이 쏟아져나왔다.
이외에도 김상헌의 남사록(1601년)과 탐라지도병서(1709)를 통해 비양도가 천 년의 섬 물망에 떠오르기도 했다.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탐라의 해중에서 섬이 용출했다고 했는데, 곧 비양도라고 한다'고 기록했고, 탐라지도병서(1709)에도 비양도를 고려사 화산분출 기록에 등장하는 '서산'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비양도가 천 년 전에 형성된 섬으로 굳게 믿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7월 비양리 포구에 비양도 탄생 천년 기념비가 세워졌고, 탄생 1천년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비양도에서 2천년 전 토기가 출토되고, 과학적 연대 측정을 통해서도 천 년의 섬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일종의 헤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이후 제주에서 발생한 천 년 전 화산활동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과학적 분석을 통한 연구가 이어졌다.
◇ 송악산이냐 형제섬이냐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안웅산 박사는 지난 2016년 다소 의외의 결과를 냈다.
그는 2016년 2월 발표한 '문헌에 기록된 제주도 화산활동에 관한 연구'를 통해 역사서상에 나온 화산폭발이 지금까지 알려진 천 년 전이 아니라 3천800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안 박사는 제주 화산활동 기록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제주에서 가장 젊은 화산으로 추정되는 화산체인 송악산, 비양도, 일출봉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과 광여기루미네선스 연대측정을 시행했다.
그는 송악산은 최소 3천800년 전 이후, 비양도는 최소 4천500년 전 이전, 일출봉은 6천∼7천년 전 이후에 분출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안 박사는 역사서에 기록된 천 년 전 화산을 찾지 못했지만, 연대측정을 통해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제주에서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서에 기록된 화산활동은 초기 수성 화산활동과 후기 마그마성 화산활동이 차례로 일어난 일련의 과정으로, 송악산이 바로 그런 화산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1002년, 1007년의 기록은 각기 다른 화산분출로 보이지만, 하나의 단성화산에서 일어난 화산분출을 두차례에 걸쳐 기록한 것이라고 재해석했다.
역사서상 1002년의 기록은 실제로 화산분출이 일어난 시기가 아니라 단지 과거 탐라의 화산활동이 최초로 고려조정에 보고(혹은 전달)된 시점이며, 1007년의 기록도 왕명으로 조사에 나선 전공지가 탐라를 방문해 해당 화산분출 사건의 실체를 종합적으로 확인한 결과가 정리돼 보완 기술된 시기라고 봤다.
반면, 2019년 4월 지질학회지에 발표된 '제주도 화산활동에 관한 역사 기록의 이해'(고기원·전용문·박준범·박원배·문수형·문덕철)에는 다른 주장이 제기된다.
이들은 역사서의 기록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1002년과 1007년에 각기 다른 화산분출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탐라국이 고려에 편입되기 전부터 고려는 탐라에 관리를 둬 민심을 살피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을 조정에 보고하도록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기록의 진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들은 1002년 6월에 발생한 화산은 육상에서 분화한 것으로 보고, 그 위치를 특정할 순 없지만 하나의 산에서 4개의 구멍이 열려 용암이 분화했다기보다 중산간 지역에서 틈 분화가 일어나 용암이 네 군데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1007년 화산은 수성화산으로 현재의 형제섬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역사서 기록을 분석하면 당시 화산분화 위치는 해안에서 2㎞ 내외의 거리에 위치한 바다이거나, 해안에서 1㎞ 이내 거리의 바다에서 화산이 분화해 육지와 이어졌거나, 수성화산체가 형성된 후 파도에 의해 침식돼 수중에 존재할 가능성 등 3가지다.
과거 대정현 경계 내에 위치한 섬과 화산체 중 이러한 특징을 지닌 지형은 차귀도, 와도, 형제섬, 송악산, 수월봉, 용머리해안을 들 수 있다.
제주도 서부해역에는 산을 이룰 정도의 침수 화산체 지형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중 용머리해안은 120만년 전, 차귀도와 와도는 40만년 전에서 25만년 전에 형성됐으며, 수월봉 1만8천년 전, 송악산 3천8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조사되는 등 시기가 맞지 않는다.
이들은 아직 형제섬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가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상세 연구가 요구되며, 제주도 주변 해역에 대한 정밀 해저지형 조사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마지막 분출한 화산체의 위치를 놓고는 이처럼 이견이 있으나 한라산이 활화산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안웅산 박사는 "비단 역사서에 기록된 이 화산활동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제주도는 실질적인 활화산 지대에 속한다"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가까운 미래에 화산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해서 연대측정뿐만 아니라 과거 화산활동의 패턴까지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한라산, 제주도가 바로 좋은 연구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